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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이 생산라인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불법파견 노동자는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 단지 가슴에 패용하고 있는 명찰만 다를 뿐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이 생산라인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불법파견 노동자는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 단지 가슴에 패용하고 있는 명찰만 다를 뿐이다. ⓒ 권우성
현대자동차의 오랜 불법파견 관행이 사라질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 울산·아산공장의 21개 하청업체 직원 가운데 현장 노동자 대부분이 불법 파견인 것으로 21일 노동부에 의해 확인되면서 현대차 노조를 비롯한 노동계가 들썩이고 있다.

노동부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은 최근 노동계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비정규직 입법안과 맞물려 거센 상승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문에 올 하반기 노동계 최대 쟁점 사안으로 이 문제가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3일 현재 현대자동차 노조는 노동부의 결정을 계기로 울산·아산 공장에 만연한 불법파견 및 비정규직 양산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기에 금속연맹 등 상급 노동단체들도 적극 협조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불법파견을 중심으로 한 노-사간 대치전선에, 비정규직 입법화를 둘러싼 노-정간의 대치전선을 보태, 비정규직 입법화 저지투쟁과 직결시키는 등 다차원적 대립구도로 이 국면을 타개할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과의 연대를 전제로 한 방식이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이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오랜 숙원을 해결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반면, 사쪽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와 노조 모두에 불만이다. 파견근로라는 보편적 고용관행을 무시한 노동부나, 이를 계기로 대규모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노조나 다들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대차는 일단 적당한 선에서 타협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적정규모의 정규직화와 적정규모의 비정규직화'라는 타협전략을 통해 사태의 확산을 진정시키겠다는 판단을 세우고 있다. 다만 노동계의 반발 등을 우려해 일부 불법파견 인원을 해고한다든가 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동부는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의 자율성은 충분히 인정하는 선에서 불법파견 문제가 해소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불법파견 노동자를 전부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은 "법 원칙과는 다르다"며 일단 물리치면서도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털고' 직접고용하는 쪽으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수출용 승용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수출용 승용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불법파견노동자 정규직화가 유일 대안...파업도 검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현대차 노조의 입장은 단호하고 명쾌하다. 명백한 불법파견임이 정부에 의해 확인된 이상 반드시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성취해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급단체인 금속연맹과 오는 10월초부터 공동투쟁 방안을 마련하고 기자회견까지 가질 계획이다. 이미 금속연맹, 비정규직노조, 현대차 노조 등을 결합한 연대회의도 결성한 상태다.

김영섭 현대차 노조 비정규직 부장은 "대외적으로는 파견법 확대 입법안과 불법파견 판정 엮어 상급단체 등과 공동 투쟁하기로 했고, 내부로는 대의원들에게 지침을 내린 뒤 현장의 조직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노조는 만약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회사쪽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파업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사쪽이 좀처럼 양보안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조 "개선계획서 제출 요구는 노동부가 자본에 결탁하는 모습"

김 부장은 "사쪽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뽑아서 정규직으로 일하도록 했어야 함에도 불법으로 고용해왔기 때문에 정규직화 요구는 당연하다"면서 "회사가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총파업으로라도 돌파할 필요가 있다"고 못박았다.

현대차 노조는 노동부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토해냈다. 노동부의 이번 시정명령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판단에서다. 김영섭 부장은 노동부를 향해 "주관적 판단도 못 내리고 자본에 결탁하는 형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최근 노동부는 공청회에서 불법파견이 사실로 드러나면 직접고용을 하도록 명령을 내리겠다고 해놓고선 지금와서 개선계획서를 받도록 하겠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정부의 재벌봐주기 경향을 질타했다.

사쪽, 사회적 분위기·노조 요구 등 종합 검토...적정선 타협으로 정리할 듯

[현대자동차] 노동부와 노조의 협공에 현대차 사쪽은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대로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화 할 경우 1000여억원에 달하는 비용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불법으로 판정을 내린 노동부의 개선계획서 요구와 관련해서도 "미국, 독일, 일본도 이 정도의 유연성은 보편화 돼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만약 노조의 요구대로 모두를 정규화하면 수출이 죽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노동법상 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세계 어느나라 자동차 회사도 이런 근로형태는 다 가지고 있다"며 노동부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경쟁국 고용사례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나름의 해법을 내놓을 방침이다. 노조의 요구도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겠다고도 했다. 물론 전적으로 수용하지도 않을 계획이다. 노조의 요구, 사회적 분위기, 노동부의 명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타협안을 제시한다는 내부 방침이 대략 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회사쪽으로서야 100% 무시하며 버티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며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보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인식 등을 고려할 때 "무작정 불을 당길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좋은 선에서 타협을 보지 않겠느냐"고 결과를 어느 정도 낙관했다.

이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노조도 비정규직의 전적인 정규직화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이 관계자는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규모로 정규직화 된다고 가정할 때, 수출 실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정규직 자신들이 해고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최소 인원만 정규직으로 유지하고 부족인원은 파견근로 쪽으로 운영하는 것을 노조도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 권우성
"적법 파견으로 바꾸든지, 정규직화 하든지, 기간제로 쓰든지"

[노동부] 노동부는 현대차가 조속히 위법 부분을 시정하는 결단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불법파견의 해소는 해당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을 취하거나 적법파견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오는 10월 18일까지 개선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한다는 것이 노동의 공식 방침이다.

그렇다고 직접고용이 비정규직의 전면적인 정규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장화익 비정규직 대책과장은 "현대차는 적법파견이나 적법도급으로 바꾸던지, 그리고 파견에 적합한 운영이었으면 파견으로 적법하게 바꾸던지 아니면 직접사용을 하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과장은 "파견근로는 일시적 간헐적으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그런 부분이 있다면 일시적 간헐적으로만 쓰면 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바꾸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직접고용이라고 해서 전적인 정규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 한 뒤 "정규직화 하거나 기간제 즉 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면 위법 사항은 해소된다"고 말했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모두 정규직화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의 관계에 의해 적정한 선에서 정리가 되지 않겠나 생각된다"고 예상했다.

비정규직 문제 전문가 "상시적 일자리엔 상시적 노동자 고용이 대안"

이 전문가는 특히 '기간제(계약직)로 고용해도 불법파견은 해소된다'는 노동부의 주장에 대해 "노동부가 비정규직 법안을 통해 바꾸려는 논리로 보면 그런 주장이 성립할 지는 몰라도 결국 상시고용이 필요한 일자리에 여전히 일시적으로만 사람을 쓰는 것 아니냐"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전문가는 또 이번 노동부의 판정에 대해서도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파견법 확대를 뼈대로 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과 결부돼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한편으로는 불법파견 사례를 엄단하고 한편으로는 합법적 파견근로의 확대를 권장함으로써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을 씻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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