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자자체들의 조세저항은 자치단체장이 조례를 통해 재산세율을 50%까지 낮출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 지방세법을 한껏 활용한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도 선진국에서나 구현된다고 생각하였던 완벽한(?)지방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정한 재산세 인상율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며 비분강개하고 있는 지자체들과 그 구성원들의 주장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정부의 10·29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서 이른바 '강남벨트'라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의 재산세가 대폭인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부과되었던 재산세가 자동차세보다 적은 기십만원에서 많아야 기백만원 수준이었기 때문에 설령 2 ~ 3배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부담은 대수롭지 않은 수준일 따름이다.
예컨대 강남구 대치동 경남 1차 아파트 32평형은 2003년 불과 재산세 5만원이 부과되었는데 2004년에는 15만1000원으로 인상되었고, 대치동 개포우성아파트 45평형은 2003년 13만7000원의 재산세가 부과되었는데 2004년에는 52만3000원으로 인상되었을 뿐이다.
실증적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치동 선경아파트 55평형은 2003년 41만9000원에서 2004년 101만3000원으로, 가락동 잠실 우성1차 아파트 45평형은 2003년 10만8000원에서 2004년 32만4000원으로 재산세가 각각 인상되었다.
강북도 사정은 비슷하여 용산구 이촌동 이촌코오롱 아파트는 32평형은 2003년 7만3000원에서 2004년 20만원으로, 이촌동 LG한강 자이 55평형은 2003년 43만8000원에서 2004년 171만9000원으로, 양천구 목동 2단지 35평형은 2003년 5만1000원에서 2004년 17만7000원으로, 목동3단지 45평형은 2003년 10만9000원에서 2004년 49만5000원으로 재산세가 각각 인상되었을 따름이다.
참고로 위에 열거한 아파트들의 평당 시가는 대부분 2000만원을 훌쩍 넘는 수준으로 서민들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가격이다.
본디 재산세 감면 파동은 정부가 건물분 재산세 산정방법을 면적기준에서 '시가'가 반영된 국세청 기준시가에 의한 가감산 방식으로 바꾸면서 비롯됐다. 면적을 기준으로 해서 재산세를 산정하는 것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서울 강남구가 '재산세 감면'이라는 강수를 내놓았고 강남구 이외의 지자체 구성원들은 '왜 우리가 강남구 구민들보다 재산세를 더 내야 하느냐'는 정서적 반감을 바탕으로 지자체를 강하게 압박하여 작금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세저항을 선도하고 있는 지자체와 그 구성원들이 재산세 인상에 따라 추가로 부담할 비용은 극히 경미한 수준이라 세금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오히려 이들은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부동산 폭등의 최대 수혜자들로서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은 바 있다.
물론 이들은 내핍(耐乏)을 통해서 종자돈을 마련하고 발품을 팔아 가장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동산을 구입한 선택이 어째서 비난받을 이유가 되느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선택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시장을 읽는 눈과 유효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부단한 노력, 결단력이 필요하고 운도 따라주어야만 한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순전히 거주 목적으로 혹은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 요지에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우연히 가격이 폭등한 것이라면서 얼굴을 붉힐 수도 있을 것이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높은 이유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은 이유는 바로 사회적 인프라-도로, 지하철, 공원, 의료시설, 학교, 상권 등-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며 이는 곧 삶의 질이 타 지역에 비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인프라는 대부분 조세로 구축된다. 강남 이외에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은 지역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물론 한국사회의 주류(main stream)에 편입되고자 하는 심리적 욕망도 아파트 가격상승에 일조할 것이다. 즉, 한 지역의 지가(地價) 혹은 건물가격이 다른 지역 보다 높은 이유는 사회적 인프라의 우위 내지 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 할 것이다.
몇 년 사이 집값과 지가(地價)가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지역들을 살펴보면 서울의 강남과 분당 신도시, 수도권의 대부분, 행정수도 이전이 기대되는 충청권의 많은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전자(前者)는 사회적 인프라의 우위로 인해, 후자(後者)는 향후 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상승률이 높았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집값이나 토지가격의 상승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며 따라서 개인들이 투기 등을 통하여 이를 전유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항상 그른 일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토지 소유자들과 다가구 소유자들은 사회구성원들이 만들어낸 가치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취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부를 펌프질해서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불리고 있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조세저항을 선도하고 있는 지자체와 그 구성원들의 분노에 찬 함성은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고 그들의 주장에는 일말의 공동체 의식도 함유되어 있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共和)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더불어 밥을 먹는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대한민국은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형식적 민주주의만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을 뿐 경제부문에 있어서의 정의와 효율의 실천은 요원한 상황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산세 파동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부유층들이 얼마나 공화의 정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강남과 그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부유층들이 그렇게 재산세를 더 내기 싫으면 내지 않으면 될 것이다. 단, 앞으로 자기 지역에 도로를 뚫거나 다리를 놓거나 공원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는 좋은 취지의 제도이지만 모든 지방자치가 옳은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가 공화의 정신에 반하는 지역이기주의의 외피를 두르고 나타난다면 그 지방자치는 더 이상 권장되거나 보호되어야 할 대상은 아니다.
한편 정부는 하루속히 지방세에 편입되어 있는 종합토지세와 재산세 등을 국세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후퇴의 조짐이 완연한 종합토지세와 재산세 등의 보유세를 현실에 맞게 대폭 인상하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 다른 노력소득에 대한 감세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거래세(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세)를 대폭 낮추어 활발한 거래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부동산 보유세(재산세, 종토세, 도시계획세, 공동시설세)는 3조4919억원이었고, 부동산 거래단계에서 부과되는 세금(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세)은 15조2398억원이었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들은 천국에 있었기에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만 우리들은 지옥에서 날마다 천국을 꿈꾸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전체 아동 1157만명 중 110만명 이상의 생활 환경이 빈곤선 이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결식아동을 30만5000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것이 소득을 감안할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강남구 등에 거주하고 있는 부유층들이 외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습이다.
2004년 여름 대한민국은 천국과 지옥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