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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에게 일제에 의한 강제점령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국회 안팎에서 '과거사 특위' 구성 문제를 놓고 여야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 시기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당하고, 민족 스스로의 발전이 중단되는 고통의 역사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그 역사 안에는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민족독립을 위해 투쟁한 역사가 존재했다. 필자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그 투쟁의 역사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뜨거운 심장박동이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가는 길
ⓒ 박성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부끄러운 지난날의 역사 속에서 온갖 고문과 억압에 굽히지 않았던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금씩 다가오는 가을을 맞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당시의 아픔을 관람객들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체험실도 설치돼 있었다.

그 체험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관'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애국지사들을 세워놓았던 장소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벽관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니 작은 창은 달려 있으나 그 곳은 완전히 '닫힌' 공간이었고 숨쉬는 것조차 힘겹기 시작했다.

▲ 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 박성필
잠시 숨을 돌리고 지하1층에 마련된 '체험의 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몇 계단을 밟지도 못한 채 잠시 주춤하고 말았다. 무슨 냄새였을까, 그 악명 높았던 '보안과 지하감방'으로 사용되었던 그 곳에서는 그저 '지하실 냄새'라고 하기에는 온갖 서러움이 묻어 나오는 듯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다.

'체험의 장'은 일제가 저지른 잔혹한 각종 고문 모습들이 문헌과 고증을 통해 재현되어 있었다. 특히 일제가 허위자백을 받기 위해 여성 애국지사들에게 했던 고문행위들을 재현해 놓은 광경을 지켜보곤 끓어오르는 분노와 서러움에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발길을 옮긴 곳은 '경성감옥'의 내부였다. 굳은 철문이 닫혀 있었을 양쪽 출입구는 열려 있고, 감방의 출입구도 자연스럽게 열려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문이 열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또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잔혹한 식민통치의 만행에 맞서 서러운 싸움을 하였던가.

▲ 일제가 지은 '경성감옥'의 내부모습
ⓒ 박성필
본래 허술한 목조건물이었던 경성감옥은 1910년대에 옥사 중앙에서 투옥자들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T자형으로 고쳐지은 것이라 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살펴보다 낯선 '굴'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출입금지라는 빨간 글씨와 사슬이 먼저 눈에 띄는 이 통로는 '시구문'. 애국지사들을 처형한 후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 밖으로 운반하기 위해 뚫어놓은 비밀통로라고 한다.

사적 324호로 지정된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외롭게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었다. 굵은 몸통을 지닌 이 미루나무에는 특별한 이름 하나가 있는데 '통곡의 미루나무'이다. 처형장으로 들어가는 사형수들이 이 나무를 붙들고 통곡했다고 한다. 사형장 안에 있는 또 한 그루의 나무에는 사형수들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만난 '통곡의 미루나무'
ⓒ 박성필
이 '통곡의 미루나무' 앞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규명' 문제를 다시 생각했다. 이 미루나무 앞에서 그 누가 친일문제 규명에 반대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멀리 여의도에서의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에 아마도 이 나무는 오늘도 울고 있지 않을까.

이 역사관 곳곳에서는 붉은 색 벽돌을 볼 수 있다. 이 붉은 벽돌은 일제가 수감 중에 있던 애국지사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구워낸 것이라 한다. 널려 있는 붉은 벽돌까지 역사의 산물이라 생각하니 발걸음 하나도 옮기는 것이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하신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열과 혼이 깃든 독립의 현장이었다. 그 곳에 홀로 서 부끄러운 지난날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묘안'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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