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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몇 년 전 호주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자연 풍경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무지개였다. 시드니에서도, 브리즈번에서도, 또 어디에서도 매일 같이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무지개는 찬란하고도 장엄했다. 나는 그 무지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탄을 했고, 종래에는 이상한 부러움을 가슴 가득 안아야 했다.

몇 년 전에 내가 사는 고장에서 무지개를 한번 본 적이 있다. 내 사는 곳이 시골이건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였다. 비가 내린 후 동쪽 하늘에 걸려 있는 무지개를 보는 순간 나는 환성을 질렀다. 동네 슈퍼마켓에 가던 걸음을 급히 되돌린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냈다.

"하늘에 무지개가 떴어. 얼른 나와서 무지개 좀 보라구!"

나는 소리를 쳤고, 아내와 아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지체 없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모두 연립주택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가까운 하늘에 뚜렷하게 걸려 있는 오색 무지개를 보고 거듭거듭 감탄하며 탄성을 질렀다. 아내에게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였고, 아이들에게는 난생 처음 보는 무지개였다.

이렇게 내 아이들은 몇 년 전에 우리 터전에서 무지개의 실체를 보았다. 무지개를 처음 보았던 그 감격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울러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지개라는 자연 사물의 실체를 보여 주었던 기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다행스러움은 묘한 아쉬움과 허전함 같은 것이기도 하다.

몇 해 전에는 또 우리 고장에서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다. 저녁 식사 후에 아내와 함께 군민체육관 길을 걷는데, 뜻밖에도 길가 풀숲에서 반딧불이가 날고 있었다. 단 한 마리였다. 우리 부부는 그 자리에 몸이 굳은 채로 "참으로 오랜만에 반딧불이를 본다"는 소리만 되뇌었다.

다음 순간 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고, 또 휴대폰을 지니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 내 아이들에게 반딧불이를 보여줄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그냥 속수무책으로 놓치고 마는 것이 너무도 아까웠다.

비록 한 마리였지만, 그리고 금세 멀리로 날아가 버렸지만 우리 부부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던 것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우리 주변에서도 아직 명을 이어가고 있는 반딧불이가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반딧불이를 또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그 후로 다시는 반딧불이를 볼 수 없었다. 그 날의 그 반딧불이가 우리 부부가 마지막으로 본 반딧불이인 셈이었다.

(2)

내 아이들은 아직까지 반딧불이를 보지 못했다. 고등학생인 딸아이도, 중학생인 아들 녀석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건만, 내 아이들이 아직까지 반딧불이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나는 묘한 자괴감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마음, 더 나아가 마치 죄를 짓고 사는 것만 같은 마음도 내 가슴에는 자리한다. 내 청년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반딧불이를 떠올리면 그런 묘한 마음이 더욱 커진다. 그 흔하던 반딧불이는 어디로 다 쫓아내 버리고, 어느덧 반딧불이를 볼 수 없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면구스러움이 커진다.

그런데 아직까지 반딧불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던 딸아이에게 드디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 '기회'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여름 방학 동안 학교 공부를 계속했던 딸 아이는 지난 주 토요일(14일) 집에 왔다. 딱 일주일 동안인 방학을 집에서 지내기 위해서였다. 주말의 피서 차량으로 길이라도 막히면 딸아이가 버스 안에서 고생을 할지도 몰라 내가 천안에 가서 내 차로 데리고 왔다. 만약 길이 막히면 내가 잘 아는 샛길들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 바람도 통하지 않는 찜통 같은 원룸에서 고생이 많았을 딸아이를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데리고 있고 싶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수요일 오후에 다시 천안에 가야 한다고 했다. 원룸에서 자고 목요일 아침 학교에 간 다음 관광버스를 타고 전라북도 무주엘 간다고 했다.

학교에서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가 신청을 받아 '생태체험 환경캠프'라는 이름의 행사를 무주에서 갖는데, 딸아이도 그 행사에 참가하기로 하고 참가비도 일찌감치 냈노라고 했다.

1박 2일 일정의 그 행사에 모두 40명이 참가 신청을 했는데, '생태체험 환경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학교 '내신'과 연결되는 '봉사활동'을 10시간 한 것으로 인정이 된다고 했다.

"생태체험 자체보다도 '봉사활동 열 시간' 때문에 참가 신청을 한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저에겐 생태체험 자체가 중요해요. 진짜로 생태체험을 해 보기 위해서 참가 신청을 한 거예요. 프로그램 중에는 목요일 저녁의 '반딧불이 축제' 참가도 있어요. 무주의 반딧불이 서식지에서 반딧불 축제라는 게 열린대요. 반딧불이를 실컷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이렇게 말하는 딸아이는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나는 딸아이의 그런 기대를 무시할 수 없어 수요일 오후에 딸아이를 버스 태워 천안으로 보내기로 했다.

