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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녀석이 자꾸 내게 노래를 불러야 된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가만히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방학 숙제 중에 가족과 노래를 불러 녹음 해오기가 있었던 겁니다.

마음속으로 ' 참 그 숙제 괜찮네, 한 번 같이 하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얼마 전 저녁, 아내와 아들녀석과 상의해 같이 부를 노래를 하나 찾았답니다. TV광고를 통해 들은 양희은의 '내 어린 날의 학교'라는 노래로 정했죠. 약 두 달 전 양희은 콘서트에 가서 그 노래를 듣고, 힘들게 그 앨범을 구해 같이 부르고 있던 차에 아내의 제안으로 그 노래로 숙제를 하기로 했던 거죠.

먼저 그 곡의 정확한 음을 따라잡기 위해 몇 번 반복해 듣고, 각자가 솔로로 부를 부분과 다 같이 합창할 부분을 정한 뒤 피아노로 갔습니다. 아내가 치는 피아노 선율에 따라 아들 녀석이 먼저 선창을 하고, 그 다음은 아내가, 그리고 제가 부르는 순서였죠. 언제나 그랬듯 저는 자주 음을 놓쳤지만, 아들 녀석은 언제 그 노래를 연습했는지 곧잘 부르더군요.

'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양희은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아들 녀석의 목소리와도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항상 세련된 가수들의 목소리만 듣다 이렇게 맑은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를 들었을 때의 상쾌함이 그 녀석의 목소릴 통해 제게도 전해 왔던 거죠.

기쁜 마음으로 연습을 하고, 이제 녹음할 시간만 남았는데, 우리 가족의 예쁜 목소리를 담을 녹음기가 고장이 나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의 실망감을 항상 그래왔듯이 입바른 소리로 달래주고, 아내에게 그 숙제를 넘겨 버렸답니다. 어디 가서 녹음기 하나 빌려 놓으라고 퉁명스럽게 말만 하고선 그냥 돌아서 버린 거죠.

그리고 어제 저녁, 아들녀석의 방학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이웃에 몇 군데 알아봤고, 아들은 같은 반 친구에게 녹음기를 빌리려고 연락을 해봤지만 결국은 우리의 노래를 담을 녹음기를 구하질 못했답니다. 그리곤 그냥, 녀석의 실망감이 의외로 덜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밤늦게 잠을 청했습니다.

오늘 아침, 방학이 끝나 등교한다고 분주한 아들 녀석을 뒤로하고 집을 나오는데 왜 이리 마음이 시린지요. 아침에 나오기 전 아내와는 뭘 어떻게 해서 돈 많이 벌어 잘먹고 잘살자는 얘기만 급하게 하고, 나온 저는 회사에 도착한 이후 오전 내내 아들의 못다한 숙제 생각만 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일 때문에 접대를 한다고 몇 십만원을 부담 없이 쓰면서도, 그 녹음기 하나를 사주지 못해 녀석에게 부담을 준 것이 못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더욱 더 맘에 남는 안타까움은 어제 저녁 숙제를 못해가도 엄마 아빠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걸 눈치채고, 자신도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마음이 내게 보였던 겁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선생님 말씀 듣고, 숙제부터 먼저 하고 놀아라'라는 우리의 성의 없는 소리가 녀석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지…. 이번 일을 계기로 녀석이 우리의 이런 게으름을 알게 된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기까지 합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부모인 이상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을 하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고요. 하지만 현실의 저는 귀중한 시간을 그냥 버려버리고 세상살이에서 해야 할 일 하나를 놓치고, 아들과 손을 잡고 같이 가야할 소중한 순간을 그냥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성문과 다짐을 글로 남겨 놓으려고 합니다. 내 소중한 아들 녀석에게 '내가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게으름에 대해 사과를 하며, 삶에 있어 소중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과 해야할 일에 대한 지나침이 어리석다는 걸, 또한 인생은 이런 순간 순간이 쌓이고 모여 어른이 되고 커 나간다'는 걸 늦었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될까요?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내게 소중한 기회를 다시 주겠죠. 그걸 밑천 삼아 여느 반성문 같이 이렇게 상투적으로 한 마디 더 하게 되네요.

"아들아! 미안하다! 앞으론 더 잘 할게. 그리고, 꼭 우리가 다 같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남겨 놓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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