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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광고의 '하얀 우유의 힘, 남자는 강하고 건강하게, 여자는 날씬하고 매력적이게'라는 카피가 성차별적인 내용이라며 진정을 낸 봉현숙씨.
우유 광고의 '하얀 우유의 힘, 남자는 강하고 건강하게, 여자는 날씬하고 매력적이게'라는 카피가 성차별적인 내용이라며 진정을 낸 봉현숙씨. ⓒ 인권위김윤섭
2004년 3월 초 그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성차별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농림부와 농협, 한국마사회 등이 만든 우유 광고 카피가 그 원인이었다.

지하철 4호선의 한 객차에 6개나 부착된 광고는 '하얀 우유의 힘, 남자는 강하고 건강하게, 여자는 날씬하고 매력적이게'라는 문구와 함께, 날씬한 여성과 근육질의 남성이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보다 더 심한 광고를 수없이 보고서도 그냥 무시하거나 웃어넘기던 봉씨가 문제의 우유 광고 앞에서 모욕감을 느낀 이유는, 이 광고가 다름 아닌 국가기관의 홍보물이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상품화를 앞장서서 막아야 할 사람들이 성차별을 조장하다니….'

봉씨는 곧바로 지인들과 의논했다. 반응은 엇갈렸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항의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봉씨는 그들 모두 이 광고에 대해 '불쾌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하게 된다. 평상시 다소 보수적인 봉씨의 어머니마저 "그래, 그건 부당하다. 네 말이 맞다"며 딸의 편을 들었다고 한다.

"나만의 편협한 사고가 아니라 다수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반드시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침묵한다고 해서 나까지 침묵하는 건 다수에 대한 암묵적 동조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좀 번거롭더라도 내가 나서야 한다…. 뭐 그런 느낌으로 국가인권위를 찾아갔어요."

봉씨가 진정을 접수한 지 2개월여. 국가인권위원회가 관련 내용을 조사하는 도중, 문제의 광고 카피가 바뀌었다.

'우유는 힘! 마시자. 114가지 각종 영양소의 완전식품 하얀 우유, 우유 한잔으로 온 가족이 건강하게'

봉씨는 국가인권위 조사관으로부터 광고 문구의 변경 사실을 통보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진정서 한 장으로 그렇게 빨리 국가기관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반신반의했던 것이다.

"저의 좌우명이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예요.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할 줄만 알지,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진정해도 소용없을 거'라던 친구들이 나중에 '고맙다. 큰일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우리가 일상의 차별문제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세상은 엄청나게 변할 수 있겠구나…'라고."

봉씨는 1980년생으로 2000년에 법학도가 된 밀레니엄 학번이다. 그는 아무런 고민없이 법대에 입학한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로 여기며 살아왔지만,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법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봉씨가 교실 밖에서 체험한 이야기는 한국 인권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2002년 한반도 전역이 월드컵 열풍에 휩싸였을 때의 일이다. 봉씨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장애인이동권보장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연행됐다. 그는 이 날 영장도 없이 가방을 수색당했고, 경찰서에서 조사내용과 무관하게 아버지의 직업과 집의 평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유치장에 입감하면서 '자살을 예방해야 한다'는 이유로 브래지어를 벗어야 했다.

봉씨의 고통은 유치장에서도 계속됐다. 유치장 내부의 화장실이 외부에 노출된 구조여서, 경찰관이 밖에서 화장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 봉씨는 이 날 얼마나 화가 났던지, 30여 시간 동안이나 용변을 참았다고 한다. 그 나름의 처절한 시위였던 셈이다.

2003년 초 봉씨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다. 봉씨가 휴학을 하고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을 고민할 때 이라크 전쟁이 터지고 한국 정부가 파병을 결정했던 것. 그는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사람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집어던지는 경찰 앞에서 좌절했고, '이라크 전쟁 반대 의견'을 표명한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누구의 편에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결정했다.

봉씨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장애인단체 회원으로 활동하고 동성애단체에도 관심을 가질 만큼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대학을 졸업한 뒤 중산층으로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은 꿈이 자라고 있었다.

이제 그는 그 마음을 지우려 한다. 그가 새롭게 구상하는 인생의 목표는 사회적 약자들이 아름답게 꾸며가는 공동체 사회다. 그는 그 꿈을 이루는 데 있어 작은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제가 이 정도로 생각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 덕분입니다. 세상이 내게 가르쳐 준 만큼, 나도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끝낸 봉씨가 밝힌 당찬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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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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