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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9일 오전 연희동 전두환 전대통령을 예방,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9일 오전 연희동 전두환 전대통령을 예방,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박정희 유신독재의 종지부를 찍은 1979년 10·26 사태. 그로부터 두 달도 안돼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청와대에 입성한 전두환 정권. 5공 시절, 박정희 구 정권의 실세들은 정치적 활동은 물론 '준가택연금' 상태에서 지내는 등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들에게 자유의 햇살은 역설적이게도 87년 6월 민주화 항쟁과 함께 찾아왔다.

유신의 권력자들은 전두환 정권이 1980년 11월 공포한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묶여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히는 등 정치활동이 금지되었고, 박근혜 대표가 당시 총재로 있던 새마음봉사단도 5공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25년이 흘러, 두 군사쿠데타의 '상징'은 제1야당 대표와 전직대통령이라는 '예우'의 관계로 다시 만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만남은 2001년 박 대표가 한나라당의 부총재 시절 이후 두 번째.

9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전날 최규하 전 대통령을 방문한데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찾았다. 박 대표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했을 자리. 하지만 박 대표는 별다른 사심을 내비치지 않고 50여분간 전 전대통령과 담소를 나누었다.

"여야 싸움질 바람직하지 않아" 상생 강조(전두환)
"손뼉도 마주쳐야 난다고 같이 노력해야" 대결 의지(박근혜)


이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여당과의 '상생'을 강조한 반면, 박 대표는 최근 정체성 논란 등을 통해 보여준 여당과의 선긋기를 분명히 했다.

전 전대통령은 "정치에는 여야가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싸움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 대결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예산을 적극 지원했고, 클린턴 대통령도 공화당 의원들의 도움으로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전대통령은 이재오 의원의 '독재자의 딸' 발언 등 당내 공격을 염두한 듯 "당내 야심가들이 있지만 섭섭함이 있어도 잘 풀어가야 한다"고 말하자 박 대표는 "섭섭함은 없다"며 "정책대결"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정치문화를 바꾸는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국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이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같이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말해 대여 대립각을 이어갔다.

이에 전 전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며 "좋은 뜻을 가지고 있으니 노력하시면 뜻하시는 대로 될 거다"라고 덕담을 전했다.

이날 만남에서 전 전대통령은 여성정치인에 거는 기대를 표시했다. 전 전대통령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 정당대표가 여성인 것은 박순천 여사 이후 처음인데 박 여사는 할머니였고, 박 대표는 일하기에 적절한 연령에 대표가 되어서 정치, 역사, 문화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은 "사관학교, 서울대학교 수석도 여학생들이 차지하는 등 역사의 흐름이 고대 여성에서 남성을 거쳐 다시 여성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치사했다.

이어진 전 전대통령의 "청와대에 있을 때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분들과 만나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얘기를 듣고 여성의 모성애와 강인한 정신력에 감명을 받았다"는 말에, 박 대표는 "(여성이) 겉으로는 약해 보여도 자식이 10명이어도 안굶기고 교육도 잘 시킨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전 전대통령이 "여성대표, 정당대표로서 박 대표에게 국민의 여성들의 기대가 크다"고 전하자, 박 대표는 "열심히 하겠다"며 이후 담소를 비공개로 돌렸다. 대화 초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기자들을 의식한 박 대표는 비공개로 할 것을 내비쳤으나 전 전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이어갔고 공개 만남은 15분간 이어졌다.

"거기가 강남인가" "잘되면 다시 키우면 되지" 실언 연발
박 대표 "당사 크기보다 국민신뢰가 중요" 당황·수습


이후 이어진 비공개 만남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재임초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인재를 많이 썼다"며 "천하의 인재를 두루 모아서 팀을 짤 것"을 조언했고, 배석한 참모들에게도 대표를 잘 보좌하도록 주문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정체성과 관련, 전 전대통령은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 확 넘어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고 조해진 부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만남이 비공개로 예상보다 길게 이어진 것에 대해 배석자들은 "박 대표가 허심탄회하게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조언을 들으러 가는 자리인데 기자들이 동석하면 의례적인 얘기만 하고 끝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진영 비서실장과 이성헌 제2사무부총장, 조 부대변인이 박 대표를 수행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그리고 이양우 고문변호사는 현관에서 이들 일행을 맞이했다.

한편 이날 만남에서 기자들의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사말을 건네던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 당사가 한강 천막에 있나"라고 물었고, 이에 박 대표는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6월말 염창동으로 이사를 갔다"고 답했다.

전 전 대통령의 반응이 없자, 박 대표는 "강서구에 있는…"이라고 이해를 구했고 전 전 대통령은 "(거기가) 강남입니까"라고 반문, 기자들에게 웃지 못할 '후일담'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어 박 대표가 "여의도에서 10~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당사 규모가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다시 "잘 되면 (당사를 다시) 키우면 되지"라고 '위로'. 박 대표는 "당사를 키우는 것보다 국민의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일축하며, 연이은 전직 대통령의 실언을 수습하느라 당황하는 기색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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