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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순부터 9월 초까지 찍은 것들입니다.
지난 4월 초순부터 9월 초까지 찍은 것들입니다. ⓒ 김민수

이름에 '벌'자가 붙으면 확 트인 들판에서 자라는 식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벌'자를 가진 이름들을 보니 벌개미취, 벌씀바귀, 벌등골나물, 벌깨풀, 벌완두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리는 벌노랑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벌노랑이의 다른 이름은 '노랑돌콩'이 있습니다.

돌콩처럼 야무진 꽃, 노랑병아리들이 봄 소풍을 나온 듯 들판에 흐드러져 올망졸망 개구쟁이들이나 노랑체육복을 입고 앙증맞은 가방을 둘러메고 유치원에 가는 꼬마들 생각이 나게 하는 꽃입니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구요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

거의 모든 유치원의 원가라고 할 수 있는 동요가 참 어울리는 꽃입니다.

제주에서는 봄나들이하기 좋은 시절부터 피어나 5월에 절정기를 이루는데 가을꽃이 피기 시작할 때까지도 억새풀 사이에서 노랑꽃을 피워내는 꽃입니다.

ⓒ 김민수

모든 사물은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그 다름이 꽃의 경우는 더욱 더 각별하고, 특별히 콩과의 식물들은 전혀 생소한 꽃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습니다. 콩과의 꽃들을 가만히 보면 마치 '썬캡'을 쓴 듯한 윗 부분에 꽃잎이 있습니다. 그 용도는 따가운 햇살로부터 꽃을 보호하는 일도 하고, 비가 올 때면 우산의 역할을 하는데 사용된답니다.

단지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꽃잎 한 장까지라도 제 할 일이 있어 피어난 것입니다. 자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습니다. 필요 없는 존재가 하나도 없는 자연을 보면 자연의 일부인 우리네 사람들의 삶도 그런 것이었는데 지금은 비자연을 넘어서 반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니 비인간적인 삶, 반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었구나 한탄하게도 됩니다.

ⓒ 김민수

법정 스님의 <홀로사는 즐거움>이라는 산문집에 '꽃에게서 들으라'는 글 중에 자연과 관련된 이런 글이 있습니다.

철따라 꽃이 피어나도 볼 줄을 모르고, 달이 뜨는지 기우는지 자연현상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것이 무엇에 홀리거나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증상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원초적인 터전이다. 생명의 원천인 이런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점점 인간성이 고갈되고 인간의 감성이 녹슨다. 그래서 박제된 인간, 숨 쉬는 미라가 되어간다.(P.26)

자연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 만큼 어쩌면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더불어 사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경쟁하며 사는 존재, 남을 짓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바뀌었나 봅니다.

ⓒ 김민수

만일 벌노랑이에게 꽃말을 붙여주라면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라고 붙여주고 싶습니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들이 들판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판에 핀 꽃들을 보고, 곤충들을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흔히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이제 고생길에 접어들었다" 또는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하기도 합니다. 공부 때문입니다. 원래 공부라는 것은 즐거운 것이요, 우리 삶의 일부였습니다. 노는 것 자체가 공부였고, 삶의 현장이 바로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교육환경은 아이들을 죽이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학원과 집을 오가며 모국어를 다 익히기도 전에 외국어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빼앗았습니다.

ⓒ 김민수

백창우 님의 <꿈이 더 필요한 세상>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온 땅에 누런 금덩이들은
모두 예쁜 구슬을 만들어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다 나누어주고
아이들에게 물려줄 교과서들은
모두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하늘 가까운 학교 옥상에서 다 날리게 하자
영어단어 몇 개보다는
꿈이 더 필요한 세상이게 하고
일류대학 졸업장보다는
꿈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자
아침에는 미술학원
낮에는 피아노학원
저녁엔 텔레비젼 아, 분주한 하루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건
어두침침한 전자오락실
놀이터는 몇 개쯤 있지만 아무도 거기엔 없는걸
유치원 경쟁률보다는
꿈이 더 필요한 세상이게 하고
백원짜리 동전보다는
꿈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자


ⓒ 김민수

ⓒ 김민수

이미 80년대에 만들어져 대학가에서 불리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이들의 상황은 더 나아졌다고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교육에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판을 치고 있고, 우리 귀여운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 들판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들판이 있으되 어른들의 욕심으로 들판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노랑병아리를 닮은 벌노랑이를 볼 때마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아이들이 참 행복하게 뛰어 놀면서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말로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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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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