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윤택씨의 얼굴에는 고집이 보인다. 그냥 고집이 아닌 무대에 대한 열정, 그것으로 빚어낸 예술혼의 고집. 그래서 그의 작품은 늘 신선한 충격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이윤택씨의 얼굴에는 고집이 보인다. 그냥 고집이 아닌 무대에 대한 열정, 그것으로 빚어낸 예술혼의 고집. 그래서 그의 작품은 늘 신선한 충격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 권미강
불볕 더위가 밤잠마저 설치게 했던 10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이색적인 공연 하나가 올랐다. 서커스악극인 '곡예사의 첫사랑'. 동명의 가요를 떠올릴 법한 이 공연은 옛 유고슬라비아의 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유랑극단>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옛 유랑극단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 작품에는 실제로 동춘서커스단 단원들도 참가하는 등 화제를 낳고 있다. 이런 기발한 발상을 누가 했을까? 바로 연출가 이윤택씨다.

그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주제공연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서도 월명대사의 <도솔가>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이에 교감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동서양 철학자의 소통이었으며 세월을 뛰어넘은 인간세계의 모순과 갈등을 인간 스스로 토해내는 작품이었다. 인간에 대한 비판이 아닌 지극히 인간애에 뿌리를 두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문화게릴라 이윤택.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공연이던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장면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공연이던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장면 ⓒ 경주엑스포 제공
'오구'의 실제 상황-황 여사 발인제

지난 7월 18일 경남 밀양 연극촌의 아침을 깨우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오북춤과 지전춤 등 마치 연극 '오구'의 한 장면쯤으로 여겨질 만한 이 모습은 그러나 연극이 아닌 진짜 고인을 보내는 발인제 장면이었다.

상주는 '오구'를 연출한 이윤택(52)씨였고 고인은 그의 어머니 황두기(향년 87) 여사였다. 이날 발인 풍경은 마치 예견된 축제처럼 보였다. '오구'의 황 할머니가 죽기 전 굿 한 판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부탁을 순순히 수행하는 자식처럼, 이윤택씨는 밀양연극축제 개막 전날 세상을 뜬 어머니를 위해 걸판진 굿 한마당을 펼친 것이다.

이날 상주는 어머니와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소통을 흥겨운 굿판으로 풀어냈다. '오구 - 죽음의 형식'은 이날 발인을 위한 리허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실제 상황은 어쩌면 이윤택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굿의 정서는 그의 태생적 정서

그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오구>가 성공한 것은 작품 속에 살아있는 우리 정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굿의 정서를 안고 있는 그의 태생적 정서 때문이기도 하다.

경남 김해군 이북면 수조리에 살았던 그의 외할머니는 마을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해온 무당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간단한 병을 치료해주는 의료인이자 정신적 예언자였던 외할머니는 그를 어릴 적부터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며 말조차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로 알려진 '오구'의 황 할머니 모델은 다름 아닌 외할머니였던 것이다.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무속의 정서와 부산 개항에 관여했으며 시인으로서 이름을 날렸던 할아버지, 어머니의 속을 끊임없이 태웠던 아버지의 방랑자적 기질, 이것이 그만의 독특한 무대와 사고 그리고 문화게릴라로 일컫는 인간 이윤택을 만든 것이리라.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구의 한 장면.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구의 한 장면. ⓒ 밀양연극촌 제공
문화무정부주의자

요절한 '입 속의 검은 잎'의 시인 기형도는 그에게 '문화무정부주의자'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그 이후로 문화게릴라는 그의 닉네임이 되었다. 그가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연극계에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신문기자라는, 연극과는 좀체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독특한 이력과 신문사를 퇴직하자마자 실현했던 그의 첫 무대가 그러했다. 86년 4월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 동해별신굿을 올린 것이다.

그것도 강릉에서 영덕, 기장으로 이어지는 별신굿판의 대가들을 모두 출연시켰으니 굿을 무대에 올린다는 사실과 함께 당시로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연극들은 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그야말로 기존과는 다른 느낌으로 연극계를 강타했다.

<죽음의 푸가> <히바쿠샤> <맥베드> <문제적 인간 연산>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등과 얼마 전에 올린 <곡예사의 첫사랑>까지 그가 내놓은 작품은 언제나 세인의 주목을 받았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동안 돌풍을 일으켰다.

'시적 인간' 이윤택

18년 동안 몸 담아오면서 이제는 우리나라 현대연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자리잡은 그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시민> <춤꾼이야기> <밥의 사랑> 등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말을 빌자면 '시를 쓰는 사람'이기보다는 '시적 인간'인 것이다. 그는 모든 일상성과 합리적, 과학적 세상이라 일컫는 현실을 탈피하고 일상을 뛰어넘고자 한다.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비합리적인 세계를 시적 세계라 간주하고 문화야말로 시적 상상물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중반, 천박한 형식주의, 탁상공론적 사고에 빠져버린 글에 대한 회의와 시대의 실천적 방안의 하나로 선택한 연극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시적 인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밀양연극촌'을 통해 여는 지역문화

그는 지역으로서의 서울이 아닌 서울이라는 공룡문화의 표본을 싫어한다. 그래서 밀양에 새 연극촌의 둥지를 틀었다.

단원 60명과 함께 자신만의 색깔과 집념으로 작업을 해가고 있는 그는 밀양이야말로 온전히 연극을 보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구 10만의 소도시이자 공동체적인 의식이 있고 '小안동'이라 불릴 만큼 문화적인 전통도 살아있는 곳.

여기에 쾌적한 자연환경까지 갖추고 있는 밀양은 그의 예견대로 밀양연극촌으로 인해 연극의 새 주도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문화예술인의 옳은 판단이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킨 좋은 본보기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측면에서 스스로 문화게릴라고 인정하는 이윤택. 그에게 시는 정신적인 고향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며, 연극은 삶의 노동이자 생존의 업이다.

한편 영화는 그가 늘 가슴에 간직하는 꿈이다. 그는 얼마 전 영화 <오구>를 통해 그 꿈을 이뤄냈으며 여전히 생업을 위해 연극이라는 농사를 짓고 늘 시적 세계에 자신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문화적 삶은 어쩌면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꿈인지도 모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