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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신진석씨.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신진석씨. ⓒ 김재경
토요일을 기다리는 아이들

지난 토요일 오후, 안양시 비산동 평화보육원에 생수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조수석 문이 열리는 순간,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아장아장 언덕 위 주차장으로 몰려든다.

트럭 조수석 의자 위에는 형형색색의 각종 스낵 과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구미에 맞는 과자 한 봉지씩을 집어 들고 나왔다.

"홍지는 그 과자 안 먹지. 이걸로 바꾸자."

신진석(45)씨는 아이들 입맛까지 뚜르르 꿰고 있었다. "아빠, 아빠"하며 따르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지 신씨는 일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두 살배기 홍지를 번쩍 안았다.

인연이 된 보육원 아이들

신씨가 보육원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5년 1월, 혹독한 한파가 휘몰아치는 수원 역전에서였다. 초췌한 차림으로 여덟 살 남아가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수소문한 결과, 보육원을 나온 아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를 보육원에 데려다주며 맺은 끈끈한 인연은 같은 방을 쓰는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1년 가까이 매달 자장면을 사주며 용돈을 챙겨 주게 되었다. 아이들과 정이 싹트고 있을 때 다니던 회사가 수원에서 안양으로 이전했다.

직장 따라 비산동에 둥지를 틀었지만, 보육원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고 아른거렸다. 보육원에 두고 온 아이들을 생각하며 114에 문의, 평화 보육원과 새롭게 연결되었다.

군고구마 행상을 하다

회사에서 오전 근무만 하는 토요일이면 으레 보육원을 찾았지만, 봉급을 쪼개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각다 못해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군고구마 행상이었다.

중앙시장 부근에서 장작불을 지펴가며 고구마와 밤을 구웠지만, 살을 에는 노상의 한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다.

추위에 호호 불며 껍질을 벗기면 노란 속살을 드러내는 고구마의 달콤한 감칠맛은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웃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며 그럭저럭 팔려 나갔다. 여기서 모아진 수익금은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 되었다.

신진석씨가 고구마통을 만져보고 있다.
신진석씨가 고구마통을 만져보고 있다. ⓒ 김재경
신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IMF무렵 시작한 이동생수 배달의 수입은 월급쟁이 수준이었지만 신씨는 군고구마 행상을 접었다.

고구마 통을 보육원 뒤뜰에 갖다 놓고, 겨울방학 때 두 차례 아이들과 함께 장작불을 지펴가며 고구마와 밤을 굽는다. 고구마 맛도 좋지만, 분위기에 덩달아 신명난 아이들에겐 잔치마당이 따로 없다.

하루 종일 고구마 20kg 5박스와 밤 한말은 구워야 하기에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날을 잡는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신씨는 지금도 여전히 고구마 아저씨로 불리고 있었다.

협력자가 된 가족들

중앙시장 좌판에서 10년째 청바지를 팔고 있는 부인 원혜숙(35세)씨는 "보육원 아이들 일이라면 발 벗고 뛰는 남편이지만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함께 동참하지 못해 미안할 뿐, 다른 불만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아들 원하(신안초5)군은 태어나기 전부터 늘 아빠가 해 오던 일이라 당연한 걸로 알고 자랐다. 종종 아빠를 따라 보육원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신나게 뛰어 노는 시간이 그저 즐겁고, 그런 아빠가 있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신씨가 풍족히 아들에게 과자나 자장면을 사 주는 것은 아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남는 것을 챙겨 줄지라도 원하는 당연하게 여길 뿐, 불평불만이란 없다.

계속되는 신씨의 후원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에게 과자 100봉지를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외에도 신씨는 "식수를 끓여 숙사로 나르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식당과 숙사동에 일곱 개의 정수기를 기증했다.

매년 성탄절이면 조기 축구회원들과 함께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개개인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3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선물로 받은 운동화를 꼬옥 껴안고 잤을 만큼 그 선물은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더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을 차다가 유리창을 깨거나, '보육원 출신'이라고 놀리는 애들을 때려서,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봉급을 털기도 했다.

신씨는 "이런 불협화음이 발생할 때마다 학교로 찾아가서 '부모가 아니라 후원자인데요'하고 진솔하게 대화를 시도하면 치료비를 안 받거나 치료만 해달라는 정도로 가볍게 넘어 갈 만큼 아직도 살만한 따뜻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평화보육원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아낌없이 시간과 물질을 후원해 오고 있는 신씨는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였다. 매년 여름 수련회 때, 3박4일 동참은 물론이고 타이탄 차량 대여와 간식비를 담당해 왔다.