(3)

그런데 화요일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요일 아침부터는 태풍 메기의 북상과 폭우 피해 소식이 주요 뉴스가 되었다. 오전에 천안의 B여고로 전화를 걸었다. B여고의 선생님들은 '생태체험 환경캠프'를 강행해야 할지 취소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기상과 현지 사정 등을 좀더 알아보고 결정을 해서 가부간을 오전 중으로 통보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행사가 취소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태풍 메기가 부산 앞 바다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리라는 기상 예보를 신뢰하며, 행사가 실행되기를 희망했다. 어머니는 내 편을 들었고, 아내는 딸아이 편을 들었다.

오전 11시쯤 천안 B여고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생태체험 환경캠프'를 예정대로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딸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딸아이를 적극 도와주기로 했다.

"앞으로 또 상황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 오늘은 움직이지 말자. 오늘 천안으로 가지말고 하루 더 집에서 놀아. 내일 새벽에 아빠가 태워다줄 테니까."
그러자 아내가 더욱 기뻐했다.
"잘됐네요. 내일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는데, 주먹밥이라도 만들어서 보내 줄 수 있겠네요."

그리고 아내는 주먹밥 만들 준비를 했다. 쇠고기, 감자, 양파, 당근 따위 주먹밥 재료들을 모두 마련해 놓았다.

텔레비전이 전해 주는 아테네 올림픽 상황을 지켜보느라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아내는 목요일 새벽 4시쯤에 몸을 일으켰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간다고 해도 모를 정도로 잠복을 타고난 사람인데, 보통 지극 정성이 아니었다.

아내는 주먹밥 재료들을 익혀서 밥과 버무린 다음 큰그릇에 담아 가지고 차에 실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줄곧 빗길을 달리며 어서 태풍이 물러가고 날이 개이기를 하늘에 빌었다.

6시경 천안 딸아이의 원룸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주먹밥 뭉치는 일을 했다. 일부는 그냥 뭉치고, 일부는 김 가루를 묻히고, 또 일부는 깻잎으로 싸고 했다. 선생님께도 드리라며 플라스틱 그릇에 푸짐하게 담아주었다. 그러며 아내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오늘밤에 반딧불이를 꼭 봐야 한다. 너 반딧불이 보라고 아빠와 엄마가 새벽부터 이리 고생을 한 거야."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 딸아이의 말은 걸작이었다.
"올림픽에 가서 메달 따오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주문일지도 모르겠네."

아내는 우산을 쓰고 딸아이를 배웅해 주러 나갔는데, 학교에까지 갔던 모양이었다. 교장 수녀님도 만나 뵙고, 버스가 떠나는 것까지 보고 왔다고 했다.

"근데 '생태체험 환경캠프'에 가는 아이들이 겨우 28명이에요. 원래는 4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는데…. 참가 신청을 한 아이들이 무려 열두 명이나 가지 않은 것은 일단은 날씨 탓이겠지만, 거기에는 부모들의 과잉보호 탓도 있을 거예요."

"부모들의 과잉보호 탓도 있을 거라구…?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딸에게 꼭 반딧불이를 보고 오라고, 새벽에 먼길 빗속을 달려오고 주먹밥까지 싸서 보내준 우리는 뭐지?"

"뭐긴 뭐예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반딧불이를 필요 이상으로 그리워하는, 조금은 얼빠진 사람들이죠."

그러며 아내는 쿡쿡 웃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딸아이는 전라북도 무주의 한 산촌이나 냇가에서 반딧불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거의 남지 않은 반딧불이 서식지에서 반딧불이를 보며 생태체험의 감동과 환경 변화의 안타까움을 함께 가슴에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딸아이가 '생태체험 환경캠프'에 참가하고 또 자연 속에서 반딧불이를 보는 일이 우리 현실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나도 그 뜻을 꼭 짚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어렴풋한 가운데서도 나는 간절히 기원한다. 내 딸아이가 오늘밤 반딧불이를 실컷 보게 되기를…. 난생 처음 보는 그 반딧불이에서도 생명의 신비를, 자연의 오묘함과 조물주의 섭리를 깊이 느끼게 되기를….

딸아, 오늘밤에 네가 머무는 자연 속에서 반딧불이를 실컷 보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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