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는가. '정부와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를 놓고 이 논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중동'의 대립도 그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언론정책이 없는 참여정부의 책임인가. 부끄러운 과거조차 반성할 줄 모르는 채 자만에 빠진 언론의 몫인가.
미디어포럼 '언론광장'(대표 김중배)이 이같은 화두를 던지며 언론개혁의 본질을 찾고자 나섰다. 언론광장은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노무현 정부와 언론'이라는 주제로 8월 포럼을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평소보다 많은 5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 주제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상반된 논조를 보여온 진보성향 매체 및 보수신문 기자와 함께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특정신문을 공개 비판했던 청와대 비서관이 토론자로 참석,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청와대와 '조중동'의 대립부터 저널리즘 위기까지 언론전반의 문제를 폭넓게 다뤘으나 사안별로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권혁철 한겨레 미디어담당 기자와 김당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 김영삼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장,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진성호 조선일보 미디어팀장이 토론자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사회 겸 주제발표를 맡았다. 솔직하면서 때론 거침없는 이들의 격론은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노무현과 조중동'...친노, 반노도 아닌 '非노批노'는 어떨까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는 가설이라는 전제 아래 ▲노무현 정부의 '조(중)동' 주적 설정 ▲정부주도의 언론개혁 추진 ▲'조중동'의 비이성적 정부비판과 과거반성 부재 ▲방송·인터넷매체의 정부비판 강도 약화 등을 문제제기로 던졌다.
박 대표는 먼저 "노 대통령이 '조중동'을 주적으로 삼으면서 지지세력 결집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냐"며 "행정수도 이전, 과거사 청산 등 정당한 과제지만 정략적 요소도 상당히 가미됐다"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조중동'에 대해서는 "권력비판이라는 명분 아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이성적 비판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표는 둘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 "'조중동'의 딴지걸기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 앞서 국정운영부터 되돌아보라"며 통큰 리더십을 정부에 주문했다.
언론에 대해서는 "정치세력의 하수인을 벗어나 독자세력으로 설 것"과 반노·친노가 아닌 공정한 심판관으로서 '非노批노'를 제안했다. 국내정치 주도권 싸움의 포로가 되지 말고 한반도 차원에서 세상을 넓게 바라보자는 당부도 덧붙였다.
| | "1:5로 싸우는 것 같다?" | | | 청와대 비서관과 <조선> 기자의 하소연 | | | | "1:5로 싸우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비서관과 <조선일보> 기자가 '소수자'로서 같은 하소연을 했다. 토론회에서 사뭇 상반된 입장을 보였던 두 사람은 다른 토론자를 논쟁 상대자로 지목할 때는 '한마음'이 됐다.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참여정부을 향한 비판이 잇따르자 "1:5로 대적하는 셈이니 발언시간을 1/5로 똑같이 주면 불리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자 진성호 조선일보 미디어팀장도 "토론자 매체 성향으로 보자면 저야말로 1:5인 상황"이라고 맞받아쳤다. 한겨레신문 기자와 오마이뉴스 기자, KBS 노조위원장과 양정철 비서관 등을 가리킨 말이다.
이후 방청객에서 청와대의 언론정책과 관련, 질책성 질문이 들어오자 양 비서관은 "1:5가 아니라 1:50으로 토론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 신미희 기자 | | | | |
청와대 "조중동 주적 아니다... 일부 집단광기와 싸움일 뿐"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언론관에 대해 '균형, 상호보완을 원칙으로 한 생산적 긴장관계'로 집약했다. 서로 당당히 비판하고 남용을 절제하면서 생산적 방향으로 가자는 요지다. 양 비서관은 또 "일부 신문을 주적으로 삼아서 투쟁할 만큼 청와대는 한가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조선, 동아일보와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일부 집단광기와의 싸움이라는 설명이다.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에 대한 비판과 관련, 그는 "청와대나 참모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고립무원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문제가 있다"고 해명했다.
정치권력과 언론의 수많은 '거래'가 있던 과거와 달리 참여정부는 기사를 빼달라거나 넣어달라는 부탁을 한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무장해제를 했다고 전했다
양 비서관은 "수치스러운 과거를 가진 신문이 어떻게 역사에 비판의 칼날을 당당하게 들이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이들 신문은 친일부역과 독재정권 협력, 광주항쟁 매도, 전두환 장군 찬양 등 부끄러운 과거를 한 번도 반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양 비서관은 "지금의 언론자유는 선배 언론인들이 일제시대부터 피땀을 흘려 쟁취한 것"이라며 "그 언론자유를 가장 마음껏 누리고 있는 특정 신문은 과거사 문제를 자유롭게 비판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언론계가 잘못된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뼈아픈 점검과 자성이 왜 없는가"를 거듭 물었다.
