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한동안 의아했던 것이 있었다. 사람들 최고의 관심사가 '건강'이라고 답변하는 설문조사 결과였다. 이성 문제와 진학, 친구 관계를 제치고 늘 건강이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였다. 젊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 세계의 폭이 그만큼 좁았다는 말이다. 건강서적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기웃거리고 건강에 관한 떠도는 속설에까지 귀 기울이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어른이라고 봐야 한다. 더 이상 청년이 아닌 것이다.
정신적인 삶에서나 육체적인 삶에서 아찔한 위기를 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언젠가 '이것에' 접촉하게 되리라. 바로 뜸이다. 쑥뜸 불이 단전이나 중완에서 섭씨 700도의 열을 내면서 속에 있는 화와 욕심을 다 태워 낼 것이라는 글귀에 눈길을 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번뇌와 망상을 제거하는 데 쑥뜸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데야 어찌 이 책에 손을 뻗치지 않으랴.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책이 바로 <인산쑥뜸요법>이다. 인산 김일훈 선생이 난치병과 불치병 치료에 효험을 발휘하는 쑥뜸 요법을 주요 재료와 함께 구체적인 시술 방법을 기록 한 책이다.
이 책에는 생명력이 가장 강한 풀인 쑥을 이용한 치료 방법이 잘 나와 있다. 쑥뜸으로 치료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실려 있다. 현대 의학에서 불치의 병으로 여겨지는 당뇨와 암, 각종 부인병도 병의 종류에 따라 시술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쑥뜸을 상한 몸을 치료하는 요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수련과 명상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쑥뜸 무아경'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대목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진정한 자기 고백과 참회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쑥뜸 불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쑥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부항이나 사혈 요법이 몸 속의 나쁜 기운을 없애는 요법인 데 비해 쑥뜸은 나쁜 기운을 없앨 뿐 아니라 뜨거운 쑥뜸 열기로 살아 있는 기운을 몸 속에 일으키는 요법이다. 여름철 시골집 앞 마당에 피우는 쑥불 연기는 모기 등 무는 것들을 쫒는다. 꼴을 베다 다친 손가락에 쑥을 찧어 즙을 바르면 바로 상처가 아무는 경험은 다들 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쑥으로 만든 음식도 많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인산 선생 즉, 김일훈 선생의 일대기이다. 요즘 일제 치하에서의 부일 행위와 관련해서 과거사 진상이다 뭐다 무척 시끄럽다. 인산 선생이 열여섯부터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독립투사였다는 점과 여든넷으로 돌아가시기까지 돈을 안 받고 사람을 치료하는 데에 일생을 바쳤다고 하는 대목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뭔가를 주장하는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릴 때 우리가 따져보는 게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됨됨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멀리서 인산 죽염와 인산 쑥뜸 얘기를 듣던 차에 인산 선생의 일대기를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의 쑥뜸요법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인산 선생이 아니라 그의 차남 김윤세씨다. 김윤세씨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 받았다. 돌아가신 인산 선생도 그랬겠지만 이 책의 지은이인 김윤세씨도 자질구레한 제품들을 일체 거론하지 않는다.
홈페이지(www.insan.com)에도 가 보면 다른 사이트에 널려 있는 쑥봉이니 온기구니 하는 것들이 없다. '인산쑥뜸'은 단순하고 무식하다. 그냥 직접 뜬다. 책에는 쑥뜸과 관련된 약재 제조법도 모두 소개 되어 있다. 스스로 보고 해 봐서 느끼는 만큼 몸을 다스리라는 말 같기도 하다.
쑥뜸은 주류 의학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인산쑥뜸(일명 영구법)'의 신비와 권위를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기존 양의학이나 기타 민감요법에서도 하찮게 치부하는 주장들도 가끔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대로 내가 단전에 쑥뜸불을 올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인산 김일훈 선생의 삶이 주는 믿음과 존경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그동안 해 오던 부항이나 사혈, 양생법, 명상, 기공 등과 같은 맥락이라 더 싶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인산쑥뜸'은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직접구법(뜸쑥을 직접 쑥뜸자리에 붙이는 방법)만을 주장하는 점이 그렇고 봄과 가을을 집중적인 쑥뜸 시기로 잡는 것도 그렇다. 또한 뜸을 만들 때 타는 시간을 꼭 5분 내외로 하는 점이나 뜸을 뜨면서 나타나는 증상과 반응에 따라 뜸의 중단과 지속을 그때 그때 결정하게 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사람의 성정과 혈액형에 따라 뜸 뜨는 방법을 달리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엄격함에는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그 엄격함이 또 다른 신뢰를 만들기도 한다. 인산쑥뜸의 준비와 방법은 지나치게 엄격하다. 가리는 음식도 많고 해서는 안되는 것도 많다. 인산쑥뜸은 섭생법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현미와 두부를 먹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현미에 있을 농약 성분과 두부 만들 때 들어가는 간수 때문이다. 성 관계는 물론 삿된 생각마저도 해서는 안된다. 일상 생활을 그대로 하면서도 부모 상을 치르는 상주처럼 조신해야 한다. 열흘 정도 진행되는 쑥뜸 기간은 물론 그 후의 진물과 고름이 나오는 고약 붙이는 기간까지 해당된다.
아무리 뜸으로 죽을 목숨을 건졌다는 사람이 많아도 그 의학적 원리와 신체 작용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믿음이 온전 할 수 없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 책은 그 부분에 대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듯하다. 경락과 혈에 대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쑥뜸의 효과를 의심하거나 불신할 필요는 없다. 제3의 길을 개척하는 대부분의 비주류 학문이나 그룹들은 이런 과정을 거쳤다. 기존의 주류들도 처음에는 그런 과정을 겪었다.
나는 오늘도 뜨거운 불로 단전을 지지면서 모든 번뇌와 망상들을 다 사르고 온전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다. 그 욕심마저 태워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