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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국회 정무위에서 출자총액제한 유지와 계좌추적권 부활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우리당의 일방상정이라며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등이 김희선 위원장의 자리를 점거한 채 개회를 저지했다. 김희선 정무위원장이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16일 오후 국회 정무위에서 출자총액제한 유지와 계좌추적권 부활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우리당의 일방상정이라며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등이 김희선 위원장의 자리를 점거한 채 개회를 저지했다. 김희선 정무위원장이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차떼기 한 것, 재벌한테 몸으로 화끈하게 갚는구나."

지난 16일 오후 6시께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점거하는 등 국회 정무위원회가 공전되자, 이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던 한 의원의 말이다. 정말 요즘 한나라당의 처사를 보면 '결초보은'이란 고사성어가 절로 떠오른다.

한나라당은 '악법'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쟁점은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은 '대표적인 경제 죽이는 법'이라며 몸을 던져서라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이날 자정이 넘도록 위원장석을 '사수'해냈다.

이튿날(17일) 오후까지 계속된 위원장석 점거 끝에 결국 법안처리는 무산됐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11월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 갈등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법 시행 시기는 대폭 늦춰지게 됐다.

과연 출총제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할 악법일까. 출총제가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고있다는 것이 한나라당과 재계의 주장이나, 이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공정위 "재벌들 아직도 출자여력 많아"

공정위가 지난달 내놓은 '자산 5조원 이상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의 주식소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공기업을 제외하고 출총제의 적용을 받는 15개 민간 재벌그룹의 순자산은 141조원, 출자총액은 34조9000억원으로 출자비율은 순자산 대비 24.7%로 나타났다.

외형상으로는 법에 규정된 출자한도인 25%를 거의 채워 재벌 기업들의 출자 여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같은 업종이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종에 대한 출자 등 출총제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출자액은 출자총액의 54%인 19조원에 이른다.

따라서 적용제외와 예외인정 등을 감안한 순자산대비 출자비율은 11%다. 25% 출자한도를 고려하면 재벌들은 순자산의 14%, 금액으로는 19조3000억원의 출자여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 "삼성, 엘지 등 9개 그룹의 출자여력 순자산 대비 10%"

구체적으로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출자여력 금액은 삼성전자 5조3000억원·삼성SDI 3600억원·삼성물산 2800억원이고, LG그룹의 경우 LG필립스엘시디 5400억원·LG전자 4100억원·LG화학 2500억원 순이었다. 또 현대차그룹도 현대자동차 1조3000억원·기아자동차 5800억원·현대모비스 4000억원의 여력을 가지고 있으며, SK텔레콤 7100억원·KT 1조5000억원·KTF 6400억원의 출자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삼성, 엘지, 현대차, 케이티 등 9개 그룹의 출자여력은 순자산 대비 10%이상이고 한화, 현대중공업 등 2개 기업은 5% 미만"이라며 "이밖에 출자여력이 없는 기업들도 적용제외, 예외인정 출자는 출자여력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계는 여전히 기업집단 전체의 출자여력은 의미가 없다며 계열사별 출자 여력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매우 미미한 상태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 출총제 적용제외와 예외인정도 동종업종 또는 밀접한 관련업종에만 해당돼 출자를 통한 새로운 업종진출이 제약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출총제 존치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처리 지연되는 동안 삼성은 계열사 주식인수 발표

출총제는 계열사를 동원한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그에따른 동반부실 문제,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한 총수의 지배권 강화와 총수 1인 지배의 폐해를 막기위해 도입됐다. 그럼에도 그룹지배 강화를 위한 재벌들의 계열사 주식인수는 여전하다.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가 11월로 미뤄진 지난 17일, 삼성SDI는 이사회를 열고 9~10월 중 삼성물산 주식 700억원어치를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삼성SDI는 주식취득 이유를 '자금운용의 효율성'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증권가의 분석은 다르다. 삼성물산 경영권 방어를 위한 그룹지배구조 차원에서 결정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4.02%, 삼성에버랜드 1.48%, 삼성SDS 17.96%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은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이 취약해 그간 경영권 분쟁에 대한 우려를 받아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물산 경영권 안정을 위한 우호지분 확보 차원에서 주식 취득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시장에서의 반응도 삼성SDI의 주가가 4.24% 내려가는 등 부정적이었다. 삼성물산 주식 취득이 자금운용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는 삼성SDI 측의 해명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증거다.

삼성SDI가 계열사라는 점 말고는 별 연관이 없는 삼성물산의 주식을 매입하기로한 계획으로 인해 삼성SDI 주주들은 주가하락이라는 손해를 봤다. 또 700억원이라는 거금이 신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그룹지배구조 강화에 동원됐다는 점도 주주들에게는 잠재적인 악재라고 할 수 있다.

계열사간 출자 통한 자본증대, 총수 지배권 강화 위한 재벌의 단골메뉴

이러한 계열사간 출자를 통한 가공자본의 증대는 총수의 지배권을 강화하기위해 그동안 재벌들이 사용했던 단골메뉴였다. 재벌의 출자는 자본재 구입이나 공장의 신축 및 증설 등 자본의 증가를 가져오는 투자가 아니라 다른 회사, 특히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자총액제한이 기업의 신규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재계와 한나라당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현실이 이러한 데도 실효성마저 의심되는 누더기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악법이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을 던져 연출한 점거농성은 마치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권은 이 지경이고 기업의 이사회마저 지배구조강화를 위해 기업자금이 계열사 주식 취득에 사용되는 '반시장적' 행위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로인한 주가하락, 기업성장 잠재력 저하 등 주주들이 입는 피해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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