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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적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 역사 및 법 규정 자체의 인권 침해 소지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켜온 현행 국가보안법은 몇 개 조문의 개정으로는 그 문제점들이 치유될 수 없고 '전면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판단된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 제1호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한다."
지난 8월 24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 김창국 위원장이 기자 브리핑에서 23일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가 의결한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해 3월 국가인권위가 국가보안법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1년 5개월만의 결과이다. 이번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는 역사적, 법률적, 현실적 측면에서 검토한 결과다.
비상 시기의 한시적 법
국가보안법은 역사적으로 제정 전부터 이미 폐기 논란이 있었던 법이다. 처음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1948년, 국회의원 48명이 '국가보안법안 폐기에 관한 동의안'을 제출했다.
당시 노일환 국회의원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법률로써 각자의 마음을 처단하려는 이 법은 국가의 안녕 질서를 위하려는 것보다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려는 독재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시 권승렬 법무부장관은 "이것은 물론 평화 시기의 법안은 아니다.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니까 인권 옹호상 조금 손상이 있더라도 불가불 건국에 이바지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생각한다"며 법안 통과를 요청했다.
결국 '비상시의 비상입법'이라는 점과 '한시적'이란 이유로 국가보안법은 통과되었다. 형법이 제정되기 5년 전 일이었다.
1953년, 당시의 형법 입안자(법전편찬위원회)들은 형법안을 마련함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형사특별법을 형법전에 흡수시킨다는 기본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을 형법전 속에 흡수하기로 한다는 입법의 기본방침은 형법전 심의의 마지막 단계인 부칙심사 과정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시 형법 부칙 제12조는 '본법시행 직전까지 시행되던 다음의 법률, 포고 또는 법령은 폐지한다'고 규정한 다음 그 폐지 대상 법령 15개를 열거하였다. 그 중 15번째가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국가보안법의 규정들이 모두 형법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원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당시 법전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형법 초안을 마련했던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은 '국가보안법은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금 6·25 사변을 당해… 특수한 법률로 국가보안법 혹은 비상조치법 이러한 것이 국회에서 임시로 제정하신 줄 안다. 지금 와서는 그러한 다기다난한 것을 다 없애고 이 형법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의 목적을 달할 수가 있겠다는 고려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이 형법과 대조해 검토해 볼 때 형에 가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는지도 모르나 이 형법전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는가 하는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1953년 7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위 부칙을 심의할 때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형법에 모두 포함시켰으므로 폐지해도 지장이 없고 법체계상 폐지가 옳다'는 취지의 법사위원장의 설명에 대하여 한 의원이 "법체계보다는 국민정신을 고려하여 존치시키자"는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논란 끝에 표결에 부쳐져 재석 102명 중 찬성 10, 반대 0, 기권 92로 부결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기권을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전시의 치안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을 고려한 것이었고 당시의 상황은 휴전을 목전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이때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법률적 측면에서 본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법률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2조는 '반국가단체'를 정의하면서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가 정부 참칭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와 국가 변란의 수단·방법·범위 등이 불명확하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법률만 만들면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없고, 예측 가능하도록 법규의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을 그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제2조 내지 제4조의 규정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는 헌법상의 언론·출판·학문·예술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를 위축시킬 염려와 형벌과잉을 초래할 우려가 농후하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요건이 있기는 하나,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 역시 명백·현존의 위험의 원칙에 부합되지 아니하여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제7조는 폭력적 행위 여부라는 합리적 기준에 의하여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상·이념에 찬성하는지 여부의 기준에 따라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객관적 구성요건보다는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범죄의 성립 여부가 좌우되게 함으로써 법 집행자의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큰 규정이다.
