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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혀끝을 차며 조궁에게 물었다.
“금릉 쪽에 알아봐 달라고 했던 일은..?”
조궁은 고개를 숙이며 뜸을 들였다.
“금릉의 연대부께서 전해 온 바에 의하면 그들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균대위(鈞臺衛)?”
균대(鈞臺)란 하왕조 때 걸왕이 성탕을 가둔 감옥을 말한다. 지하실에 물을 채워 놓은 감옥으로 본래 명칭은 하대(夏臺)라 하여 감옥이 있는 지명이지만, 한번 투옥되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대금옥(絶對禁獄)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를 해석하면 균대위라면 감옥을 지키는 위사를 가르키는 말이다.하지만 대명 천지에 균대위란 기구나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다만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이라면 서가와 송가를 핍박할만한 곳은 대명 천지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의심이 가는 곳입니다.”

상대부는 고개를 끄떡였다.자신도 이번 사안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올린 곳이 균대위다.

“하지만 그들은 십수년 전부터 일절 활동이 없었어.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정난(靖難)의 호국 때에도 그들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정난의 호국, 즉 정난의 변은 대명의 국운(國運)을 가로지르는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주원장의 넷째아들로 북경의 연왕이었던 주태(周埭)가 기병(起兵)하여 4년간의 전쟁 끝에 조카인 혜제를 몰아내고 황위(皇位)를 찬탈한 사건을 말한다.

그리고 그가 명나라 역사상 가장 강한 명을 만든 영락제다.

“그들이 나타났다면 황상께서 옥좌(玉座)에 오르시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거야. 하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지. 그런데 그들이 지금 나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연대부께서도 비슷한 말씀이 있었고 계속 조사 중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이라고 하기엔 이유가 합당치 않아...... ”
그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 나왔다.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 아니 해결이 되기커녕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그는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풍운삼절을 이용해 두 소녀를 데리고 와 그 내막을 알고자 했던 것이다.

“풍운삼절도 북경의 함(咸)어르신께 부탁해서 일을 맡긴 것인데..... ”
그런데 실패한 것이다.
계속해서 일은 꼬이고 있었다.
옆에서 입이 한자나 나온 자춘이 볼멘 소리를 했다.
“혹시... 칠개월전 서달대장군의 막내아들인 서경(徐慶)이 급사한 일과 관련이 없을까요?”
자기 딴에는 도움을 준다고 한 소리였다.

하지만 상대부나 조궁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허... 고작 생각하는게....”
상대부는 탄식을 내밷았다.
“서경은 외부로 알리기 창피한 일로 죽었소. 서가에서도 그 건에 대해서는 외부로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오.”

조궁의 말투에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자춘은 자기주장을 굽히기 싫은 듯 또 다시 볼멘 소리를 해댔다.

“서경이 복상사(腹上死)로 죽었다는걸 어떻게 확신하죠? 기녀를 품고 자다가 죽으면 복상사라고 단정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억지를 부리는 주장이다.

“서경은 술과 여자, 도박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해서 삼불호(三不好) 라는 안좋은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절강성(浙江省) 도지휘첨사(都指揮僉事)였죠. 아무리 가문의 후광을 입고 있었다고는 하나 뛰어난 무장임에는 분명하다구요.”

도지휘첨사는 지방의 군부(軍俯)를 장악하고 있는 도지휘사(都指揮使) 아래 네명의 장군들을 말한다. 대개 직접 대군을 이끌고 적과 전투를 벌이는 수뇌급의 장군이다. 조궁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그의 사인(死因)에 대해서는 조사가 끝나 결론이 난 상태요.”

도지휘첨사의 사인을 섯불리 조사할리 없다.헌데 뜻밖에도 상대부가 조궁에게 물었다.

“서경의 사인을 어디서 조사했지?”
조궁이 재빨리 대답했다.
“금의위(錦衣衛) 쪽이었습니다.”

