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지난 21일 공개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보고'(이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네티즌들은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냐"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협상을 다시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 1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든 보고서는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한 문제점을 충분히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규명하여 관련자를 문책하는 한편 외통부, 국방부 및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련 부문의 인사개편을 적극 검토함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인사개편은커녕 지적되었던 문제점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난 7월22~23일 제10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현재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 포괄협정(UA)와 이행합의서(IA)는 이달 말 비준을 받기 위해 국회에 정식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는 국회 동의를 받기 전까지는 UA와 IA의 전문을 절대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지적했던 문제점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한나라당은 극소수 의원을 제외하고 찬성할 것이 확실하다. 열린우리당의 30~50명 정도의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당 지도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냥 통과시킬 계획이다. 지난 7월22일 여야의원 63명이 용산기지 이전 협상과 관련한 감사를 청구하기로 했으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를 반대해 사실상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결국 UA와 IA의 국회통과에 반대할 세력은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의 일부 의원 등 70명도 못되는 상황이다.
조약국-북미국 싸움의 원인은 용산기지 협상
왜 지난해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 대해 조사에 나섰을까? 그리고 왜 이 보고서는 그냥 사장되고 말았을까?
지난해 3월부터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이 전세계적인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 차원에서 주한 미군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과, 용산기지 이전도 미군 재배치의 하나라는 것은 명확했다. 즉 미국의 필요에 의한 기지 이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협상팀은 이를 무시하고 지난 1990년 체결된 용산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합의각서(MOU)와 양해각서(MOA)를 그대로 인정하고 "한국이 기지 이전비용 전액을 부담한다"는 원칙하에 협상을 시작했다.
90년 각서들은 이상훈 당시 한국 국방부 장관과 메네트리 당시 주한 미 사령관이 서명했다. 이 각서들은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모든 비용, 심지어 미군 및 가족, 고용인들의 이사비용, 기지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간업자들의 영업손실, 번역료 등까지 모두 한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공사기준도 모두 미국 기준을 적용한다.
더구나 90년 각서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외국과의 조약은 반드시 국회의 비준을 받도록 한 헌법 제60조 1항을 무시하고 국회 동의도 받지않았다. 따라서 체결 당시부터 위헌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그러자 미국은 지난 1991년 5월 당시 반기문 미주국장(현 외교통상부 장관)을 위협해 90년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다는 내용의 '소파합동위원회 각서'를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 안에서도 일부 인사들, 특히 외교통상부 조약국이 90년 각서를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하는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그리고 이 협상의 감독책임이 있는 NSC는 조약국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무시했다.
조약국을 한편으로 하고,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NSC를 한 편으로 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논란이 분분하자 지난해 10월부터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이 조사에 나섰다.
보고서, "90년 각서들 문제점 많다" 다시 결론
지난해 11월11일과 14일 당시 NSC 서주석 실장, 위성락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민간인 법률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문제점을 정리했다. 같은 달 18일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결과 보고'를 내놓았다.
지난해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북미국 직원들의 노 대통령 폄하 발언 파문도 사실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용산기지 협상조사 과정에서 나왔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대체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런 식으로 협상을 진행했느냐"고 묻자 조사에 응했던 김아무개 외교관이 하나의 사례로 북미국 직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폄하 발언을 소개했던 것이다. 이것이 지난해 말 외부에 공개된 것이다.
보고서는 90년 MOU와 MOA의 문제점에 대해 ▲MOA와 MOU가 정부간 협정이 아닌 기관간 약정형식으로 국방부 장관의 범위를 벗어난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 각서들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아 헌법을 위반했으며 ▲91년 5월 소파합동위원회 각서에 당시 반기문 미주국장이 서명했으나 이를 통해서는 MOA와 MOU은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적으로 하자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90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또 보고서는 "1997년 당시 미국 스스로 용산기지 이전 비용이 95억달러고 했는데, 지금은 90년 당시 합의각서 체결 때보다 미국의 요구 조건이 훨씬 많아 비용이 더 들 것"이라며 "그런데도 미국은 정확한 비용을 밝히지 않고 있고 한국 협상팀은 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르면서도 무조건 기지 이전비용 전액을 부담하는 식으로 협상을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또 건물의 건축 기준도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 자국 기준을 원칙으로 했으나 한국만 미국 기준에 따라 건물을 지어주기로 한 점도 지적됐다.
