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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위에 널린 고추
평상위에 널린 고추 ⓒ 박도
나는 요즘 안흥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아내가 가스 설치 공사 관계로 며칠째 서울에 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따금 나에게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늙어서 자식들에게 기댈 생각 말고 지금부터 혼자 사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막상 혼자 살아보니까 잔일들이 수월치 않다. 세 끼 밥 먹는 일, 청소하고 세탁하는 일 등 기본 생활도 만만치 않다. 거기다가 요즘은 텃밭에서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걷어야 해 여간 성가시지 않다.

지난날에는 외가나 처가에 갈 때마다 햇볕에 말렸다는 고추를 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제야 그 태양 고추 속에 담긴 노고를 알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가 쾌청했다. 아침밥을 먹은 후 며칠째 계속 추근추근 비가 내려서 방바닥에 말리던 고추를 마당 평상에 널었다. 옆집 노씨가 호미를 빌리려고 왔다.

노씨도 요즘 낮에는 혼자 지내고 있다. 올 봄 여름 채소농사에 실패해 조합에 잔뜩 빚만 졌다더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부인이 생활비라도 번다고 찐빵가게에 가서 날품 일을 하고 있다.

노씨는 나에게 고추를 그대로 말리지 말고 가위나 칼로 반을 잘라야 잘 마른다고 일러주고 갔다. 아닌 게 아니라 고추를 한 열흘 말려도 바싹 마르지 않았다.

출입문 위의 땅벌 집
출입문 위의 땅벌 집 ⓒ 박도
땅벌의 공습

노씨가 간 후 가위를 찾고는 출입문을 꽝 닫았는데(문이 잘 닫히지 않기에), 갑자기 '왱'소리가 나더니 정수리와 귓바퀴 뒤에 불똥이 떨어진 듯 화끈하다.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출입문 바로 위에 땅벌 집이 보였다. 이 놈들이 문짝소리에 위협을 느꼈었나보다. 그중 두 마리가 나에게 가미가제 특공대 식으로 대침을 찌르고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살피니 땅벌 두 마리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비록 나에게 엄청 고통을 준 놈들이었지만 곰곰 생각하니 그 충성심과 의기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집이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쳐서 집과 남은 가족을 지키는 게 가장의 바른 도리가 아니겠는가.

순간 나는 땅벌 두 마리의 시체 위에 안중근 의사, 왕산 허위 선생, 윤봉길 의사, 동북항일연군의 허형식 장군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분들은 나라가 외적에게 침략 당하자 땅벌처럼 외적의 정수리에 대침을 놓고 불꽃처럼 산화했다.

외적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면 나라는 마땅히 그 어른들을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후손들을 돌봐야할 텐데 오히려 외적에게 빌붙은 자들이 행세를 하고 그 후손들마저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

며칠 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관문도시 키르키즈에 살고 있는 한 동포가 나에게 왕산 손자 허블라디슬라브씨의 하소연을 메일로 보내왔다.

"내 할배가 목숨 바친 나라가 우릴 모른다 하오! 우리는 인계도(아직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도 같은 떠돌이 신세란 말이요. 할배도…아부지도…나도…내 자식도…하! ~~ 기차오!

3대요? 무스거 소리요. 5대가 폭삭 망했습네다. 이거이 말이나 되는 소리요?…조선독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소. 한국에 일하러 가려고 해도 비자를 아이주오. 그래도 우린 여기 살면서 고려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하는데…."


나는 땅벌 두 마리 시체를 뒤뜰에 깊이 묻어줬다. 그러면서 땅벌보다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나도 포함해서).

농사꾼들의 분노

점심을 먹은 후 느지막이 읍내 우체국에 갔다. 오는 길에 농협 슈퍼에 들러 삼겹살 두 근과 소주 한 병을 사왔다. 무너진 벽을 고치는 노씨를 불러 즉석에서 삼겹살을 구워서 소주 한 잔을 나누는데, 동네사람인 김아무개가 노씨를 찾아와서 자리를 함께 했다.

2004년 9월 22일 예산군 농민들이 벼수확 포기를 선언하고 볏단을 군청 현관에 반납하고 있다
2004년 9월 22일 예산군 농민들이 벼수확 포기를 선언하고 볏단을 군청 현관에 반납하고 있다 ⓒ 이정희
그 분도 이 마을에 혼자 사는 이다. 자연스럽게 아침 방송에 나온 최아무개 할머니 이야기와 가족 해체의 세태에 대한 말이 오갔다. 김씨나 노씨는 늙을수록 부부가 해로해야 된다면서 이런 세태에 오래 사는 것은 오히려 욕이라고 했다.

그분들이 간 후 오랜만에 9시 뉴스를 봤더니 쌀 개방에 분노한 농사꾼들이 트랙터로 추수할 벼논을 갈아엎고, 볏단을 차에다 싣고는 군청에 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벼를 사과박스에 담아 청와대로 보낸다고 야단이었다.

또 다른 뉴스는 굴비상자에 억대 뇌물을 담았다는 것과 부패정치 이야기였다. 여태 정치인들이 지난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억대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바, 국회윤리위원회에서는 어물쩍 면죄부를 주었다고 한다.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바르고 깨끗한 정치를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대하는 게 낫지 않을까?

100여 년 전, 농사꾼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났을 때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때 나라는 어떻게 되었는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에는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된다고 한다. 외세에 빌붙은 이들과 탐관오리들을 솎아내지 않는 한, 반 토막난 나라가 또 다시 결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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