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에는 긴 시내가 걸려있는 듯
제7일 2004. 5. 31. 월. 맑음
04:00. 예삿날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아마도 날씨에 대한 염려 때문인 것 같았다. 간밤에는 일행 아홉 사람이 큰 방 두 개를 빌려서 사용했기에 내가 잔 방에도 네 사람이 자고 있었다. 곤히 자는 그들을 깨울까 옷을 주섬주섬 입고 호텔 바깥으로 나갔다.
백두산 일대는 온누리가 흰 은세계로 눈이 소복이 쌓였다. 아주 쾌청한 날씨였다. 간밤에 진눈개비가 내려서 오늘까지 흐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더없이 상쾌한 아침이었다.
기온이 영하로 몹시 추웠다. 다시 방으로 가서 긴팔 남방을 입고 거기다가 비옷을 걸쳐 입었다. 간밤에 내린 진눈깨비가 꽁꽁 얼어서 길바닥도 몹시 미끄러웠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르면서 장백폭포(비룡폭포라고도 함)에 이르는 길을 따라 올랐다.
오늘도 백두산 천지를 산뜻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예까지 와서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하고 폭풍우나 안개만 잔뜩 보고 내려간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5년 전 1999년 여름에도 상쾌하게 천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 일행이 백두산 천지를 깨끔하게 보고 막 내려올 즈음, 갑자기 짙은 안개가 아주 삽시간에 불어 닥쳐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의 변화를 보았다.
백두산 일대의 기후는 겨울이 길고, 기온이 낮으며, 강수와 안개가 많고, 바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백두산 기후 통계: 연 평균 기온이 영하 7.3도, 적설일수 258일, 연 강우일수 209일, 연 강수량 1,340mm, 연 강설량 320mm, 강설일수 145일, 안개일수 267.1일, 폭풍일수 272일- 류충걸 <백두산과 연변조선족>)
또 기록에 보면 백두산에 첫 눈이 내린 날은 8월 20일이고, 마지막 눈이 내린 날이 6월 24일이라니, 5월 31일에 눈이 내리는 것은 이상 기후라 할 수 없다.
혼자서 아름다운 설경에 취한 채 장백폭포를 오르는데, 한 주민이 장화를 신고 비탈길에다 흙을 뿌렸다. “쎄쎄”라고 인사하면서 카메라의 앵글을 잡자 하던 일도 멈추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바로 옆 온천 샘에서는 수증기를 뿜으면서 뜨거운 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5년 전과는 달리 온천수를 바깥으로 흘려 보내지 않고, 대부분 큰 관으로 연결하여 아래 온천장으로 보냈다.
폭포에 가까이 이르자, 계곡 사이로 물줄기가 힘차게 내리 쏟아지고 있었다. 이백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가 흥얼거려진다.
日照香爐生紫煙 해가 향로봉을 비추는데 거기서는 자줏빛 안개가 피어오른다
遙看瀑布掛長川 멀리서 바라보니 폭포에는 긴 시내가 걸려있는 듯
飛流直下三千尺 곧장 쏟아 내리는 물줄기 삼천척이나 되는 듯
疑是銀河落九天 아마도 구천(하늘)에서 은하가 쏟아지나 보다
이런 선경을 나만 본 게 너무 미안했다. 지난 번 백두산을 다녀간 뒤 귀국해서 아내에게 다음 갈 때는 꼭 같이 가자고 약속했는데, 이번에도 나만 오게 되었다. 권순태 PD에게 전화를 빌려 아내에게 사과의 말이라도 전해야겠다.
고국에 있는 아내야 어쩔 도리 없지만, 호텔에 묵고 있는 일행에게 오늘 날씨를 알려서 이렇게 좋을 때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곧장 하산했다.
서양 속담에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말려라"고 했다. 그 말은 답사자에게는 아주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