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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전경
부석사 전경 ⓒ 이양훈
부석사는 당나라가 조국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급거 귀국한 의상대사가 서기 676년에 창건한 절이다. 그러하니 지금으로부터 자그만치 1300여 년의 세월과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이 일반적으로 산 속 깊은 곳에 터를 잡는 것에 반해 부석사는 독특하게도 산등성이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한계단 한계단을 오를 때마다 주변 풍광이 놀랍도록 달라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한데, 바로 이것이 절을 처음 설계할 때부터 정교하게 계산된 공간구도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 축대를 만들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잔돌을 맞춰 끼워 힘을 분산시키도록 했으니 그것 자체로도 하나의 훌륭한 조형예술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부석사의 이 석축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시나브로 극락에 이르도록 설계되었다. '구품만다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화엄경의 사상을 실제 현실로 나타낸 것이라고도 하는 이 치밀한 구도는, 어찌 되었든 계단 하나 석축 하나라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불교사상을 드러내려한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있는 것만은 분명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극락에 오르는 안양문. 자연석으로 만든 2단의 석축과 저 뒤로 무량수전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극락에 오르는 안양문. 자연석으로 만든 2단의 석축과 저 뒤로 무량수전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 이양훈
극락을 뜻하는 안양문을 지나면 바로 무량수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중 하나. 꼭 필요한 것만을 갖춰 간결한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는 주심포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며 그대로 한국 고건축의 교과서가 된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 이양훈

무량수전 현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머물때 쓴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무량수전 현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머물때 쓴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 이양훈

안양루의 공포사이로 보이는 다섯분의 부처님 형상. '현현불'이라고도 하고 부석사의 숨은 부처님이라고도 한다.
안양루의 공포사이로 보이는 다섯분의 부처님 형상. '현현불'이라고도 하고 부석사의 숨은 부처님이라고도 한다. ⓒ 이양훈

무량수전의 공포.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만들어져 있어 '간결미'가 돋보인다.
무량수전의 공포.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만들어져 있어 '간결미'가 돋보인다. ⓒ 이양훈
사람의 착시를 교정하고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위해 보정작용을 하도록 고안된 기둥의 '배흘림'과 '귀솟음' 방식, 가운데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게 하여 위나 옆에서 무량수전을 보았을 때 처마 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게 해 육중하면서도 넓은 무량수전의 지붕이 무겁거나 둔하게 보이는 것을 방지하는 '안허리곡'의 수법 등 이 건물 하나에 숨어있는 갖가지 첨단기술들은 알면 알수록 그저 놀라울 뿐이다.

부석사 전경
부석사 전경 ⓒ 이양훈
부석사를 부석사이게 하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무량수전에서 바라다보는 '전망'이다. 겹겹이 쌓인 소백산맥의 연봉들이 한 품에 들어오도록 석축을 쌓고 계단을 올려 마치 모든 산들이 부석사를 위해 자리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한 이 놀라운 안목! 그러나 이것은 직접 발로 밟아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게끔 되어 있다. 왜냐하면 부석사는 애초부터 모든 건물과 전망이 한 눈에는 다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부석사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망
부석사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망 ⓒ 이양훈

무량수전의 오른쪽, 조사당 오르는 길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전형적인 신라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무량수전의 오른쪽, 조사당 오르는 길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전형적인 신라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 이양훈

바닥에 실을 넣고 지나보면 실이 걸리지 않는다는 부석. 즉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는 얘기이다.
바닥에 실을 넣고 지나보면 실이 걸리지 않는다는 부석. 즉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는 얘기이다. ⓒ 이양훈
국보 5점 보물 4점 도유형문화재 2점이 소장되어 있다는 부석사. 1300여 년 전, 조국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의상과 그를 흠모하여 인간의 몸을 버리고 용이 되어 끝까지 수호신이 되어 주었던 선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그래서 부석사가 되었다는 전설 등 이것저것을 생각하며 발길을 옮기다 보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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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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