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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파라미타청소년협회와 ㈔우리는선우가 주관하는 '한·몽 청소년 국제친선교류캠프'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83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인 참가자들이 함께 했으며 신원보증을 받기가 어려워 그 동안 국제캠프에 참석하기 힘들었던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청소년 25명도 이번 일정을 함께 했다...<필자 주>

▲ 인천공항에서 단체 사진 한 컷. 역시 몽골답사를 가시던 새박사 윤무부 교수님도 찍는 김에 함께...
ⓒ 김동훈
'몽골'하면 그저 떠오르는 것은 유목민, 칭기즈칸, 또는 못 사는 나라 정도일까.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그리 연관 없어 보이는 몽골이라는 나라를 참가자 대부분이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의 첫 나라로 삼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번 캠프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은 몽골사람, 몽골문화를 만나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나야 하는 몽골 사람들 역시 우리 아이들 또래의 청소년들로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쉽지 않은 만남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이들은 서로 교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나야 하는 몽골문화에는 2000년 전부터 전래되어 와서 16세기 이후 몽골에서 꽃을 피웠다는 몽골의 불교문화와, 장대한 역사를 자랑하고 세계를 석권했던 유목민의 문화가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전통에 대해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인가?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이들은 역시나 들떠 있다. 그 들떠 있음에 비행기표나 여권을 아무 곳에나 놓아두고 다니는 바람에 인솔하는 선생님들은 여지없이 진땀을 흘린다.

익숙하지 않은 출국신고서를 각자가 써야 하고, 선생님 따라 한국 돈을 달러로 환전을 해야 하는 등 아이들이 배워야 할 일이 많다. 이렇게 하게 되는 첫 해외여행의 경험들이 나중에 귀중한 자산이 되기를 바래본다.

▲ 테렐지 공원에서-말타는 법을 배우자!!!
ⓒ 김동훈
3시간의 비행 끝에 아이들이 탄 몽골항공 여객기는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청사 밖에서는 벌써 우리가 갈 나이람달 국제수련원의 차량들이 몽골인 선생님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마중을 나온 그들이 고맙다. 드문드문 한국말로 인사를 해주는 나이람달의 몽골인 선생님들을 보며 정겨움을 느껴진다.

몽골은 우리보다 한 시간 늦으나 여름에는 서머타임을 적용하여 사실상 우리나라와 시차가 없다. 대신 유의할 것은 밤 10시나 되어서야 해가 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비행기 안에서 밤 8시, 9시가 넘어도 떨어질 줄 모르는 해를 보면서 특별한 첫 번째 해외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두 번의 서먹서먹함을 이겨야 한다. 한 번은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몇 번 못 본 친구들이고, 다음으로는 몽골에서 만나게 될 몽골인 친구들이다. 기대 반 두려움 반, 어떻게 대할 것인가?

초원 한 가운데 웬 골프장?

▲ 테렐지 - 우리 숙소 옆의 거대한 바위. 정말 크네...
ⓒ 김동훈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30㎞ 떨어진 나이람달 수련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울란바토르 시내로 들어간다. 밤늦게 도착하여 몽골의 정경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에게 울란바토르로 가는 길 양 옆으로 우리가 궁금해 하던 초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넓디넓은 초원, 새파란 하늘, 드문드문 몽골식 전통가옥이라는 하얀 게르들이 보이고 방목하는 말들도 보인다. 크게 눈에 보이는 건 그저 하늘과 초원뿐.

아, 그런데 가다보니 초원 한가운데 깃발이 꽂혀 있네. 이런, 이건 골프장이다. 초원 한가운데 골프장이라니. 그러나 신기하게도 골프를 치는 아저씨들이 있다. 골프를 치는 아저씨들 옆으로는 말 탄 아저씨들도 지나간다. 재미있을까 몰라….

울란바토르에서 우리 아이들을 처음 맞은 것은 몽골 최대의 사찰인 간단사이다. 이번 캠프는 간단사의 불교대학 강당에서 여러 손님들이 참석하신 가운데 입소식으로 정식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의 선웅 스님(파라미타청소년협회 사무총장)과 몽골의 푸레밭 스님(간단사 불교미술대학학장)을 모시고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다짐을 보여주는 선서를 하고 무사히 캠프가 끝마쳐지기를 기원하는 발원문을 낭독한다.

입소식 후에는 간단사 탐방이 있었다. 현재 간단사는 몽골 불교의 중심으로써 그 중심건물인 관음전에는 높이 33m, 무게 20t짜리 중앙아시아에서는 최대 크기라는 관음보살상이 서 있었다.

사회주의 시절 70여년 동안 몽골인들의 전통문화를 대변하던 불교는 철저히 탄압 받아서 900여개에 이르던 사찰은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파괴되었고 간단사 역시 소련군의 마굿간으로 사용되다가 복원된 것이라 한다.