조선 기자 "가장 무서운 것은 독자... 조선 사설 표현 거칠어지고 있다"
진성호 조선일보 미디어팀장은 참여정부 들어서 기자실 폐지라든지 정부와 언론간에 잘못된 유착이 사라지고 적당한 긴장관계가 형성된 것에 대해서는 좋은 변화로 평가했다. 하지만 '언론은 강자이고, 정부는 약자'라는 논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청와대가 논조나 보도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게 아니라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처럼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과거반성 문제와 관련, 진 팀장은 "검열제도가 사라지고 난 뒤 88년 입사했으므로 선배들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언론사의 과거사 문제는 따로 토론할 일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과거에 잘못 했기 때문에 지금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기자의 숙명은 비판하는 일인데 '니들이 감히 청와대를 비판해'라는 식의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 팀장은 "'조중동'이 청와대 비판하는 것 보면 다소 감정적인 부분이 있다"며 "조선일보 사설의 표현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안에서도 나온다"고 전했다.
하지만 진 팀장은 "청와대도 신문 보고 흥분만 할 게 아니라 여론청취를 통해 민심을 살펴보고, 기자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해도 대통령이 된 이상 정부가 잘 돼야 한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조선일보 내부의 핵심 고민은 '뉴스는 무엇이고, 신문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저널리즘 문제라고 진 팀장은 말했다. "신문 신뢰도가 떨어지는 자체 조사결과를 보고 위기를 느낀다"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안티조선' 비판과 맞아떨어지는 게 많다"고 털어놨다.
"조선일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독자"임을 강조한 진 팀장은 "신문을 불공정하게 만들면 독자 판단에 반영돼 구독율이 뚝 떨어질 수도 있다"며 "조선일보가 아무리 한나라당을 비판해도 밖에서는 훈수 두는 것으로 보는데 결국 그 책임도 조선일보 몫"이라고 말했다.
"'조중동' 프레임에 갇혔다.. 언론개혁 하자면 '노빠'인가"
그러나 이날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바라보는 프레임과 언론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방청객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특히 '조중동'을 키워드로 한 박인규 대표의 가설은 일부 기자를 비롯 전국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개혁국민행동의 강한 반박을 샀다. 더욱이 언론개혁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일부 발언과 잘못된 해석에 대해서는 항의가 잇따르기도 했다.
이재국(경향신문 기자) 언론노조 신문특별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조중동 주적 설정론'이나 '정부주도의 언론개혁론' 등의 가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발제자 스스로 '조중동' 프레임에 갇힌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 위원장은 "친노-반노 구도로 토론을 하게 되면 생산적 논의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릴 수 있는 언론이냐, 이라크 파병에 대해 어떻게 보도했느냐 등 본질적 문제를 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도 마치 참여정부와 '조중동'의 대결로 언론개혁 구도가 비쳐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신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조중동'하고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언론정책을 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정부가 수년간 거대 신문사의 무차별적 불·탈법행위를 방치한 결과, 신문시장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 역시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다"고 비판했다.
신 위원장은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언론개혁 주체가 돼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될 수도 없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올바른 언론정책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언론개혁을 주도해도 안되지만 언론정책을 손놓고 있어도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불간섭원칙이 적용돼야 할 언론자유(편집권 독립과 취재·보도) 영역을 제외한 기업으로서 시장의 영역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집행 등 정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조중동' 감정을 유발하는 말만 했지 언론시장 영역에서 한 게 없다"고 그는 따졌다.
"정부 언론개혁 주도해도 안되지만 언론정책 손놓고 있어도 능사 아니다"
오랫동안 언론개혁 입법활동에 주력해온 김영호(언개연 공동대표) 언론개혁국민행동 상임대표는 이날 토론회에 상당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김 대표는 "언론개혁 법안을 마련하면서 청와대나 문화부, 국정홍보처 등 정부의 어떤 사람과 커피 한잔 마셔본 적 없고 전화 한번 받아본 적 없다"며 "어떤 근거로 '정부주도 언론개혁'이라고 말하는가"라고 추궁했다. 이어 김 대표는 "그럼 언론개혁 하겠다는 언론노조 위원장이 노빠이고, 나도 노빠인가"라며 "이런 식의 논의는 본질을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간법 개정안은 96년 민변, 98년 언개연의 입법청원에 이어 2000년 언개연과 민변의 공동 청원으로 계속 추진됐으나 역대 국회에서 이뤄지지 못했다"며 "220여개 전국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언론개혁국민행동가 새 국회에서 입안을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같은 잘못된 발언이 언론개혁의 순수성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고 거듭 따져 물었다.
김 대표는 '조중동'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최근 방송위원회 새 심의위원 구성과정에서 방송협회, 광고업계가 추천한 6명이 모두 됐는데 사업자 이해관계가 걸린 광고와 방송심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며 "'조중동'이 이런 문제는 쓰지 않고 '친정부단체인 언개연' 식으로 3명 들어간 것을 대단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