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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사진
이 한 장의 사진 ⓒ 샘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시한부 생명인 한석규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카메라 앞에 앉는다. 살아있음의 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사진은 보여준다. 생의 한 순간을 영원의 압핀으로 고정하고 싶은 서글픈 한 인간의 욕망을.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은 그대로 향불 앞에 놓이는 영정의 사진이 되기도 한다. 그 사진은 말한다. 나도 한때는 당신들과 같이 그곳에 있었다.

모든 사진은 생명의 한 순간을 기록한다. 그것은 아주 짧은 찰나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소망의 기록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 앞에서 인간의 꿈은 덧없다. 우리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그 덧없음에 저항해본다.

그러나 소멸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 모든 것은 낡아가고 희미해져 간다. 어떤 것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어떤 것도 세월 속에서 견고한 윤곽을 유지할 수 없다. 풍화의 운명 앞에선 존재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진마저도 조금씩 빛이 바래간다.

햇볕이 환한 여름날이었을까. 사진 속의 어머니는 웃고 계신다. 어머니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말인가. 처녀인 어머니는 아름답다. 이제 저 눈부신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부재한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의 어머니는 영원한 처녀다. 그 어머니는 늙지 않는다. 지금은 없는 것들이 여기에는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사진의 비밀이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지금은 내게 없는 것들과 이미 흘러가 버린 한 시절을 생각한다. 젊고 미끈한 아버지, 수줍은 미소를 짓는 어머니,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첫사랑, 입영전야…… 단 한 번뿐이었던 시간들을 사진은 재생시킨다. 정말 그때 그랬단 말인가. 가벼운 탄성이 튀어나온다.

"…너의 방안을 정리하다가 내 사진이/혹시 나오면 넌 그냥 찢고 마는지/한참을 바라보는지/ 또 우울한 어떤 날/비마저 내리고 늘 우리가 듣던 노래가/라디오에서 나오면 나처럼 울고 싶은지…."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이란 노래의 한 대목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이 사진 속에는 있다. 없는 것이 확실한데도 사진 속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아이러니! 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으며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닿았다고 안도해 보지만 사진 한 장으로 해서 부재는 더욱 확고해진다. 설상가상으로 비마저 부슬부슬 내린다.

촬영한 필름을 인화하기 전까지는 잘 찍혔는지 마음을 졸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카메라엔 그런 불안이 없다. 필름에 빛이 들어가 한 장의 사진도 건지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촬영한 사진을 카메라의 모니터를 통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컴퓨터 폴더에 사진을 저장해 놓고, 모니터를 통해 언제든 사진들을 불러내어, 이리저리 오려붙이고 뿌옇게 뚜렷하게 변형해보고 사진으로 한참을 놀 수 있다.

이제 사진은 심각하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고상한 폼을 잡던 시절도 지났고, 가족이나 애인의 사진을 수첩 속에 끼워 놓을 만큼 사진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도 없다. 이제 사진은 가벼울 대로 가볍다. 사진을 대하는 젊은이들을 보라. 필름에 빛이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 따위는 없다. 혹시 사진이 잘못 나오면 어떨까 하는 조바심도 없다. 잘못 나오면 다시 찍으면 그만이다. 설령 잘못 나오더라도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으로 적당히 손질을 할 수 있다.

메모리 카드의 용량이 충분하니 얼마든 찍을 수 있다. 얼마든 찍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찍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강의를 하는 선생님도 찍을 수 있고, 나의 누드도 찍을 수 있고, 타인의 몸을 몰래 찍을 수도 있다. 사진은 이제 놀이요 유희다. 사진은 이제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이 한 장의 사진>은 가볍지 않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인 스물아홉 명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묶은 산문집이다. 사진 속에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 있고, 불행했던 청춘과 스무 살의 좌절이 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부모님과 친구들,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기억들을 불러내는 초혼제(招魂祭).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을 어떤 이는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고 또 어떤 이는 쓸쓸함으로도 기억하고 더러는 뼈아픈 슬픔으로도 기억한다. 물들여 입은 군복처럼 궁색한 날들의 이야기, 유랑극단의 배우처럼 촌스러운 날들의 이야기를 이 책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10여 년 전 손녀와 찍은 사진을 찾아낸 소설가 박완서는 손녀에게 공들여 글자를 가르쳤던 추억을 끄집어낸다. 박씨는 더디게 한글을 깨우치는 손녀를 위해 손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동화책을 썼다. 아이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할머니가 쓴 동화책을 읽어 달라 자꾸만 재촉했고, 차츰 글자도 깨치게 됐단다. 그 손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그 할머니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손녀의 마음은 어떨까.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황량한 사막에서 어떤 사진은 갑자기 나에게 찾아와 나를 흥분시키고, 또 나는 그 사진을 흥분시킨다. 그러므로 내가 사진을 존재케 하는 매력을 열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방식에 의해서이다. 즉 그것은 흥분시키기이다. 사진 그 자체는 조금도 흥분되지 않지만, 그러나 사진은 나를 흥분시킨다. 이것이 바로 모든 모험의 행위이다.

어떻든 사진은 그것을 보는 이를 흔들고, 격발시키고, 찌른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일, 바로 그 아픔을 즐기는 일이다.

이 한 장의 사진 - 내 마음속 사진첩에서 꺼낸

박완서 외 지음, 샘터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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