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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의 자서전격인 '피델 카스트로'
피델 카스트로의 자서전격인 '피델 카스트로' ⓒ 박창환
쿠바 역사에서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최고 지도자로 지금까지 군림하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의 자서전 격인 <피델 카스트로(2002, 홍익출판사)>.

2002년 한 신문 광고에서 본 이 책이 마음에 들어 사람들에게 사달라고 떠들어 댄 적이 있었다. 1만9500원이라는 책값 때문에 쉽사리 살 엄두를 못 내고 있던 나에게 친한 선배는 어느 날 생일 선물이라며 <피델 카스트로>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700페이지가 넘는, 정확히 말해 735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막상 보는 순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있을 때 읽는다고 해서, 집에 보물 모시듯 두었다가 그해 말이나 다음해에 100페이지 정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료한 일상에 지친 나는‘책이나 읽자’고 다짐해서 책장에서 책을 몇 권 꺼냈다. <현대시 해설>, <숨겨진 과학의 역사>, <명상록> 등과 <피델 카스트로>가 있었다. 카스트로의 쿠바의 혁명 동지였던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현 쿠바 최고 지도자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턱밑에서 온몸으로 반미, 반제국주의를 외쳐 온 라틴 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의 살아 있는 신화!"


이 책에 관심을 갖게 했던 광고의 카피이자, 책표지에도 적혀있는 문구이다. 쿠바의 최고 지도자 피델이 50년 동안 겪었던 모든 것들이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다른 책을 제쳐두고 '피델 카스트로'를 읽기로 한 건 내 머릿속에 그의 혁명은 어떤 시기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100페이지 정도 읽었지만, 중도 하차했기에 1페이지부터 조심스레 책을 읽어나갔다.

1시간이 지났을까….

전에도 느꼈지만 책의 저자 로버트 E.쿼크(전 인디애나대학교 교수, 역사학)가 그려내고 있는 피델은 '폭력아, 무계획적, 자기중심적, 권력에만 관심 있는' 인물로만 비춰지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피델이 한 일들을 '우연의 연속'이다시피 적었다. 저자가 피델을 대하는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판단되어 책을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난 책이라 하면 소설책, 인문사회서적이 됐든 심지어 만화책까지 해서 다 읽지 않을 때까지 절대로 마지막 장을 넘겨보지 않는 강박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쿠바의 최고 지도자는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가 권력과 특권을 포기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지난 50년 동안 쿠바를 이끌었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 E. 퀴크는 쿠바를 제외한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상실한 상황에서 ‘여전히 게릴라 지도자의 군복을 입고 참호와 격렬한 투쟁을 거론’한다는 피델에 대해 그렇게 결론짓고 있었다.

전기의 기본은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버트 E.퀴크의 '피델 카스트로'는 피델의 성장과정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피델을 부정적으로만 보여주고 있었다.

로버트는 10년 넘는 세월을 들여 '피델 카스트로'를 썼다. 나의 느릿느릿한 책읽기로는 10시간은 족히 넘을 시간을 들여 10만 단어가 넘을 700페이지의 책을 읽은 후 얻은 지식이란 '성질 고약하고, 운이 좋아 지도자가 됐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악인 피델 카스트로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인가. 그것도 책의 표지 사진으로만 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말이다.

인터넷 교보문고를 들어가 '피델 카스트로'를 검색했다. 6건의 미디어 서평이 있었다.

역사는 나를 용서하리라, 정운영의 독서칼럼
(2002.6.25 중앙일보)

당대를 치열하게 산 흔적들, 도재기 기자
(2002.4.8 경향신문)

카스트로의 삶... 쿠바 혁명의 '매혹과 환멸', 책마을/신정환(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 강사)
(2002.4.8 조선일보)

카스트로는 영웅? 독재자?, 김관명 기자
(2002.4.8 한국일보)

편견의 두께만큼 두터운 연대기, 서평/이성형(세종연구소 초빙 연구위원)
(2002.4.6 한겨레신문)

쿠바 최고 지도자의 삶.철학, 유상덕 기자
(2002.4.6 서울신문)


책을 꼼꼼히 읽지도 않고 대충 훑어보고 썼을 그렇고 그런 서평들. 그러나 단 하나의 서평은 책을 제대로 읽고 쓴 게 확실했다.

“로버트 쿼크가 쓴 카스트로 전기 '피델 카스트로'가 출간됐던 1993년 미국에선 쿠바 멸망에 대한 책들이 쏟아졌다.

‘어느 모로 보나 쿠바의 최고 지도자는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지난 50년 동안 쿠바를 이끌었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쿼크는 이 책에서 결론처럼 이렇게 썼다.

그러나, 곧 망한다던 카스트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고, 쿠바의 개혁 개방 모델은 미국의 쿠바 전문가 애너줄리아 호스만조차 ‘소련이 배웠어야 했다’고 찬양할 정도가 아닌가?

(중략...)

쿼크의 전기는 오로지 권력만 탐하는 악동으로서 카스트로를 집요하게 그린다. 어떤 외압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50년 넘게 지탱된 카스트로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지속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1993년 이후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개혁과 개방에는 또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쿠바의 역사적 맥락을 거시적으로 해석하는 능력도 의심스럽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가장 신뢰하는 비평가이고,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했던 예인 카스트로의 모습은 한 줄도 비치지 않았다.

이 책은 본격적인 카스트로 전기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사건의 연대기적 기술이 비교적 치밀하다는 점이다. 읽는 사람이 행간 곳곳에 숨어 있는 저자의 의도를 먼저 걸러낼 수만 있다면 책의 두께가 베푸는 유용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 '편견의 두께만큼 두터운 연대기', 서평/이성형(세종연구소 초빙 연구위원)


‘피델 카스트로’를 덮었다. 저자의 의도를 걸러내서 나는 책을 덮은 것인가? 책을 준 선배에게 미안하지만 이 책은 또 다시 나의 서랍 속에 파묻혀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의 역사를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빛을 못 보게 될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 마이라이프

피델 카스트로.이냐시오 라모네 지음, 송병선 옮김, 현대문학(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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