무엇보다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오산·평택을 전략적 허브로 해 미군을 재배치하는 것으로 주한 미군의 성격 변화에 따라 미국의 필요에 의한 이뤄지는 것인데 한국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용산기지 이전 관련 문서를 소파의 부속문서로 두는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보고서는 "소파는 개별 시설과 구역의 공여와 반환에 대해 규정하고 있을 뿐 기지 이전에 관한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다"며 "따라서 독립된 조약에 해당하는 용산기지 이전 관련 협정문서를 소파 부속문서로 두는 것을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환경오염 치유문제도 등장했다. 즉 반환받는 미군 기지에 환경 오염이 있을 경우 이를 미군이 치유하도록 강제할 아무런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군이 반환받은 미군 송유관의 복구및 오염 치유에 수조원이 들게될 것으로 보인다. 반환받은 미군 기지는 상당히 오염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은 데 미군이 이를 원상회복할 아무런 법적 강제조항이 없이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UA와 IA의 이중 구조의 문제점
한국 협상팀은 용산미군 기지 이전 문서를 UA와 IA로 나눴다. 이는 기지 이전의 선언적 원칙만 담은 UA는 국회의 비준을 받고, 실질적인 비용부담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IA는 국회 비준을 받지 않기 위한 편법이었다.
이는 물론 지난 90년 MOA와 MOU를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더 개악된 면이 있어 그대로 국회에 제출할 경우 비준받는데 어려움이 있고 공개될 경우 국민적 논란이 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노회찬 의원이 지난 21일 공개한 FOTA 3차회의 속기록에서 한국측 협상자 위성락 북미국장이 "90년 합의서의 문제는 국내적으로 헌법과의 합치문제가 있다"며 "기존 합의서의 핵심내용을 UA에 반영하고, 세부적 내용의 IA를 만들어 포괄협정만 국회에 가자고 미국에 제안했다"는 내용으로 다시 확인된다.
즉 한국협상팀은 국익을 최대한 반영하기 보다는 어떻게하면 국민들에게 들키지 않고 미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것인가에만 골몰했던 것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에서도 "외교부는 ▲MOA/MOU는 유효한 합의이므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협상이 진행될 수 없다 ▲국회와 국민이 문제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과 문장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는 협상기조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청구권 조항만 일부 수정... 나머지는 고친 것 없어
그러나 이렇게 낱낱히 문제점이 지적된 보고서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되지 않았다. 대신 요약본 형태로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을 끝으로 그냥 사장되고 말았다. 대신 정부는 이 보고서를 비밀로 분류해 철저히 숨겼다. 단 일부 내용이 약간 흘러나왔을 뿐이다.
아무튼 문제점이 지적된 이상 한국협상팀도 어쩔 수 없이 미국에게 일부 수정을 제기했다. 즉 올 1월 FOTA에서 한국 협상팀은 비용 문제 등에 있어 엄밀하게 다시 정의할 것으로 미국 쪽에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제까지 비용을 다 대준다고 했다가 이제와서 무슨 딴 소리냐"며 이를 거부했다.
다시 용산기지 이전협상은 몇 달을 끌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8차 FOTA에서 애초 미국이 요구한 것을 그대로 수용한 UA와 IA를 만들게 된 것이다. 올 10월이면 미국의 예산안이 확정되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며 미 협상팀이 강하게 마무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친 것은 용산기지 이전 과정에서 영업손실을 입은 민간업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청구권 조항을 손 본 것이 전부다. 이전에는 한국이 청구권을 부담한다고 했으나 이제는 이 조항이 없다.
한국 협상팀은 이것을 큰 성과로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법에는 역시 청구권에 대해 미국 정부는 부담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청구권에 대해 책임질 쪽이 없다. 그러나 문제가 커질 경우 결국 한국이 편법 부담하게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UA와 IA는 법제처의 심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 심사를 거친 뒤 이달 말 국회에 비준을 받기위해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현재 국회 안에서 UA와 IA에 반대할 의원들은 채 70명도 안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