지난해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열네 살 지연이의 장례식 때도 후원자로서 장례비와 모든 절차를 감당하며 손수 장례식을 치렀다. 틈틈이 간병할 때, "퇴원하면 과자를 사 달라"며 힘없이 웃던 지연이었다.

중환자실에서 8개월을 버틴 지연이는 "의식이 없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떡였다"며 신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이 믿고 신뢰하는 상담자

종종 고등학생들과 함께 공을 차며 삼겹살도 구워 먹는다. 함께 먹고 뛰다보니 아이들은 아빠처럼 때로는 형처럼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흉금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 김재경
슬며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뭐냐고 묻자, "물질적인 것은 해결이 쉽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조언도 해 주지만 복잡할 때가 많아요. 개인적인 비밀은 서로의 믿음이기 때문에 철저히 지켜야 된다"며 입을 굳게 다문다.

고등학생은 진학이나 진로 선택에 갈등이 많다. 직업을 선택할 경우, 퇴소시 자립금이 있지만 스스로 홀로 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한다.

그때마다 함께 동행하며 싼 방을 구해 주거나 때로는 부족한 금액을 메워 주기도 한다. 생수 트럭으로 아이들의 이삿짐을 손수 운반해 주고, 사회에 적응하며 스스로 뿌리를 내려 정착하기까지 1년 정도는 수시로 찾아가서 보살핀다.

후원자의 보람

아이들은 "첫 월급을 받았다"며 밥도 사고 선물을 챙겨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물이라야 메리야스나 팬티, 타이즈 정도의 속옷이지만, 아이들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신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다.

'얼마나 힘들게 고생해서 번 돈인가!' 신씨는 그저, 힘든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그때마다 감격에 앞서 신씨의 가슴은 애잔하게 아려온다.

보육원을 방문할 무렵, 유치원생이었던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하겠다며 신씨를 찾아왔다. 친정아버지처럼 사돈어른들과 인사를 나눈 기억은 새롭고 여전히 흐뭇하기만 하다.

언제나 걱정으로 지켜보는 후원자

어른들은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잠시 보육원에 맡겨졌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부모가 찾아오겠지 하고 막연히 기다려요. 결혼식 때 친부모가 나타나지 않을 때의 기다림은 곧 실망이 되지요. 그때는 너무 안타까워요"라고 신씨는 말했다.

신씨는 "보육원 출신 아이들은 엄청 생활력이 강해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기에 잘 살아요"라고 칭찬을 한다. "결혼해 알콩달콩 행복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신혼의 단꿈에 흠뻑 빠져 있을 때는 연락조차 없다가도, 자녀를 출산하고 백일이나 돌이 되면 연락이 오지요." 신씨는 친정아버지인 양 기다렸다는 듯이 금반지를 사 들고 득달같이 달려가곤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인생의 행로에서 헤어나기 힘들 때면 으레 신씨를 찾는다. 신씨는 갈수록 험해 지는 세상 가운데서도 이렇게 인연의 끈이 된 아이들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아이들을 돕는 데 쓰는 돈은 절대 계산하지 않는 것이 신씨의 철학이다. 자신이 즐겁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묻자, "아이들이 꿈을 갖고 자라는 평화 보육원이 내 종교죠"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보육원 출신으로 인쇄소를 하는 이모(33세)씨는 보육원의 하계 수련회 때 음료수를 후원하며 "형님! 힘드신데 이젠 그만 하세요"라며 종종 만류한다.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못해서 그저 부끄러울 뿐이라"는 신씨에겐 이 일이 삶의 보람이자 즐거움으로 뿌리 내린 지 19년째다.

후원이 필요해요

보육원의 후원과 자원봉사자는 신씨뿐만이 아니다. 숙사 청소를 비롯해서 학습도우미, 환경정리, 성교육, 의료지원, 약품지원, 외식, 이·미용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넉넉한 마음들이 모여 훈훈한 세상을 만드는 후원의 손길은 보육원의 꿈나무 육성에 큰 힘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신씨는 생수배달을 하면서도 보육원 아동들을 위한 후원계좌 신청을 받기에 여념이 없다. 한 구좌 후원을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부탁하고 다닌다.

"처음부터 많은 금액의 후원은 지속하기에 무리일 수도 있지만, 사랑과 관심만 있다면 1구좌(1만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보육시설에는 후원이 필요하기에 신씨는 후원 신청서를 차 안에 비치하고 후원하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어디고 달려간다고.

신씨에게 금년 어린이날은 아동복지 유공자로 선정되어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남을 돕는다고 신씨의 생활이 넉넉한 것만은 아니다. 안양4동 항아리 골목에서 8년째, 방 두 칸 전세방(3500만원)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가을 들녘만큼이나 풍요로워 보였고 넉넉한 여유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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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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