간단사 관음전의 대형 관음보살상은 1996년 완성된 것으로 90년 몽골 개방 이후 종교를 통하여 다시 한번 새롭게 사회를 통합하려던 5년간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상의 웅장함만큼이나 몽골인들의 웅지도 펴나갈 날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 테렐지 국립공원 - 오늘은 게르에서 잘 것이여...
ⓒ 김동훈
다음으로 우리가 묵게 된 곳은 테렐지 국립공원이었다. 기암괴석들로 인해 영화 스타워즈 촬영예정지였고, 몽골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신혼여행지이며, 옛 사회주의 시절 공산당의 여름 휴양지로 쓰이던 곳이 테렐지이다.

지금은 게르 캠프들로 차 있는 가장 몽골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어 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몽골의 전통문화의 하나인 유목생활을 체험하게 될 터였다.

우선 하룻밤 자게 될 각자의 게르를 배정받게 되었다. 게르는 유목민들이 이동생활을 하면서 금방 짓고 부수고 할 수 있는 조립식 건물이다. 게르 안에는 벽을 따라 4개의 침대가 빙둘러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난로가 놓여져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은 샤워는 어디에서 하고 화장실은 어디로 가는 거지? 애초에 편한 생활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며칠동안 샤워를 못해도 그냥 버텨야 한다고 미리 들은 얘기가 있었으니 씻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딱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느낄 수 있는 게 유목민들의 생활 속에서는 불필요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게르에서 산다면야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사들일 수도 없고 불필요하게 치장하는 데 돈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유목민들은 이동성을 높이기 위하여 간소함을 생활화했으며 정착민 사회보다는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이루면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삶의 지혜는 더욱 깊게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초원에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본다. 말로만 듣던 은하수가 정말 우윳빛으로 하늘에 펼쳐져 있다. 떨어지는 별을 정말 볼 수가 있다. 소원을 빌 새도 없이 그렇게 빨리 떨어지는 게 말로만 듣던 유성이었던가 보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많은 별을 볼 기회가 한국에서는 있었을까? 있었다 해도 이렇게 생생하게 맑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아이들이 절로 감탄사를 내지른다. 이 순간만큼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고 경외의 대상이 되어간다. 그 마음 계속 간직해준다면 좋으련만….

말 타고 게르와 전통음식도 만들어보고...

▲ 나이람달 수련원 - 아침체조시간. 몽골, 한국, 일본, 러시아 모든 얘들이 다 모였다. 으쌰으쌰!!!
ⓒ 김동훈
본격적인 유목생활 체험이 시작되었다. 세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게르를 직접 지어보고, 한 팀은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려보고, 나머지 한 팀은 몽골전통음식을 만들어 본다.

여기서 말을 타는 것은 우리가 제주도에 가서 잠깐 말등에 올라앉았다가 사진만 찍고 내려오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말안장 위에 올라가서는 한 시간이고 초원을 트래킹해야 한다.

말안장에 올라서는 것부터 쉽지는 않다. 겁을 먹고 피하려는 아이들도 있지만 무섭게 지켜보는 선생님들 앞에서 어느 아이도 반드시 말안장에 올라서게 마련이다. 그렇게 탄 아이들은 처음의 무서움도 금방 잊어버리고 자기보다 어린 몽골아이들이 고삐를 끄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 중에 어떤 아이들은 고삐를 직접 본인이 고삐를 쥐고 말을 타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타다보면 승마는 두려움이 아니고 즐거움이 되어간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이다. 취미난에 우리는 '승마'라고 두 글자를 적을 것이다.

말들이 출발하는 지점에서는 다른 조들이 전통가옥인 게르를 지어보고 있다. 마차에 싣고 온 게르의 재료들이 아이들 앞에 놓인다. 이것은 거대한 레고를 짓는 것이다. 평생 가도 남이 지어놓은 집에 살 뿐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지어보는 귀중한 기회이다. 설명을 들으며 척척 올리는 사이에 게르는 모양을 갖추게 된다. 어설픔 속에 재미를 느껴간다.

게르 캠프의 식당에서는 아이들이 몽골음식을 만들어보고 있다. 몽골사람들의 주식인 양고기를 이용하여 보츠라는 만두를 만들어본다. 만드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맛에서 승부가 나버린다.

언제 자신들이 만든 음식이 이렇게 맛있던 적이 있었던가! 나 먹기도 바쁘지만 남들에게 자랑하기도 바쁘다. 몸고생을 좀 해야 하는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가장 입을 즐겁게 했던 프로그램 같다. 얘들아, 집에서도 그렇게 즐겁게 음식을 만들어보렴.

테렐지에서의 캠프를 마치고 나이람달로 다시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한국인 청소년들끼리의 몽골체험행사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몽골학생들과 어울려야 한다. 또 다른 경험을 위해 출발!

