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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58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중인 지율스님이 웃음띤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있다.
27일 오전 58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중인 지율스님이 웃음띤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 문화를 바꾸는 일입니다. 아이들한테는 아마 이 시대가 낳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요. 도롱뇽 한 마리가 청와대 담을 넘어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다면 우리 산하에 봄이 찾아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27일 오전 10시. 58일간 단식을 마치고 동국대 강남한방병원에 입원중인 지율스님을 찾아갔다. 지율스님은 생각보단 상태가 많이 호전돼 있었다.

지율스님은 27일 한국철도시설공단, 환경부와 맺은 합의 내용에 대해 "사실 해결된 것은 없지만 나름대로 부족하지 않은 결과였다"고 평가하고 "합의 결과가 완벽하지 않았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열심히 연대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나 정부의 협상 태도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지율스님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천의 얼굴'을 지닌 것 같았다"고 정부의 양면성을 비난하는 한편, "왜 그들이 그런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상생과 화해의 원리를 재삼 강조하기도 했다.

지율스님은 1시간가량의 인터뷰 내내 자성의 목소리를 강조했다. 지율스님은 "생명파괴 시대를 살고 있는 나 역시 공범"이라며 참회의 심경으로 단식에 돌입했음을 강조했다. 불교 사찰의 환경파괴 지적에 대해서도 "불교계 스스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율스님은 현재 부산고법에서 진행 중인 항고심 결과가 연말까지 나올 수 있다는 예상에 대해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며 "천성산의 진정한 생태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주 월요일(30일) 퇴원 예정인 지율스님은 항고심 재판 참석 외에도 '100만인 소송인단' 모집, 생명연대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은 지율스님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건강은 어떤가.
지율스님.
지율스님. ⓒ 오마이뉴스 권우성
"몇 가지 검사는 했는데 크게 이상은 없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몸은 허구다. 몸도 천성산도 이 세계도 다 비어있다고 생각한다. 단식을 하며 잘 견뎌낸 게 아니라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 단식을 마친 심경은.
"천성산이 나를 불렀다. 천성산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픔에 공명할 수 있었다. 사실 누구도 천성산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작은 문을 하나 냈다고 생각한다."

-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이 문제를 선악의 문제로 놓고 해왔던 것에 대해 반성한다. 정부도 입장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은 간과해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결함만 이야기했지, 그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세상에 완벽한 선악은 없다. 나 역시 많은 결함이 있다. 반대 입장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일을 했어야 했는데…. 이번 단식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상생과 화해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 이번 합의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운동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옳은 해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는 게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는데 의미가 있다.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개정안 마련을 위해 나섰다는 것이 큰 성과다. 나름대로 합의 결과가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합의 결과가 완벽하지 않았다고 불평하기보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겠다."

- 단식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단식 50일이 넘었는데도 청와대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때다. 정말 이 정부가 민의에 귀 기울일 의지가 없는 것인가 하고 절망했다. 정부와 행정 관료의 문제해결 방식을 보면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부가 가진 이면성에 놀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서로의 견해차를 줄어야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소송의) 결과물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 그동안 환경운동연합과 조계종 총무원의 대응에 대해 많은 섭섭함을 토로했는데.
"이번 기회가 자정의 기회가 됐으면 한다. 그분들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발전이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항고심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희망을 마음의 깃대로 세우고 운동을 해왔는데 연말까지 판결이 내려진다는 것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짧은 기간 동안 재조사가 이뤄진다면 많은 증거와 자료를 제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다. 외국에서라도 터널공사로 인한 생태·영향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을 모셔오려고 한다."

- 대형사찰 등 불교계의 환경 파괴를 지적하며 단식에 비판적인 여론도 있었는데.
"나 역시 이런 생명파괴 사회의 주범이라는 생각으로 참회의 뜻을 담아 단식을 진행했다. 그동안 사회적 아픔에 참여했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내 몸을 통해서라고 그런 사회적 아픔에 함께 하고자 한다. 온전히 내 몫이고 우리 시대의 몫이다. 불교계 역시 이번 천성산 문제 등을 통해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지침을 만들어 가야 한다. 떠안고 가야 하는 문제다.

사찰환경 피해, 수행환경 피해 등을 이유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았다. 수행자의 모습은 거리든, 산사(山寺)든 크게 변하지 않는다. 대형불사 건립, 무분별한 도로확장. 우리 문화 속에서 불교계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제기를 계속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반전 단식 벌이고 있는 김재복 수사께 제일 미안"
단식 중 가장 먹고싶었던 건 '콩나물국'

단식을 마친 지율스님 마음속에는 무거운 짐이 하나 남아있다. 지율스님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이라크파병반대 단식농성 중이었던 김재복 수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 수사의 단식은 현재 30일을 훌쩍 넘어섰다.

지율스님은 "단식을 풀 때 김 수사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며 연신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김 수사에 대한 지율스님의 안타까움은 각별했다. "아직도 이렇게 문자가 와요" 지율스님이 기자에게 보여준 핸드폰에는 '식사 하셨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스님, 단식이 끝나고 가장 드시고 싶었던 게 뭐예요?" 기자의 질문에 스님은 "콩나물국이 너무 먹고 싶었다"며 단식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지율스님은 "청와대 농성장 뒤에 주택가가 있는데 아침에 산책을 가면 일제히 콩나물국 냄새가 났다"며 "이렇게 혼자 콩나물국을 먹게 되니 김 수사님께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단식 직전 찾아온 환경부 장관에게 항의하시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라고 당시 심경을 묻자, 지율스님은 쑥스러워하며 "원래 화를 잘 내요. 바람직한 수행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제가 그렇게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에 이렇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겸연쩍어했다.

지율스님은 "제가 중도를 잃었다고 지적하는 스님들도 있는데 그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라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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