결론적으로 제7조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함은 물론 헌법 제37조 제2항 소정의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반인권적 조항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제7조는 국제사회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시민적·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 제19조(표현의 자유)에 위반된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제7조 제1항 및 제5항에 대한 여러 차례에 걸친 위헌심판제청 및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에서, 위 주관적 구성요건이 추가된 1991년 5월 31일 개정 전에는 "각 그 소정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축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하고,
또는 "이미 2회에 걸쳐… 축소제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이제 와서 달리 판단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종전의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였으며,
위 개정 후의 사건(5건 병합)에서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추가됨으로써 이 법의 입법목적을 일탈하는 확대해석의 위험은 거의 제거되었다. … 그래도 남는 용어의 추상성은 법적용 '집행자의 합리적 해석에 맡겨도 된다고 본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1999년 4월 29일에 선고한 98헌바66 사건에서는 "위 결정을 변경해야 할 아무런 사정변경도 없으므로 이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 주관적 구성요건을 추가함으로써 그 뜻이 더욱 명확해졌고 확대해석의 위험이 거의 제거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주관적 목적 요건 추가의 법 개정 이후에도 제7조 위반으로 입건되는 남용 사례가 조금도 줄지 않고 있고 제7조에 대한 위헌심판 헌법소원도 여전히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제10조(불고지죄)는, '제3조(반국가단체구성·가입), 제4조(목적수행), 제5조 제1항(자진지원), 제3항(자진지원의 미수), 제4항(자진지원의 예비음모)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정을 알면서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아니한 경우'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고지죄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적 가치평가를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척이나 친구에 대하여도 신고하도록 하여 사회의 건전한 인륜도덕, 직업윤리에 반하도록 강제한다.
즉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사상·양심을 자유롭게 형성·유지할 권리를 침해한다.
침묵의 자유 혹은 묵비의 권리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내심의 영역을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나오는 인권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입장에 따라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 제10조는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대표적 악법 조항이다.
국가보안법 현행 법률로 대체 가능
국가인권위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배경에는 국가보안법의 내용이 현행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판단도 한몫 했다. 국가보안법 제3조부터 제13조까지의 처벌규정은 대부분 형법 등 다른 법률의 처벌조항과 중복되거나 가중 처벌하는 것일 뿐이다.
특히 형법 각칙편 제1장 '내란의 죄'와 제2장 '외환의 죄'의 적용·해석을 통해 충분히 규율이 가능하므로 처벌공백이 생기는 부분은 거의 없다. 다만, 국가보안법 제10조(불고지)의 경우에는 현행법상에서 처벌공백이 생긴다고 할 수 있으나, 이 규정은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므로 사실상 존치해야 할 조항은 없게 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경우, 그동안 북한 관련 안보범죄를 처벌할 때 이용해온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관련 개념을 형법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간첩죄의 적용에 있어서 이를 국가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견해이므로 형법의 규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설령, 일부분에 약간의 처벌 공백이 생긴다 할지라도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를 위한 전체 법체계의 일부일 뿐이고, 형법 각칙 편 제1장 '내란의 죄'와 제2장 '외환의 죄'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 대부분을 예정하고 있으며 그 외 여러 특별형법에도 국가안보를 위해 작동하는 처벌조항이 다수 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은 형법 각칙편 제1장과 제2장에 규정된 죄의 전(前)단계 또는 전전(前前)단계를 처벌하려다 보니 그 구성요건의 불명확성과 추상성을 심히 내재하게 되어 자의적 적용과 남용의 위험을 항시 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국가안보법'의 무장해제가 아니라 '국가안보법체계의 합리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유엔을 비롯해 유엔인권이사회 및 국제인권기구들은 국가보안법의 인권침해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해 온 점 ▲적용과정에서 반인권적으로 남용될 소지가 큰 점 ▲국가보안법 존치는 오늘날 남북관계는 확연한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시대 변화에 따라 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도 여러 부분에서 상충돼 시대적 환경과도 맞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폐지를 권고하게 됐다.
지난 8월 24일 기자 브리핑에서 국가인권위 김창국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한 마디를 당부했다.
"(국가인권위가) 중점을 둔 것은 인권 차원의 검토다. 국가보안법 하면 이념 논쟁을 머리에 떠올리는 분들이 있지만 그 차원과는 달리 전적으로 인권 차원에서 접근했음을 알아 달라."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쟁이 이른바 진보와 보수로 이분된 정치 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염려였다. 실제 17대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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