서먹함도 잠시, 몽골아이들과 어울림 한마당

나이람달에 돌아와 보니 벌써 일본 학생들에 러시아 학생들까지 들어와 있다고 한다. 비어 있던 옆방들이 몽골학생들로 차 있다. 우리 아이들은 미리 배운 몽골어 인사말로 말을 걸어본다. "사인 바인 노!" 그러나 몽골인 선생님들 말고는 제대로 대꾸해주는 사람들이 없다. 몽골인 아이들도 한국인 아이들이 서먹서먹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러나 그런 서먹함도 단 하루만에 깨져버린다. 우리 아이들은 벌써부터 몽골아이들하고 장난치기에 바쁘다. 서로들 이름을 아는 것은 기본이고 선물을 주려는데 안 받고 도망간다고 선생님에게 따지러 온다. 쫓아다니면서 꼬집고 장난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 나이람달 수련원 몽골 선생님들의 환영 댄스
ⓒ 김동훈
이젠 여기저기서 "싸인 바이 노!"라는 인사말이 예사로 들린다. 이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서로 영어를 잘해서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공감대를 이룰만한 일도 없었을 것이면서 아이들은 잘도 서로들 친해진다. 친해지다 못해 심한 장난들로 선생님들 잠 못 재울 정도가 되면 이들의 적응력은 도무지 불가사의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른들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게 있지 않을까 한다. 행사 내내 어른들은 손님으로 또는 진행요원으로 하나의 대상으로써 몽골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도 연락할 친구 하나 만들기가 쉽지 않다.

아는 단어라고는 '안녕하세요' 밖에 모르는데도 금세 친해질 수 있는 게 아이들의 무서운 힘일 것이다. 어른들은 서로들 너무 아는 게 많아서 부딪히는 것이 많은데 말이다.

인종, 종교, 민족, 지역 등 어른들은 사심 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에 따져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행복한 만남을 스스로 피곤하게 하는 족쇄를 어른들은 스스로 차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 통하는 힘이 아이들에게는 있다.

아이들의 가까움은 내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면에서도 나타났다. 참 보면서도 신기한 것이긴 했지만 딱 갖다 놓으면 몽골 애들하고 우리 애들하고 전혀 구분이 안 간다는 것이다.

이번에 캠프를 취재하기 위해서 동행한 기자들이 가장 애를 먹은 것은 이 부분이었다. 분명히 제목은 국제교류캠프인데 사진을 찍으면 전부 똑같아 보이니 외국인과의 교류 장면을 사진으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몽골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은 외형적으로 보아도 거리감이 없다. 정말 그네들과 우리는 한 뿌리였을까?

어! 저기 13번, 20번 서울 시내버스가 그냥 그대로 다니네!

아이들이 시내를 나갈 기회가 생겼다. 울란바토르 중심가에 있는 국영백화점에 가본다. 펠트천으로 만든 가방과 슬리퍼를 사본다. 이들의 전통가옥인 게르가 기념품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말안장에 화살도 파네. 역시 유목민족이야.

특이한 건 기념품점마다 그림을 많이 판다는 것이다. 가죽 위에다 주로 유목생활의 정경을 표현한 소박한 그림들이 많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들에게는 유목생활과 긴 겨울의 여유 속에서 음악이나 미술 등의 분야에서 대중적인 예술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한다.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했던 민족이 예술도 사랑했다니, 이들에게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울란바토르의 시가지를 보니 시내를 지나가는 차량 중 둘에 하나는 한국 차다. 한국의 중고차들은 죄다 여기에 와 있나보다. 신호등도 제대로 없고 중앙선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차들은 잘도 달린다.

특이한 것은 운전대가 우리나라처럼 왼쪽 좌석에 있는 것도 있지만 오른쪽 좌석에 있는 차들도 그냥 다닌다는 것이다. 어! 저기 13번, 20번 서울 시내버스가 그냥 그대로 다니네!

▲ 마지막 캠프 파이어의 밤 - 댄스파티다!!!
ⓒ 김동훈
나이람달 안에서는 몽골말을 배우고 몽골노래를 배우고 몽골의 전통놀이를 배울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도 우리의 노래와 놀이들을 몽골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캠프파이어로 하나되고 장중한 해단식도 몽골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해단식에서 아이들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헤어지는 아쉬움이 그저 어색해 어떻게 할지를 모를 따름이다. 눈물만 흘리면 연방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이 얄밉기만 하다.

먼저 떠나가야 하는 한국 아이들은 그새 친구가 된 아이들에게 선물을 건네고 자신을 잊지말라며 자신의 명찰까지 건넨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눈시울을 적시며 꼭 끌어안는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부럽다. 성인들을 위한 '묻지마 캠프'같은 것이라도 하나 기획해야겠다. 헤어짐이 아프지만 이렇게 부러울 때가 또 있으랴…. 이럴 땐 나도 저이들과 같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몽골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출발하는 버스를 배웅한다. 나이람달 수련원을 빠져 나오려니 몽골 선생님 한 분이 저 멀리 버스를 따라 뛰어오면서 손을 흔든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저 흔들어 보이는 손에 우리들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몽골항공의 비행기가 이륙한다. 비행기 창가 너머로 보이는 저 너른 대륙도 이제는 지난 시간이 되려 한다.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 다시 돌아온다고 약속했지만 아직은 그저 마음뿐이다. 바야르테(안녕히) 몽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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