"긴 외국생활에 외로운 저의 영혼을 달래주고, 용기를 줬던 광주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송두율 교수(59·독일 뮌스터대 사회학과)가 2일 '마음의 고향' 광주 땅을 다시 밟았다. 송 교수는 이날 5·18국립묘역을 방문해 45년만에 다시 광주를 찾은 감회에 젖었다.
지난 달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재독 사회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2일 광주를 방문했다. 1959년 광주를 떠난 지 꼭 45년만의 방문 길. 송 교수는 이날 오전 10시 5·18국립묘역을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음의 고향' 광주와 해후했다.
"광주, 영혼을 달래주고 용기를 줬던 곳"
오랜 망명생활을 접고 지난해 9월 귀국한 송 교수는, 귀국 직후 광주 방문을 추진했지만 곧바로 사법당국에 구속돼 방문이 무산된 바 있다. 그는 지난 30일 항소심 최후진술에서는 "오랜 외국 생활로 지친 제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줬던 제주도의 검푸른 바다와 광주의 대지와 재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마음의 고향' 광주에 대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송 교수는 이날 오전 10시 5·18국립묘지를 방문해 5·18영령들에게 헌화·분향했다. 송 교수는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강신석 5·18 기념재단 전 이사장 등과 함께 1시간여 동안 5·18국립묘지와 구 묘역을 둘러봤다.
부인 정정희씨와 함께 묘역을 찾은 송 교수는 참배후 윤상원 열사와 고 김남주 시인 등의 묘지를 찾아, 격동의 현대사를 37년동안 먼 이국 땅에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구 묘역으로 발길을 옮긴 송 교수는 특히 김남주 시인의 묘소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기도 했다.
송 교수는 "집에 지금도 김남주 시인의 '사상의 거처'라는 시집이 있는데, 감명 깊게 읽었다"며 "너무나 젊은 나이에 떠났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잠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송 교수는 또 김양무 열사의 묘소 앞에 이르러 "음대에 수학중인 선생의 딸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다"며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광주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잠시 지난 세월을 되새기도 했다. 송 교수는 전남대 문리대 교수를 지낸 부친 송계범(1996년 작고)씨를 따라 1951년부터 1959년까지 광주에서 생활한 바 있다. 광주 중앙초교와 서중을 졸업한 송 교수는 그 해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를 떠난 바 있다.
송 교수는 "45년만에 광주 땅을 밟게 되니 감개무량하다"며 "여기서 소년기를 다 보내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오지호 화백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지산동에 살던 무렵 어릴 때 그렇게 나를 사랑해 주셨다"고 지난날 추억을 잠깐 떠올리기도 했다.
"열 여섯 떠나 육십 돼서 왔다"
송 교수는 "소년기 꿈은 아직 다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아있지만, 광주는 그 꿈을 키워 왔던 곳"이라며 "열 여살에 떠나 육십이 돼서야 찾아왔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다"며 "또 그것이 힘이 돼 앞으로 제 삶의 전망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또 "광주에서의 몇 가지 기억이 내 미래에 힘이 되고 영양분이 될 것으로 보이다"며 전남대 강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앞으로 기여할 것이 뭔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5·18 묘역을 둘러보면서 '민주화는 종점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80년 광주는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통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억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5·18은 이제 보통명사가 됐다"며 "시작은 광주였지만 지향과 목적지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 동북아 평화에까지 나갈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덧붙였다.
송 교수는 특히 5·18 신묘역과 구묘역을 가리켜 "신묘역이 인정된 역사인 반면, 구 묘역은 앞으로 채워질 역사"라며 "아직도 생명력 있는 언어를 던지는 구묘역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아직 재판이 진행중인 점을 고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했다. 또 공식행사 대신, 부친의 동료교수나 자신의 귀국을 도운 지인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45년만의 첫 광주방문 일정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