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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내 생애의 아이들 ⓒ yes24
<내생애의 아이들>은 나이 어린 이종 사촌들에게 선물할 만한 책을 고르다 발견한 책이다. 발견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전혀 사전지식이 없었지만 첫 장부터 나는 쏙 빠져버렸다. 그러나 나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 유명한 느낌표 선정 도서라는 점을 알고 나서 나는 좀 마음에 걸렸다.

좀 억지스러울지도 모를 욕심이지만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좋은 책을 고르고, 그것을 타인에게 선물했을 때의 기대감은 엄청나다. 책을 읽고 내게 전화를 걸어 '이걸 어떻게 발견했어?'라고 묻는다면 그 반가움은 신대륙을 발견한 저 콜럼버스에 비길 수 없을 정도였다.

어쨌든 그런 즐거움은 접고 나서라도 <내 생애 아이들>은 딱 알맞게 내 손에 들어온 앵두 몇 알처럼 군침이 돌게 했다. 따뜻한 어조와 섬세한 묘사로 시작되는 어린 여 교사의 학교 생활은 '어쩜, 어쩜'이란 탄성을 연발하게 한다. 아이들과 친분 쌓기에 목말라하는 주인공은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조용히 들려준다.

학교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개성의 아이들이 있다. 빳빳하게 잘 다려진 모범생이 있는가 하면 반항기로 똘똘 뭉친 사고뭉치도 있다. 또 가난한 집안 아이도 있으며, 풍족한 집안 아이도 있다. 엄마가 없는 아이, 노래를 잘 하는 아이,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와 그들 뒤에 서 있는 각양각색의 부모들이 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누가 알 수 있을까. 그 시절의 슬픔과 고민들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작고, 우스운 것이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 당시에는 몇 날, 몇 밤을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어린 여교사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니 다시 가슴이 아파온다. 나는 이처럼 결 고운 성장소설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 이야기의 윤곽이 어렴풋하면서도 또렷해 놀라웠다. 마치 한 인생을 완성하기라도 한 듯 작은 성장 과정이 큰 세계를 가득 채우는 순간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두려움의 찬 시선을 던지는 빈센토의 애정표현도, 성탄절 아이 클레르의 선물도, 종달새 닐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그의 어머니 파라스코비아 갈라이다도, 드미트리오프의 글자 쓰기 재능도, 메데릭의 풀꽃다발도 하나같이 그렇다.

흔히 어린아이들의 얘기를 썼다고 해서 모두 성장소설이라 규정하지 않는다. 어린이와 어른 그 사이에서 뚜렷한 변화의 징조, 그로 인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마치 인생은 빛과 어둠이 함께 만드는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어둠이 없으면 빛이 무슨 소용일까,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순수하다는 것은 일정 정도 타락이나 더러움에 기대어 묻어나고 살아난다. <내 생애 아이들>에서 가난이 그렇고, 팍팍한 생활이 그렇고, 골 깊은 상처가 그렇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내 사촌들이 나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같을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 밝고 따뜻하다는 것, 아름다운 것, 너무 흔한 말들이지만 진정 그것을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양지가 내 사촌들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음지에서 문득 떠오른다면 난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가브리엘 루아, 처음 듣지만 친근한 이름의 작가는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점은 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비교해 이 책은 더욱 흥미롭게 읽혀진다. 어디에 숨어 있나, 궁금증을 일으키는 산골 마을에 작은 분교, 떼지어 등교하는 아이들, 너무나 풍성한 눈·비의 계절들이 바퀴달린 신발을 싣고 아파트 복도를 헤매는 내 사촌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힐 것을 믿는다.

이 책은 한마디로 누구나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행복을 주는 책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서 사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러나 그 행복이 두어 시간에 끝날지 평생을 함께 할지는 각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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