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9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립기념관의 역할과 그에 따른 현실적인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과제들을 언급하고자 기획 취재를 준비했다.
독립기념관의 설립목적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보존ㆍ전시ㆍ조사ㆍ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과 국가관 정립”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45년 조국 광복 후, 이러한 사실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독립기념관 건립이 제의되었으나, 국내외 정세의 혼란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고, 1974년에도 ‘민족박물관’ 건립계획이 수립되어 추진되었다. 그러던 중 일본 교과서의 우리 역사 왜곡 사건을 계기로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되어 1982년 8월 28일 ‘독립기념관 건립 발기대회’를 열어, 온 국민의 이름으로 건립을 결의하고 성금 모금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0월 5일, 이 사업을 담당할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하였고, 1983년 8월 15일, 천안시 목천읍 흑선산록에서 기공식을 거행했다.
1987년 8월 15일에서야 비로소 모든 공사를 완료하고 개관을 맞이하게 되어, 올해는 개관 17주년을 맞이하게 된다.(독립기념관 안내책자 발췌)
약 120만평의 대지에 16만 여 평의 건평으로 이루어진 독립기념관은 민족전통전시관, 근대민족운동관, 일제침략관 등 총 7개의 전시실과 옥외전시공원, 원형극장을 보유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는 광복 57주년을 맞이하여 '제 14회 나라꽃 무궁화 큰잔치'의 일환으로, 무궁화를 대상으로 하는 글짓기와 그림그리기 대회가 진행 중이었고, 대회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은 겨레의 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관련 연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정은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이정은 연구원은 “중국학자들이 역사왜곡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십니까?”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이정은 연구원은 “중국은 눈도 깜짝하지 않으며 비웃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 때에도 그랬듯이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에 그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연구, 조사 등 기초적인 작업에 대한 그들의 노력은 빈틈이 없다.”라고 말했다.
3ㆍ1운동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독립기념관에서 20년 가까이를 근무해온 이정은 연구원은 “독립기념관을 세워놓고도 계속적인 구조조정이 해마다 진행되어 왔고, 연구소 폐쇄ㆍ축소를 계속해 오고 있다”면서 “강대국의 역사기념관과 같은 수준의 건물을 만들어 놓고도 실질적인 운영은 목천읍 사무소 보다 못하게 하고 있다. 필요한 연구 인력의 확보와 체계적인 기초 작업이 이뤄진다면 역사왜곡이 어떻게 이뤄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국립민속박물관에도 한 건물 당 연구원이 2~3명이 있고, 일본역사박물관은 정원의 절반이 학자 및 전문가인데 독립기념관의 경우 7개의 전시실이 있지만 담당 연구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원 89명 중 14명만이 학자로 구성돼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이정은 연구원은 “우리가 연구에 대한 예산이 부족하다면 기획예산처에서는 ‘전시관 한 두게 닫으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신군부가 상징적인 의미로 독립기념관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누가 세웠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육성을 해야 한다. 연구원들이 심화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청산관련법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부가 운동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기초적인 작업을 완벽하게 한다면 친일세력들은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다”라며 “감정적이고 의도적인 대응"을 지적했다.
또한, “독립기념관을 다녀간 많은 재외 동포들은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고서야 우리 민족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독립기념관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 국민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해마다 약 2만 여명의 의식 있는 일본인들이 독립기념관을 찾는다. 그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명확히 알려서 ‘친한파(親韓派)’로 만들어야 한다. 독립기념관이 남북통합, 지역갈등 해소, 세계인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지원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타 부서의 관계자들도 구조조정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직원에 따르면 “독립기념관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이곳이 평생직장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항상 구조조정을 염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원축소 때문에 일의 분담이 어려워지고, 중첩되는 경향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87년 개관 당시 정원이 171명이었는데 93년 120명, 99년 114명, 2000년 89명으로 감원돼왔고, 그나마 89명(임원 및 별정직 3명, 사무직 53명, 학예직 4명, 연구직 10명, 기술직 19명)의 정원마저 못 채워 현직원은 76명이 고작이다. 물론, 일부 직원들은 아웃소싱을 통해 관리되고 있지만, 무리한 인원 감축은 독립기념관의 설립 목적을 다하기에는 부족하다.
한 관계자는 “독립기념관을 흑자니 적자니 하는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독립기념관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과 인력의 확보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