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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국사학과 박찬승 교수
충남대 국사학과 박찬승 교수 ⓒ 김갑수
- 요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친일진상규명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학자로서 어떤 의견인가?
"무엇보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친일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했다면 이제 와서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산되었고, 그로 인해 역사의 청산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많은 국민들이 아직까지 친일역사 청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소위 '누더기 법'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은 대상자의 기준도 일정하지 않고, 절차도 너무 간단하게 되어 있어 졸속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 이런 염려 때문에 개정안이 마련되었고, 개정안에는 친일 범위 확대와 위원회의 공정성, 면밀한 조사 절차 등이 많이 보완된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와서 다시 국가권력이 중심이 되어 이 문제를 다루는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해 소명할 기회가 없는 것과 친일경력이 있던 사람들, 예를 들어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았을 경우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또한, 반민족 행위자를 선정하기 위한 기준에도 많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정안에 의하면 그 당시 고등관 이상은 당연범(반드시 포함)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고등관이라면 군인의 경우 당시의 소위로서 300∼400여 명 정도에 이른다.

경찰의 경우도 경시(지금의 총경 급)인데, 실제로 경시 이상은 20여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군인에 비해 경찰의 폭이 너무 좁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등관 이상이라는 일정한 기준을 설정할 경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당연범은 아니지만 경시 이하의 경우 조사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최근 일부에서 주장하는 범위 확대는 문제가 있다. 반민특위가 1천 명 정도를 조사 대상으로 했는데, 현재의 개정안에서는 적어도 2000∼3000명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상 무작정 범위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처벌 못지 않은 치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감정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이 일의 목적과 관련해 친일 대상 범위와 절차 등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 일부 여론에 의하면 "친일청산은 정치권이 아닌 역사학자의 역할"이라는 의견이 있다. 국가권력(또는 정치권)의 주도에 의한 친일청산을 반대하는가?
"학계에 맡기라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학계가 이를 규명하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반민특위의 재판기록도 극히 일부 자료만 공개되고 있다. 만약 학계만의 노력으로 규명이 가능했다면 왜 지금의 논란이 있겠는가?

부끄럽지만 역사학계 내에서 친일문제에 관해 학위논문을 쓰면 국내 대학에 취직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했다. 지금까지 대학 사학과에서 친일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학위논문은 거의 없다. 지금도 친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정치권이 친일청산의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진상규명은 더 어렵게 된다. 국가권력이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일부 정치인들이 학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한 민족문제연구소 예산을 국회가 전액 삭감하지 않았나? 그러다가 지금에 와서 학계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은 활동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했다."

-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친일진상규명과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북한에 대한 부역자들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다시 거론할 이유가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있어서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미 완료되었다. 심지어 연좌제까지 있어서 그들의 자손까지 피해를 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친일문제는 완료된 문제가 아니다."

- 일부에서는 "아픈 과거사를 다시 들춰낼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 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과의례'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 드골대통령이 나치에 부역한 인물들을 처벌할 때도 반대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드골이 왜 강행했겠는가? 국민들은 '친일파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부와 명예를 세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과 '벌'이 필요한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는 처벌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이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만약 또 다른 국가 위기가 왔을 때, 누가 국가를 위해서 싸우겠는가? 오히려 일제치하보다 더 많은 민족 배반자들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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