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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구경 하니 스트레스도 쫙 풀리고 너무 좋았지.”
“아마 아주 옛날에 장충체육관인가 가보고 내 생전에 처음인 거 같어.”
"너무 고맙지, 어느 자식들이 이렇게 해주겠어.”


지난 8월23일 요양원 어르신들의 특별한 문화체험이 있었다. 중년부터 노년층을 위한 최장수 프로그램인 KBS가요무대 공개방송을 직접 방청한 것이다.

▲ 녹화가 끝난 세트에서 기념촬영.
ⓒ 정은숙
“그냥 텔레비전에서 보면 되지. 여러 사람 폐 끼치게 뭐 하러…” 라고 사양하시던 어르신들도 막상 방송국 구경을 가신다고 하니 고운 분(粉)에 립스틱까지 챙겨 바르시고 호기심에 찬 얼굴로 나서셨다.

방송국에 도착해, 녹화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갓 삶아낸 야들야들한 국수와 얇게 저민 고기가 숭숭 들어간 뜨끈뜨끈한 설렁탕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드시고 식당에 있는 박하사탕까지 한입 가득 물고 방송국 공개홀에 둘러앉았다. 방송국 직원들의 안내로 휠체어 타신 분들은 무대 앞쪽 비상문으로 들어가셨는데 분장실에서 대기중인 가수들의 얼굴을 알아보시며 좋아하셨다.

사회자의 구수한 입담에 맞추어 화려한 조명과 무용단들의 현란한 몸 동작. 분주히 돌아가는 공개방송 현장에서 연신 벽에 설치된 모니터 한번 보시고, 무대 위를 한번 보시고, 어리둥절 여기저기 살피면서도 열심히 박수를 치셨다. 손바닥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도 잊으실 정도였다.

어르신들이 젊었을 때 유행했던 '소양강 처녀', '대전 블루스' 등을 부른 원로 가수들과 김부자, 홍민, 장재남, 현철씨 등을 보면서 신나 하셨다. 방송에서 얼굴이 알려진 가수들도 가까이서 보니 많이 늙었다며 그 화려한 가수들도 세월의 흐름 앞에선 어쩔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하셨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요양원에 입소한 이후로는 외출도 자유롭지 않은 어르신들, 누군가 찾아와 주는 것도 고맙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끔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고 싶기도 하다.

어르신들도 각자 사고 싶은 것도 있고, 색다른 것이 먹고 싶기도 하고, 몸은 힘들지만 구경하고 싶은 것이 있기도 하다. 일년에 한두 번 봄, 가을로 온천이나 민속촌 등 나들이를 가시기는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녀오고 나면 휠체어를 밀어준 봉사자나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제대로 부탁도 못하신다.

늦은 시간에 진행된 프로그램이라 평상시 보다 늦게 주무셨다.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의 모습으로 잠을 청하시는 어르신들은 녹화된 내용이 방송되는 날이면 또 한 번 들뜨실 것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외출해야 하는 요양원 어르신들에겐 결코 쉬운 일 만은 아니다.

몇 년 전 구경했던 동물원 캥거루를 해가 바뀌어도 두고두고 추억으로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어르신들의 추억의 앨범에 또 다른 한 장을 채워드리기 위해,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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