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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광주비엔날레'가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주제로 지난 9월 10일부터 광주 지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그 밖의 어떤 것-마이너리티' 현장전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이너리티의 문화적 코드로 무장한 이 전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중심 논리가 스며 있는 도시 광주에서 '그 밖의 어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신나는 놀이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앗싸! 마이너리티' 기획은 이 전시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광주 사회의 '그 밖의 어떤 것', 즉 마이너리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고자 합니다. '마이너리티'의 큐레이터 박찬국씨를 시작으로 <전남매일> 박호재 편집국장, 문화비평가 서동진씨, 미술평론가 임정희씨, 작가 강홍구씨 등이 필자로 참가합니다.... <편집자 주>


▲ 철거 전의 상무대 영창 모습. 이 사진은 복제된 현재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사진이다.
ⓒ 박찬국
막 만들어진 도로 위에 이상하게 걸터 앉은 듯한 느낌을 주는 낡고 특이한 구조의 건물들이 있다.

주변에는 비에 젖은 붉은 흙들이 쌓여 있다. 건물들의 위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직각으로 꺾여져 들어와 있는 검은 도로의 진노란색 중앙 분리선이 너무나 선명하다.

상무대 영창에 걸린 사진 한장

80년 광주 항쟁 당시 잡혀온 시민군을 감금하고, 가혹한 고문과 턱없는 사형, 무기징역을 남발했던 옛 상무대 헌병대 건물들은 이처럼 폐기 처분 직전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원래 자리에서 100여m 옮겨져 복원된 광주 5·18자유공원. 옛 상무대 영창에 걸린 이 사진 한장은 막개발에 밀려 무참히 사라지는 우리 사회와 개인,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기억들이 어떻게 '땡'처리 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바로 그 공간, 그날의 땀과 한숨, 피멍은 지워지고 흰 페인트와 파란색 잔디가 돋보이도록 어설프게 재현된 공간에서 지금 2004 광주비엔날레 현장3 전시가 열리고 있다.

주변에는 온통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찼고, 골프 연습장도 있다. 정면의 타워 크레인은 무심히 돌아가면서 여전히 '공사 중'이다. 그렇지, 언제 어디서나 공사 중, 공사 중이 아니면 대한민국이 아니지.

▲ 언제나 대한민국은 공사 중이다. 사진은 2004 광주비엔날레 현장 3전을 설치 중인 모습. 뒤에 보이는 것은 광주 컨벤션 센터 공사 장면이다.
ⓒ 박찬국
관리되는 기억

"어이, 거기 못 박지 말아요. 잔디 망가져요. 소장님 아시면 큰일 납니다."

전시 설치 기간 동안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잔소리는 거대한 5월 기념물들처럼 답답하고 숨차게 한다.

어떻게 해야 폐기해야 할 가치와 보존해야 할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가. 항쟁의 희생자들에게 준 얼마간의 위로금과 몇몇 기념 사업들. 이제 광주의 5월은 박제된 채로 역사책에서 암기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만 것일까.

망월동의 높다란 기념 조형물에 매달린 작은 사람을 묘사한 '광주의 페르소나'. 이 작품을 통해 작가 신현경은 역사적 사건에서 기억의 주체인 '나'를 배제하는 일방적 기억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낮지만 통렬하게…. '위선 떨지 마!'

끊임없이 공사 중인 활력 과잉의 나라. 이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우리는 근육을 늘리는 치열한 현장인 학교와 직장, 도시의 거리 거리를 불철주야로 뛰어 다닌다.

철거 현장의 잔해들을 싣고 시내를 질주하는 덤프 트럭 위에서 열심히 수영하는 작가 고승욱의 '철인경기'는 우스꽝스럽지만 오늘 우리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 작가 고승욱은 철거 현장의 흙이 실린 덤프 트럭 위에서 땅 짚고 헤엄을 친다. 2004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광주에 도착한 트럭 위에는 고승욱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카메라가 달려 있다. 이 기록은 광주비엔날레 현장 3 전시장인 5·18자유공원 상무대 영창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다.
ⓒ 고승욱
이번 전시는 끊임 없이 공사중인 상황,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마냥 달려 가는 한국 사회,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몸짓에 비해 제대로 된 내용이 없는 위선적이고 경직된 관리 시스템에 대해 말한다.

