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다가온 두 사내 중 거구의 사내가 무형의 기운을 쏘아내던 오른쪽 숲으로 신형을 날린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다.
"스스스----슷."
어느새 검이 뽑혔고, 그 검은 몇 그루의 고목을 베고 누렇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을 우박처럼 흩날리게 하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검은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하이얀 빛이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드잡이질은 없었다.
“정말 쥐새끼처럼 빠른 놈들이군.”
폭풍이 몰아치듯 휘날리던 나뭇잎들이 가라앉자 밑둥이 잘려진 몇 그루의 거목 옆에 서 있는 거구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탄탄한 몸을 가진 사내. 짧게 기른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사각형의 그의 얼굴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장검(長劍). 보통 중원에서는 장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껏 길어야 자신의 팔길이보다 반자 정도 길면 그만이다. 길면 길수록 유리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발검(拔劍)을 지연시키고 자유자재로 초식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팔길이는 남들보다 훨씬 길다.
하지만 그의 검은 기형적(畸形的)으로 길었다. 사실 왜구들이 사용하는 도(刀)는 길다. 그것으로 인해 왜구를 토벌하려던 군사들이 많이 피해를 입어 그 뒤로는 주로 장창(長創)을 이용하기도 했다.
“대형(大兄)... 놓쳤소?”
보통 체격의 사내가 실실 웃으며 비아냥거리며 하는 소리였다. 학창의를 입은 문사 차림의 이십대 중반의 사내. 얼굴도 잘 생겼다. 여자라면 한번쯤 더 돌아 보게 만드는 미남이고,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품도 귀족적이었다.
지금처럼 실실 웃지만 않는다면 말 붙이기 어려운 고관대작의 자제 같다. 검을 쓸어간 거구의 사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세놈이었어.”
거구의 사내는 걸어 나오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보았수?”
“아니.”
“그런데 어떻게 세명인지 알아.”
“야, 자식아. 네 코는 어디다 두고 쓰려고 그려냐? 하기사 쯧… 맨날 여자 지분 냄새나 맡으려고 달고 다니니 알 수가 없지?”
냄새로 알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냄새로 사람 숫자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크.. 형님 코가 개코인지 이제 알았네.”
“이 녀석이?”
그가 다가와 주먹을 드는 시늉을 하자 학창의의 사내는 펄쩍 뒤로 물러났다.
“아…. 됐어요…. 그만… 저번처럼 한번 맞으면 내 다시는 형님 안 볼꺼유.”
“그거 잘됐다. 네 녀석 보기도 싫은데 오늘 코부터 적당히 문질러 주면….”
그 소리에 학창의의 사내는 자라 목처럼 목을 잔뜩 움츠리며 두발자국이나 더 물러섰다. 그들은 으레 그런 듯 거구의 사내는 씨익 웃으며 송하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칫 때를 놓쳤으면 큰일날 뻔했군. 송하령 소저가 맞소?”
담천의는 그제서야 그때까지 송하령의 손을 잡고 있다가 슬며시 손을 놓았다. 말투로 보아 최소한 적은 아니다. 담천의가 거구의 사내에게서 느낀 것은 자신이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수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송하령은 날아갈 듯 예를 갖춘다. 이미 그녀는 나타난 사내가 대충 누구인지 아는 표정이다. 만나 본 적은 없어도 그의 외모로 짐작했는지 모른다.
“감사는 유탐화(兪探花)에게 하시오. 우린 그의 부탁을 받았을 뿐이고, 무사하게 처리되서 다행이오. 사실 그놈들이 그러한 능력까지 있는 줄 몰랐소.”
염력을 사용하는 자를 말하는 것일 게다. 그것을 알아 본 거구의 사내도 대단하다.
“유탐화께서 보내신 분들인가요? 정주에 계실 줄 알았는데….”
“하하. 우리 대형은 좀이 쑤셔서 기다리는 분이 아니오. 더구나 소저처럼 아름다운 미녀를 기다리는 바보가 어디 있겠소?”
탐화(探花)란 향시(鄕試)를 거쳐 회시(會試)에 합격한 인물들이 황제가 친히 주관하는 전시(殿試)에서 일갑(一甲)으로 급제한 세사람 중 3등을 한 사람을 가르킨다. 3등이라고는 하나 당장 관료로 임용되는 빼어난 성적이다.
“이 녀석이? 똑바로 말하지 못해. 정말 코뼈가 부러져야 되겠냐?”
거구의 사내가 으르렁거리자 학창의의 사내는 송하령에게 다가오다가 주춤했다.
“알았소. 알았다니까… 다가오지 말라구요.”
그는 자신의 코를 손으로 가리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한번쯤 당해 보았다는 표정이다.
“하하. 유탐화께서 연락을 주셨소. 이쪽으로 지나갈 것 같으니 기다려 보라고… 정말 제갈공명이 따로 없지.”
정말 그의 말대로라면 유탐화란 사람은 제갈공명 뺨치는 사람이다. 역시 세상에는 무섭도록 똑똑한 현자(賢者)나 진인(眞人)이 많다.
“어제 오후부터 기다렸는데 맞은 편에도 쥐새끼가 몇 마리 있는 것 같았소. 정체를 알 수가 없어 일단 지켜 보았던 것이오.”
그렇다면 맞은편에 있었던 자들 중에도 무섭도록 똑똑한 자가 있다는 말이다. 담천의는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으로 움직였는데 최소한 두명 이상은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는 결론이다. 그 때 거구의 사내가 담천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와주신 것 감사드리오.”
담천의는 그제서야 자신을 구해준 거구의 사내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어쨌든 어려운 위기를 넘기게 해 준 장본인이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거구의 사내는 담천의를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송소저와 같이 있었으니 자네인 것 같은데 표사 옷을 걸쳤으니 표사인가?”
“아직까지는 그렇소.”
거구 사내의 굵은 검미가 꿈틀했다. 뭔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맞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자네가 검절(劒絶) 양위헌(楊暐憲)을 베었나?”
거구의 사내는 죽였느냐는 표현이 아니라 베었느냐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은 묻는 사람이 검절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묻는 의도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겁한 암습(暗襲)이었소.”
“그럼 도절(刀絶) 염무의 가슴을 갈라 놓은 것도..?”
“상대가 합공한다는 것을 너무 믿고 방심했소.”
“호오…, 합공까지 견디어 냈다?”
놀라움과 동시에 흥미가 당긴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장절(掌絶) 하구연(何具淵)의 오른팔을 잘라낸 것도 자네겠지?”
“운이 좋았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 올랐다. 마치 좋은 먹이를 만난 맹수의 그것과 같은 웃음이었다. 더구나 아주 흡족한 모습이었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