금의위는 명 태조가 수족으로 부리던 정보감찰조직이다.명 태조는 감찰을 위해서 중앙과 지방에 도찰원(都察院)과 안찰사(按察使)를 두어 관리와 민정을 탐문했다. 그러나 그것도 모자라 황성과 수도를 방위한다는 명목으로 황제직속의 금의위를 설치해 병권(兵權)과 형권(刑權)을 가지는 특별 정보기관으로 활용하면서 공포의 전제황권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중요 관리에 관련된 죄나 변동사항에 대해서는 지방관들이 맡지 않고 금의위가 직접 조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도지휘첨사 서경의 죽음을 금의위가 조사한 것이 당연했다.

“복상사라는 사인도 금의위 쪽에서 나온 것이겠지?”

조궁은 그제서야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자신의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달았다.금의위의 조사와 결과를 당연히 믿었다.
“그렇습니다.”
“다시 조사해봐. 필요하다면 금의위에 그 사건의 서류를 요청하고...”
“금의위에 조사기록을 순순히 주겠습니까?”
“줄거야....날개 죽지 꺽인 금의위는 거절하지 못해. 하지만 요구자는 적당히 이곳 낙양성 안찰사 명의로 하던지,,,,,, 명분은 주어야지.”

과거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력집단이 금의위다. 금의위가 하는 일에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따질 수도 없었다.명 태조가 벌인 개국공신의 숙청작업에 전면에서 있었던 곳이 금의위다.그들의 황제 직속의 특수임무를 수행한 병권과 형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특무조직이었다.

하지만 태조 사후 영락제의 공격에 금릉이 무너지자 혜제를 위해 끝까지 싸웠던 금의위는 말 그대로 숙청대상이 되었다. 금의위의 중요성에 비추어 없애버릴 수 없었지만 수뇌부 인물들 대부분이 교체되고, 금의위 요직에도 모두 영락제의 인물들로 바뀌어 버리면서 첩보나 정보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그리고 그 대신에 비밀감찰조직으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환관들의 비밀조직이다.

영락 18년에 동창(東廠)이라는 정식 국가기관이 될 이 비밀조직은 본래 영락제 초기에 강남의 세도가나 지방 세도가들의 북경 천도(遷都)에 대한 불만 및 황제에 대한 모반을 감시하기 위하여 환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첩보조직이다. 사실 영락제는 수도인 금릉을 함락하고 나서도 금릉에 머물지 않고 북경에 머물러 있으면서 황위찬탈에 거부하는 지방호족들, 특히 강남귀족들의 발호를 미연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처음부터 정보를 다시 수집해. 분명 무언가 있어.”
상대부는 조궁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특히 강남서가와 송가에 대한 조사를 더 세밀히 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오중회(吳中會)의 움직임은 ?”
“오중회의 인물들이 움직이고는 있으나 주시하고만 있을 뿐 이일에 적극 개입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안이 무언지 알고 있을까?”
조궁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수뇌부 몇 명 정도만 무언가 감을 잡은 듯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보고 되었습니다.”
“에---잉--- 그런데 우리는 아직 감도 못잡고 있다 이거지.”
“죄송합니다.”
조궁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무림 쪽의 움직임도 알아봐. 그들이 암중으로 두 여자를 보호하고 있을 것이야.”
“이미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서장군가의 위사(衛士) 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림인 들이 암중으로 돕고 있는 중입니다.”
상대부는 조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조궁”
“예. 상대부.”
“이런 정도로는 황상을 모시지 못해. 인원을 늘리고 우리 조직을 강화하는 방도를 찾아봐.”

상대부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이것은 경고다.어쩌면 마지막 경고일 수도 있었다. 환관들 간에는 끈끈한 동지애(同志愛)가 있었다.가족과 같은 유대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거세당한 자들의 열등감이 그렇게 표출되는 것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관이 아닌 조궁과 같은 자는 한번의 실수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 것이 이 환관들이 만든 조직이다.조궁은 더욱 깊게 허리를 굽혔다.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가봐.”

조궁은 상대부의 손짓에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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