마이너리티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거대하고 웅장하며 조형적인 스펙타클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화면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린다. 당연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다. 매사가 게임이며 게임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자신이 사느냐 죽느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게임에서 다른 가치를 말하면 무조건 탈락자로 간주된다. 탈락자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필요치 않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마이너리티들은 다르다. 그들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르다. 평등, 평화, 인권을 입으로 외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그것을 실현하는지가 중요하다.

눈이 어둡고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도시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큰 불만 없이 정당하게 대우하고 있는가. 동성애자나 여성들도 마땅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별것 아닌 욕심 때문에 불필요한 살생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등등을 그들은 다름 아닌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작가 그룹 '믹스라이스'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토크쇼를 진행한다. 사진은 믹스라이스와 함께 하고 있는 '버마액션'. '버마액션'은 버마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공동체이다. 그들은 이주노동자로서 자신에 관해 적극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며 동시에 본국의 군사정부에 관하여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다.
ⓒ 믹스라이스
마이너리티들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가치들과 너무 낯익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 속에서 값지고 소중한 의미들을 발견한다.

마이너리티의 관점은 무차별로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 시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잃어 버린 '응시'의 능력을 상기 시킨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치를 실현해 진짜 살 만한 세상을 만들자고 말한다.

도시, 생활, 제도에 개입하고 리포트를 보여 주는 전시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이벤트 안에서 기획자와 작가들은 새로운 어법으로 크고 완벽하게 자신의 생각을 보여 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 기존의 유통 구조와 권력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옛 상무대 자리에서 열리는 '현장3' 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원하자 팀의 학교 패러디 작품 설치 모습
ⓒ 박찬국
하지만 '현장3' 전시는 2년마다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가 지역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섞여야 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국의 현재 상황을 비평적으로 드러내고 마이너리티의 관점으로 말하기, 도시를 조사하고 문화와 담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행적 쫓기, 작가와 청소년, 학생 교사들이 한 그룹이 되어 대안적인 도시 모델 만들어 보기, 학생들이 만든 결과물을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검토하고 논쟁적으로 자치단체가 수렴해 나가기 등이다.

비엔날레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나친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버려진 생선 상자와 부유하는 닭털, 주방 수세미, 하찮은 고물들이 큰소리 내지 않고 어떻게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가족 친지와 함께 와서 즐기면 된다.

만약 시간이 된다면 125번 버스에 몸을 싣고 담양의 풍물을 작가와 함께 체험하고, 야밤에 영상물을 싣고 시내로 배달 나가는 조 선생의 영상 게릴라 버스에 동승해도 좋을 것이다. 11월 13일까지 광주 5·18자유공원.

125번 버스를 타자
시내버스 안에 담긴 광주 사람들의 풍경

▲ 광주 125번 시내버스는 광주와 담양을 오가는 버스다. 이 버스는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광주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에 내다 팔려는 담양 농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사진은 125번 버스 승객과 대화중인 작가.
ⓒ김수옥
광주 도청과 담양을 오가는 125번 버스에는 이제 도시에서 맛보기 힘든 풋풋한 인정이 남아 있다. 김왕주, 김수옥 작가는 버스 기사를 비롯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류장 곳곳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흔적과 시대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체험이 너무 좋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꼬드겨 함께 답사를 가자고 제안했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반응에 고무된 그들은 전시 기간 동안 4번의 답사를 시민들과 함께 하겠노라고 '오버'를 때렸다.

지금 전시장에는 매번 답사 때마다 시민들이 만드는 기록이 추가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시민들이 반응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광주의 유명한 재래시장인 말바우 시장에 나와 20년 동안 야채 행상을 해서 자식을 가르쳤다는 한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면, 지금 우리 나라의 농촌과 도시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은 취재 중에 만난 할머니의 며느리가 그린 한 장의 연필 초상화에서 그나마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단다.

125번 버스는 오는 10월에 있을 회사의 버스 노선 통폐합에서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 한다. / 박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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