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의 주최로 지난 7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 UP 캠페인(이하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을 벌인 결과, 최저생계비의 비현실성이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31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의 결과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최저생계비의 현실과 적정화 방안'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동안 최저생계비 산정이 99년 기준으로 이뤄진데다 수급 대상자 선정에도 비현실적 기준이 적용된 것으로 나타나 여러 문제점이 공론화 되었다. 생계비 계측년도인 올해, 이와 같은 문제점을 반영한 보다 현실적인 최저생계비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높다.
한편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를 치른 지역 중 하월곡동 산2번지에서 한 달을 체험한 가구는 1인 가구 2세대, 2인·3인·4인 가구 각 1세대씩 총 5세대 11명이 참가했다.
교통통신비·교양오락비는 턱없이 부족, 교육비·보건의료비는 가구 특성 반영해야
이 날 토론회에 참가한 남기철 동덕여대(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체험 가구의 가계부와 생활비를 조사한 결과, 최저생계비로 한 달을 생활한 5가구 모두 5%에서 50%까지 적자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남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비목별 최저생계비에서 문화·사회 활동 자체가 어려울 만큼 교양오락비가 적었으며, 출퇴근을 하는 1인 가구의 경우 일반적인 대중교통을 사용했음에도 교통통신비의 7배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 교수는 최저생계비 중 교양오락비를 4배 넘게 지출한 2인 가구에 대해 "한 달 동안 노래방을 1회 갔고, 도서 한두 권을 구입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는 최저생계비만으로는 수급자가 사교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인 인간관계조차 하기 어려운 현실을 말해준다.
또 다른 문제는 교육비와 보건의료비의 획일적 산출에 있다. 현재 교육비는 전체 최저생계비용 중 가상 평균치 4.17%를 적용하고 있는데, 학생이 없는 가정은 교육비가 0원인 반면, 두 명이 있는 가정은 1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최저생계비 교육비 산출가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보건의료비의 경우도 최저생계비 수급자의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채 평균치로 적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부양자가 없는 최저생계비 수급 대상자가 노인인 경우도 보건의료비가 모자라,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남 교수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이 보장되는 선진국의 예를 들며 “수급자는 공식 빈민이라 할 수 있는데 거동이 불편해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병원에 가도 의료비에 본인부담금이 있는 것은 모순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하월곡동 지역주민의 가계부 조사에서 상대적으로 식료품비가 적게 든 것에 대해 남 교수는 "최저생계비 수급 노인들은 대부분 민간단체들의 무료급식이나 국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며 복지혜택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서울에 사는 2인 가구의 최저생계비 수급자는 생활고 더욱 심각
이어 발제를 한 허선 순천향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99년 4인 가구 최저생계 90만1357원은 당시의 4인 가구 전 가구 가계 지출의 48.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물가만 반영해 조정한 2004년의 최저생계비는 38.1%에 불과, 일반 가구의 표준생계비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기초보장법에는 최저생계비를 추정하는데 있어 국민의 소득·지출수준, 수급권자의 생활실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도록 되어 있지만 지금까지는 물가상승률만을 반영하고 있다.
허 교수는 “최저생계비는 보건사회연구원의 가구균등화지수를 활용하여 산출한 것인데, 수급자 중 74.1%가 1, 2인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3, 4인 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허 교수는 최저생계비가 지역별 물가 차이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현행 최저생계비는 지역별 물가 차이는 물론, 가구 유형별 차이가 계측조사와 적용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고, 전국 단일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허 교수에 따르면 2003년 3월 기준으로 전국 기초보장수급율은 2.7%에 달하지만, 서울시의 수급율은 1.56%에 불과하며 서울시의 최저생계비는 중소도시의 133.1%에 달한다. 허 교수는 “최저생계비를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적용함으로서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식비 문제보다 더 힘든 것은 사회적 소외와 고립
"철저하게 주어진 생계비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했는데, 고기·과일은 불가능해서 시장에 가서는 과일만 보게 됐다."
"집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 며칠 지나서는 숨쉬기도 힘들었고, 뛰쳐나가고 싶었고, 그러한 생활로 인해 무기력도 경험했다. 습해서 잠도 못자고, 빨래도 할 수 없고, 밥도 하기 싫었다."
"아이들이 우울함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처럼 보였다."
이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체험기이다. 허 교수는 하월곡동 동장님이 이 체험을 ‘소꿉장난’에 비유했다며 “주거, 식비 체험은 했을지 몰라도 사회체험은 안 했다. 동장님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부조금을 낼 수 없어 결혼식에도 가보지 못하는 사회관계의 고립을 알기나 하느냐'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하월곡동의 주거환경에 대해 허 교수는 “햇빛도 들지 않고, 환기가 안 되어 집안 전체에 곰팡이가 퍼져 있었고, 화장실과 주방 등의 열악함은 건강 문제를 유발할 정도”라며 “빈곤층 중 적어도 독거노인에게는 임대아파트 입주 자격이 부여되거나 최저주거기준에 부합하는 주거에서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 "올해 최저생계비 계측조사에서 생활의 질을 반영하고 주거비 현실화 하겠다"
올해 최저생계비 산정을 위해 계측 조사를 하고 있는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시대가 변하는 만큼 최저생계비 산적 품목도 바뀌어야 한다”며 "이번 계측 조사에서는 생활의 질적 변화를 반영 하겠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또 “이번 계측에서는 월세, 전세, 자가로 분리해 수급자의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날 자리에 모인 토론자 모두는 최저생계비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데 반해, 박능후 경기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최저생계비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최저생활에 필요한 비용의 수준과 최저생계비의 급여수준을 동일하게 보고 100% 보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대변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선 교수는 "국회에서 최저생계비 관련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개정하는 방법이 옳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정부, 학계, 공익위원 각각 4인씩 12명과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총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와 관려해 현애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최저생계비를 최종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는 빈곤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며 "여기에는 시민단체 등 민간이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현 의원은 "내년 공적 부조 관련 예산이 900억 원인데 이 예산으로는 140만 명의 수급대상자에게 1만원도 올려주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경화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우리 나라에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살고 있지만, 최저생계비의 수급대상자가는 아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며 “사각지대의 최소화를 위해 한나라당에서는 국민기초연금제 도입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 의원 “최저생계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조 교수 “10년 이상 검토만 하지 말고, 안을 마련해달라!”
김선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장애가 있고, 수입이 없어도 도움을 주지 않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최저생계비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부양 의무제 문제가 있다. 이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지난 30일 경제살리기 대토론회에서 100대 입법 과제로 이 문제를 신청해 심도있는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의원은 “최저생계비 인상, 부양의무자 범위축소, 빈곤대책 인프라를 위한 사회복지 전담 사무소 설치, 가구 특성을 반영한 차등생계비 제도 마련 등 국민기초생활법의 개정, 일자리 확충 등을 검토 중”이라며 “이번에는 안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며 자신했다.
이에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조홍식 교수는 “10년 이상 검토만 하지 말고, 진짜 안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따끔한 지적으로 일격했다. 조 교수는 “안을 올리면 예산이 문제라고만 하는데 최저생계비 문제를 복지부가 관할하지 말고 경제부에서 책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날 토론회에는 사회 조홍식 서울대(사회복지학과) 교수, 발제자 남기철 동덕여대(가정복지학과) 교수, 허선 순천향대(사회복지학과) 교수, 토론자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박능후 경기대(사회복지학과) 교수(중앙생활보장위원회 전문위원)와 고경화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선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현애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