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6일 영등포 열린우리당 중앙당사 당의장실을 접수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에 항의하며 점거농성에 나선 것이다.
건설운송노조, 전국시설관리노조, 애니메이션 노조, 전국보험모집인노조 등 비정규노조 대표자 20여명은 이날 오후 열린우리당 공청회에 참석했다가 오후 2시30분께부터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저녁 9시 30분 현재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교육 및 토론시간을 갖고 있으며, 내일(17일) 오전 11시 당의장실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견근로자법 개정안 철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간접고용 원청업체의 사용자성 인정 등을 주장하며 "열린우리당이 요구사안을 수용할 때까지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농성 철회를 전제로 이부영 의장을 비롯한 당 대표자 3인과 비정규노조 대표자 5∼7인의 면담을 제안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파견법은 97년 노동법 개악보다 사회적 파장이 큰 개악인데 쉽게 물러날 수는 없다"는 것이 당의장실을 점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농성에 참여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은 "최근 이부영 의장이 양대노총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노동법 개정에 대한 당정협의를 연기하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노동부가 최악의 개악안을 냈다"며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남신 서울지역 비정규연대회의 의장은 "비정규노조원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생존권 위기에 몰린다"며 "가만히 앉아서 눈뜨고 당할 수는 없지 않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의장은 "비정규직을 위한 입법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며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에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열린우리당을 믿고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제부터라도 강고하게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한편 이부영 의장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먼저 퇴거하고 사과를 한다면 대화에 응할 수도 있다"며 "경찰은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어내겠다고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 스스로 퇴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노동문제나 노동자들에 대해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며 "(점거 노동자들은) 나와 평소 잘 모르던 사이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점거해서 곤란하게 됐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점거에 열린우리당은 급히 경찰을 불렀으나 농성자들을 끌어내지는 않았다. 노동자들은 잠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지만 큰 부상은 없었고, 대치 과정에서 당사의 일부 임시 벽면이 무너지기도 했다.
농성이 시작된 뒤 열린우리당은 입구에 경찰을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노조 관계자는 물론 <미디어 참세상> 등 인터넷 기자들의 출입도 막아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음식물 반입도 금지돼 노동자들은 떡과 빵, 음료수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한 노동자는 당의장실 벽면에 붙어있는 '양심건국' 플래카드에 '비' 글자를 붙여 '비양심건국'으로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