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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무덤아> 포스터.
<웃어라 무덤아> 포스터. ⓒ 극단청우
외로웠나보다. 늙어 오그라든 몸뚱이를 거두어줄 손길이 그리웠나보다. 외로웠기에 허리춤에 감춘 100만원의 돈에 그리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찾는 이 없는 빈 집에 냄새를 풍기며 차갑게 누워 있을까봐 이 사람 저 사람 살갑게 대했나보다.

9월 2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아트홀 스타식스에서 공연되고 있는 <웃어라 무덤아>(고연옥 작, 김광보 연출)는 자신의 장례비용 100만원을 지니고 있던 무연고 할머니의 죽음, 없어진 돈의 행방, 죽어 꽃이 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물질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를 비판한다.

보통 인생을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터벅터벅 걷다보면 길이 끝나는 곳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 빛으로 디자인된 길은 '인간은 죽음을 향해 걷는 여행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배우들의 등퇴장 장면에서 빛으로 디자인 된 길이 배우들이 가야 될 곳을 안내한다.

길은 또한 할머니의 인생을 의미한다. 부모, 남편, 자식을 버리고 평생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돈 할머니는 길 위의 인생을 살았다. 극의 말미에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고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할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입에 밥을 꾸역꾸역 넣는다. 배를 채우고 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처럼 말이다.

평생 길 위를 도망치듯 걸었던 할머니가 죽어 된 것은 걷지 않아도 되는, 떠돌지 않아도 되는 꽃이다. 할머니가 살아 온 인생이 기념비 같은 인생은 아니었기에 탑은 세우지 못했지만 죽음을 통해 꽃이 됨으로서 할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죽음을 통해 한을 풀어내는 방식은 작가(고연옥)의 전작 <인류 최초의 키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작에서 감옥에 갇혀 죽은 자들이 죽어 되는 것은 더 이상 갇혀 있지 않아도 되고 어느 누구보다 많은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항해사이다. 고연옥은 <인류 최초의 키스>에서처럼 <웃어라 무덤아>에서도 할머니가 꽃이 됨으로 죽음을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나 천당과 지옥의 이분법적인 틀로 보지 않고 소원이나 한을 풀어내는 기재처럼 사용한다.

죽은 할머니는 꽃이 되어 행복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경찰서에 불려 다녀야 하는 등 고단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장례비용을 탐했기 때문에 떳떳하지도 못하다. 할머니의 죽음과 대비가 된 이웃의 모습은 금전욕에 휘둘리는 인간의 천한 모습으로 희화되었다.

<웃어라 무덤아>의 연출은 김광보가 맡았다. 그는 극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적절한 음악과 조명, 지루하지 않은 빠른 극 전개, 배우들의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런 연기와 앙상블을 작품에 충분히 녹여냈다.

배우들의 연기도 주목할 부분으로 할머니 역을 맡은 문경희는 70대 노인의 연기를 능숙하게 해내 관객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 외, 강승민, 성노진, 오재균 등 극단 청우에서 오랜 기간 김광보의 연출과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의 연기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웃어라 무덤아>는 <인류 최초의 키스>에 이은 고연옥 작, 김광보 연출의 또 다른 수작으로 관객들에게는 연극으로서 재미와 함께 인생에 한번은 마주쳐야 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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