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기획예산처에 요구한 2005년도 국방예산 21조 4752억 원.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가구당 약 187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규모다. 이는 올해 예산 18조 9412억 원보다 무려 13.4% 증액한 액수로 1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은 3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5년도 국방예산 삭감과 평화군축 실현을 요구했다.
특히 평통사는 "미사일방어체제(MD) 무기인 패트리어트미사일(PAC-Ⅲ) 도입비용 348억 원이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 필요에 의한 것"이라며 예산 전액삭감을 요구했다. 감사원으로부터 "총 개발비용이 38조 7천억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받은 한국형다목적헬기사업(KMH) 예산 200억 원도 집행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평통사는 올해보다 16% 증액 요구한 내년도 주한미군 경비분담금 8202억 원에 대해서도 전액삭감을 요구했다. 주한미국의 역할 변화와 감축 상황에 비춰볼 때 경비분담금 지원 자체가 필요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에 따라 91년부터 한국 측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군 경비분담금은 91년 1억 5천만 달러에서 올해 6억2천만 달러로 크게 증가해 왔다.
이날 결의문에서 평통사는 "파탄지경의 국가경제를 살리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해내며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평화군축의 토대를 이룩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내년 국방예산 중 MD무기인 PAC-Ⅲ도입 사업, KMH사업, 주한미군 경비 분담금의 전액 삭감을 위해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투사 등 각종 주한미군지원 법적 근거 밝혀라
이어 평통사는 평화군축팀 명의로 국방부 대미정책과에 <주한미군 직·간접 지원 현황> 관련 99년 이후 자료와 그 법적 근거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접수했다. 'SOFA 5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 협상에 임하는 국방부의 계획과 협상일정에 대한 질의도 함께 추가했다.
질의서에서 평통사는 "현재 주한미군에 대한 직·간접 지원은 주한미군 운영유지비·군수·조세·인력·부동산 지원 등 여러 항목에 걸쳐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각 항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평통사는 "미육군 파견근무 한국군(KATUSA)의 경우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규탄사에 나선 임종철 평통사 공동대표는 "현재 국방예산은 우리 국가·민족·국민을 위해 편성된 게 아니라 미국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편성됐다"며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방부가 민족 자주의식을 가지고 미국에 당당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홍 평통사 평화군축팀장은 "지금 한해 국방예산은 북한 한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인데도 국방부는 때만 되면 '우리는 북한에 진다'고 말한다"며 "이런 '썩은 정신'을 갖고 있는 국방부 고위 관료들 정신교육 먼저 시켜야 한다"고 비난했다.
유 팀장은 "최근 일부 보수언론에서 한국국방연구원(KIDA) 결과 발표를 인용해 한국군 전력이 북한에 비해 열세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과연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한번 시민단체와 함께 검증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국방부는 기획예산처에 예산안을 신청하며 "내년도 국방예산은 협력적 자주국방을 구현하기 위한 소요에 중점을 두고 편성했다"며 "내년도 국방예산 증가율이 다소 높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나 IMF이전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높은 수준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