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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 유방> 1권 책 표지
<항우와 유방> 1권 책 표지 ⓒ 정호갑
중국 인물에 대해 일본 사람이 쓰고 한국 사람이 읽었다. 시바료타로가 쓴 <항우와 유방>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중국 문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한제국의 탄생과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이 끝까지 대결해야만 했던 두 경쟁자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일본인의 눈으로 엮어 놓은 책이다. 그것을 한국인의 눈으로 읽었으니 중국에 다가서는 또 다른 하나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우선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유방과 항우’가 아니고 ‘항우와 유방’이다. 유방이 승자이고 항우는 패자인데 항우를 앞에 놓았다. ‘왜 그랬을까’에서부터 이 책 읽기가 시작된다.

제도와 의식이 함께 하여야

이 소설은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秦)이 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강대했던 진의 무너짐은 모든 것을 법으로 얽어매었다는데서 비롯된다. 진은 주위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통일하였으니 더 넓어진 땅을 통치하기 위하여 마땅히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였다.

그 누구도 진 제국의 통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법치주의와 관료제라는 시황제가 고안한 실험적인 정치는 진 왕국이라는 좁은 땅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랜 세월 농업사회의 전통을 유지해오던 중원의 다른 지방과 강남땅에 적용되자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백성들은 듣도 보도 못한 그 제도에 혼란을 일으켰다. 걸어다니는 땅에 무수히 많은 바늘을 꽂아 놓기라도 한 듯이 세상살이가 힘들어졌다. (1권 67쪽)

하지만 이렇듯 그 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어서 오히려 귀찮은 존재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의식이 거기에 따라 주지 못했으므로 진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제도 못지않게 사람의 의식의 변화가 따라야 개혁과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작가의 눈이다.

개혁과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도 제도만으로는 개혁을 성공리에 이끌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새로운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의식의 변화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훌륭한 제도는 몇 사람의 힘만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몇 사람의 힘만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의식의 변화를 어떻게 가져오느냐가 바로 개혁과 변화의 열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항우와 유방의 대조

항우와 유방은 서로 어긋나는 점이 많았다. 먼저 출생부터가 다르다. 항우는 초나라의 반듯한 귀족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지만, 유방은 평범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항우는 사람을 제압할 정도의 외모와 기개를 갖춘 영웅이지만, 유방은 한 마을 건달로 사람을 위압할 외모나 기개를 갖추지 못했다.

항우는 사람들에 대해 의심이 많았다. 그래서 혈연관계를 중요시 하였다. 그 틈을 비집고 유방의 부하 진평이 농간을 부려 스스로 아부(亞父 : 아버지 다음 가는 분) 부르는 모사 범증을 항우 곁에서 떠나도록 만든다. 반면 유방은 사람을 감싸는 포옹력이 있었다. 그리고 혈연관계는 아예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곁에는 뛰어나고 충성스러운 인물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유방을 따랐던 소하, 번쾌, 하우영은 물론이고 장량, 한신까지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 항우는 잔인무도하게 사람을 죽여 민심을 잃게 되지만, 유방은 마을의 어른인 부로를 공경하여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두 사람은 서로 대립적인 점이 많았다.

유방이 항우보다 나은 점이라곤 포용력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포용력도 자기가 보잘 것 없다는데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였고, 마을 어른들을 공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 강자인 항우를 이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유방의 승리

처음부터 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유방은 항우보다는 한 단계 아래 있었다. 유방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고 항우를 무서워하였다. 그런데 진나라의 수도 관중으로 먼저 들어가는 행운이 그에게 찾아온다. 그 때 그는 욕심을 내어 항우와 한 번 맞붙고자 한다.

하지만 항우가 관중으로 달려와 공격 태세를 취하자, 그만 겁을 먹고 홍문의 회합에서는 빼앗은 관중을 그대로 갖다 바치며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리고 난 뒤에도 수차례 항우와 대결하여 보지만 늘 쫓기면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면서 자기는 항우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자인한다.

그런 그가 마지막 단 한 번 해하의 결전에서 승리하여 대권을 잡게 된다. 유방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항우의 약속을 뒤엎은 배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1년 이상 항우와 광무산에서 맞섰을 때, 유방은 후공을 보내 항우와 화친 조약을 맺고 중원을 이분하기로 한다.

그러나 유방은, 뒤를 쫓아가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항우에게 당할 것이라는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곧바로 항우를 추격하여 승리로 이끈다. 그 배신으로 오늘 중국의 문화의 바탕을 이룬 한나라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유방의 배신을 욕하지 않는다. 유방을 당당히 한제국의 고조로서 그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러한 점은 지난 미국의 대선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개표에 대한 많은 의혹이 발견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어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였고, 미국 국민 또한 부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힘이 바로 대국의 힘이지 않나 생각한다. 결과에 꼬투리를 달지 않고 승복하는 그 힘이 부럽다.

싸움에 진 그러나 영웅으로 길이 남은 항우

또 한편으로는 항우는 싸움에 졌기에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유방보다 오히려 더 추앙의 대상이 된다. 항우의 죽음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애달파 하면서 그를 기린다. 그 기개와 그의 패배가 예술로 승화되었다. 중국이 자랑하는 경극 가운데 <패왕별희>로 바로 그것이다. 항우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삼국지>에서도 볼 수 있다. 삼국지 많은 인물 가운데 오늘날 중국인의 가슴 속에 영웅으로 살아남아 있는 인물이 관우이다. 전쟁에서 이긴 조조보다는 오히려 전쟁에서 진 관우가 더 영웅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싸움에 나가서는 용맹을 떨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당히 맞붙어 굴하지 않는 기개를 중국인들은 높이 사는 것 같다. 항우나 관우 둘 다 죽는 순간까지 그러한 태도를 보이며 죽어갔다. 하늘이 버린 영웅을 사람들이 기려준다.

싸움에 지고서도 영웅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승리한 자에게는 그 승리가 그대로 인정되는 사회를 그려본다.

항우와 유방 1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달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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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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