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을 다한 후원회는 '감사함'을 안고 해산합니다."
미국의 국가기밀을 한국 정부에 넘겨준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른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의 구명과 생계지원을 위해 노력해 온 로버트 김 후원회가 31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해산식을 갖고 13개월 만에 모든 공식활동을 접었다.
각계 60여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모임에서 이웅진 후원회장은 "로버트 김 사건을 객관적으로 알리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것 그리고 실제로 도움을 주자는 출범 당시의 목표들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판단해 해산을 결정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후원회가 해산함에 따라 그간 진행해 오던 ARS 모금 등 로버트 김을 돕기 위한 후원 활동도 이날로 모두 마감됐다. 하지만 15명 안팎의 후견인들로 조직된 동아리를 별도로 두어 로버트 김의 사회활동 복귀와 생활지원을 계속 돕게 된다.
로버트 김은 이날 후원회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많은 밤을 지새우고 가지 않아야 할 곳을 가야 했던 고충을 이해해 준 국민들께 감사한다"고 인사하며 "이 모임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전화로만 인사를 대신 전하게 되어 아쉽다"고 전했다.
로버트 김은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느라 아플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며 건강하다"고 근황을 전하고 고국의 후대들을 위한 교육사업 등 자신의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음을 내비쳤다.
| | "끈끈한 조국애가 한국 역사 이어온 원동력" | | | 해산 선언한 이웅진 로버트 김 후원회장 | | | |
| | | ▲ 이웅진 로버트 김 후원회장 | | 그간 후원회를 이끌어 온 이웅진 회장은 "국민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8년이란 긴 세월을 한결같이 로버트 김을 걱정하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웅진 회장은 "후원회가 출범 취지의 목표와 약속을 지키고 사회의 관심 속에 해산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후원회를 통해 무엇보다 조국을 도운 사람을 그 조국이 잊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기게 되어 기쁘다"고 활동을 마감 짓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앞으로도 조국을 돕는 제2, 제3의 로버트 김이 있을 것이며 또한 그를 돕는 제3, 제4의 후원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끈끈한 조국애가 한국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진보나 보수, 우익이나 좌익 등 정치적, 이념적 성향을 넘어 끝까지 국민통합적 중도노선을 지키게 된 것을 가장 의미있고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이 사건은 조국에 헌신하다 희생당한 한국인을 돕기 위한 인도주의적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도 조국을 사랑한 사람,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며 자리를 일어선 그는 "이것이 우리가 한국인인 증거이고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생존해 온 이유"라며 환히 웃어보였다. / 김범태 | | | | |
자리를 같이한 회원들은 담소를 나누며 "만일 자신이 로버트 김과 같은 처지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의 희생과 애국심에 경의를 표시했다. 특히 "국가는 앞으로 재외국민 보호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며 그간 정부가 보여온 미온적 대처를 꼬집었다.
이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백동일 예비역 대령은 "김 선생은 내가 당한 고통이나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골지통'의 고난을 당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그분께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중단치 않고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그간 '로버트 김 돕기 범국민지원센터장'으로 봉사해 왔다.
로버트 김의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를 집필한 김두남 작가는 "로버트 김은 투사가 아닌, 단지 당신의 가난했던 조국을 돕고 싶었던 우리 곁의 소시민"이라며 "그가 다시 거듭나 한 알의 밀알처럼 우리 모두에게 나라사랑의 마음을 전해 주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이날로 모든 활동의 마침표를 찍은 로버트 김 후원회는 그간 국민들의 정성이 담긴 성금 5억여원을 모아 로버트 김에게 새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올 연말 안으로 김씨의 방한을 추진하고 있다.
| | "국민의 사랑이 나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 | | 로버트 김, 후원회에 감사의 편지 보내와 | | | |
| | | ▲ 로버트 김 | | 로버트 김은 후원회 해산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많은 국민께서 보내주신 사랑은 저의 명예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달 27일 석방 당시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나에게 도움을 받았다거나 안 받았다거나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도움을 받았다고만 말해도 내 명예가 회복될 것이다. 나의 명예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그가 결국 정부가 아닌, 국민적 힘과 성원으로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었음을 밝히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그는 이 편지에서 "그저 미국교포가 아닌 진짜 한국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게 됐다"며 교육사업 등 인생의 제2막을 펼쳐갈 향후 포부에 대해 언급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돼 다른 나라의 영향 없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며 마음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고국의 동포들에게 보내는 그의 '마음'을 간추려본다.
국민 여러분께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로버트 김 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 7월 27일 건강한 몸으로 석방되었으며 그동안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여러분들의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러분들의 성금으로 과분한 보금자리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각박한 세상에 사는 우리 사회에서 참 보기 드문 사랑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께서 보내주신 사랑은 전과자인 저의 명예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저 미국교포가 아니라 진짜 한국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지는 저의 인생 제 2막은 여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더욱더 보람찬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저는 교도소 문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지난 8년의 시간 중에 나는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앞만 보고 나왔으며 힘들었거나 억울했던 부분은 다 잊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인생의 제 2막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인생 제 1막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제 2막을 설계하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남아 있는 저의 인생 포부는 고액과외와 조기 유학 등 어마어마한 교육열풍속의 그늘에 가려진 청소년이 없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또 교육을 받았어도 그 교육이 우리나라가 세계화 되고 존경 받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하여 조국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의 영향 없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조국을 위해 일을 했지만, 강대국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국한 사람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사건에 연루되었던 백동일 예비역 대령은 매우 유망한 인재였습니다. 한참 열심히 일할 나이에 그가 일찍 예편되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강대한 나라는 풍부한 정보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군사정보이건, 산업정보이건 풍부한 정보가 국가를 강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산업도 국제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실시간(Real Time) 정보를 보유하도록 노력해서 세상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즉시 알아서 생산품을 차별화, 고급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풍부한 정보는 시장개척에도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세상은 넓고 소비자도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보 수집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의 인생 제2막을 봐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4년 8월 29일
로버트 김 드림
/ 정리=김범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