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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루지 못한 여인들의 사랑의 아픔이 깊은 탓인가, 서호의 능수버들 그늘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 김정은
항저우의 명물 서호는 뭐니뭐니해도 여인들의 호수이다. 오나라를 망하게 만든 경국지색 서시를 비롯하여, 중화권에서 대표미인으로 꼽히는 왕조현과 장만옥이 농밀한 아름다움을 뽐냈던 영화 <청사>의 모티브인 <백사전>의 백소정과 소청, 그리고 서극이 감독한 영화 <양축>의 소재인 <양산백과 축영대>의 여주인공 축영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이곳 서호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 고이 간직해둔 산수화 족자 한폭을 아버지 몰래 펼쳐보았을 때 손끝으로부터 전해오던 은밀한 짜릿함, 서호에 대한 나의 첫느낌이었다.
ⓒ 김정은
서호의 능수버들 그림자가 그토록 짙은 이유는 바로 이루지 못한 여인들의 사랑의 아픔이 더욱 깊은 탓이겠지. 비록 버드나무 그늘에 아픔을 묻었지만 이 서호를 배경으로 한 네 여인의 삶과 사랑은 철마다 달라지는 서호의 물 색깔만큼이나 천차만별이었다. 각양각색의 삶을 살다간 그녀들의 행적을 뒤쫒아 보리라 작정하고 유람선에 올랐다.

햇살은 뜨겁지만 외부인에게 은밀한 속살을 보여주기를 꺼리는 여인네처럼 서호는 안개 속에 젖어 있었다.

▲ 옅은 안개 낀 고요한 호수에 능수버들의 짙은 그림자가 깊어지면 서호는 깨어난다.
ⓒ 김정은
경국지색 서시, 이중간첩의 사랑

물빛이 반짝반짝하니 맑은 모습 좋고
산색이 희뿌여니 비 또한 기이하다
서호를 서시와 비교한다면
단아하고 화장 짙은 치장이 서로 어울리네

飮湖上初晴後雨/소동파


일찍이 서호를 사랑했던 시인 소동파는 이 시에서처럼 서호의 아름다움을 월나라 미인 서시에 비교했다. 항저우는 춘추시대 당시 월나라의 수도로서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경국지색(傾國之色) 등 숱한 고사가 쏟아져 나온 곳이기도 하다.

원래 항저우가 고향인 서시는 천하 제일의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지만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 구천이 볼모로 잡히자 구천의 참모 범려가 미인계로 오왕 부차에게 바친 이중간첩이었다.

서시의 희생으로 인해 월왕 구천은 풀려나게 되고 이후 구천은 패전의 치욕을 새기고, 복수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 매일 마른 장작더미 위에서 자고(臥薪), 매일 동물 쓸개의 쓴 맛을 보는(嘗膽) 노력으로 국력을 착실히 재건하고 있었다. 오왕 부차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서시 또한 부차의 오른팔인 오자서와 부차와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서로 의심하게 만드는 이중간첩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결국 오나라는 월왕 구천에 의해 함락되었고, 사랑하는 애인 범려를 위해 이중간첩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서시는 범려와 함께 쓰저우 서쪽의 태호(太湖) 옆에 정원을 짓고 행복하게 남은 여생을 누렸다고 한다.

비록 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미인(傾國之色)이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듣는 서시이지만 이중간첩을 했던 여자의 삶이 대개 비극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서시는 사랑하는 정인 범려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한 드믄 케이스이다.

그녀의 말년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누구보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그녀의 사랑의 색깔은 바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조국 월나라를 위한 사랑이고 두 번째는 범려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의 두 가지 사랑 중 어떤 사랑의 색깔이 더 짙은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혹시 저 유유히 흘러가는 서호의 물은 알고 있을까? 소동파가 서시와 비교하여 서자호라 불렀던 서호의 물결은 대답없이 2400여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묵묵히 흘러가고 있었다.

뇌봉탑과 영화 <청사>

▲ 저 멀리 우뚝 서있는 뇌봉탑이 보인다. 뇌봉탑(雷峰塔)에 비치는 석양(雷峰夕照)의 아름다움은 서호 10경중 하나이다.
ⓒ 김정은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제법 큰 탑 하나가 보인다. 바로 백사전의 전설이 어린 뇌봉탑이다. 뇌봉탑(雷峰塔)에서 비치는 석양(雷峰夕照)의 아름다움은 서호 10경에 속할 만큼 유명하다지만 내 머리 속엔 오로지 홍콩영화 <청사>를 봤을 때 인상적이었던 흰구렁이 왕조현의 촉촉한 눈빛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그녀들의 요염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동양적인 신비감이 가득한 여성미에 취해 며칠 동안 헤어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뇌봉탑은 <백사전>의 주인공 백구렁이 백소정이 금산사 주지 법해에 의해 갇혔다는 전설의 탑으로 유명하다. 청명절에 서호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다가 마침 배안에서 만난 서생 허선과 첫눈이 맞아 함께 살게 된 백구렁이 백소정은 선행을 베풀며 도를 닦다가 급기야 허선의 혈육을 낳게 된다. 그러나 선악의 구별이 철저한 법해 스님은 그녀를 요물이라 단정짓고 해산 후 힘이 빠진 백소정을 뇌봉탑 아래에 가두어 두었다. 백소정의 시녀 청구렁이 소청은 후에 도를 더 닦아 법해와 다시 겨뤄 뇌봉탑에 갇힌 백소정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미호처럼 인간 흉내를 내는 미물은 모두 악이요, 불교는 선이라는 일반론이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물음은 영화 속 혼란에 빠진 법해 스님의 모습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오로지 인간이 되고자 뛰어난 능력을 감춘 채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수동적인 여인 백소정과 사랑의 허망함을 일찍 깨달은 나머지 사랑보다 도를 택한 여인 소청.

같은 구렁이이면서도 정반대의 길을 가는 여성들. 어쩌면 왕조현이 연기한 백소정은 남성들의 환타지 속에만 살아 숨쉬는 아름답고 순종적인 이상형일지 모른다. 오히려 정반대의 선택을 한 소청의 삶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너무나 맹목적이어서 더욱 열정적으로 보이는 백소정의 사랑은 충분히 자극적이고 중독적임에는 틀림없다.

장교와 영화 <양축>

▲ 양산백과 축영대가 이별을 했다는 장교
ⓒ 김정은
면적 5.6㎢, 둘레 15㎞, 평균 수심 1.8m로 그리 깊지 않은 자연호수 서호, 뇌봉탑을 뒤로 한 채 얼마 쯤 가다보니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장교라는 이름의 이 다리는 바로 홍콩영화 <양축>의 주인공 양산백과 축영대가 안타까운 이별을 했던 다리이다.

절강성 상우현의 처녀 축영대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서원에서 받아주지 않자 몰래 남장을 하고 항주의 만송서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서생 양산백과 함께 동문수학하다가 서로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공부를 마친 축영대가 먼저 고향에 돌아간다. 2년 후 양산백은 축영대를 찾아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청혼을 하지만 축영대는 이미 마씨의 아들과 혼인을 약속한 상태였다.

양산백과 축영대는 후일을 기약하며 이 서호의 장교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하였다. 양산백은 장원급제하여 무현 현령이 되었으나 축영대가 마씨와 결혼날짜를 정한 것을 알고 낙심하다가 병이 걸려 사망하여 무현 현성의 서쪽에 묻힌다.

축영대가 마씨에게 시집가는 날, 마침 배가 양산백의 묘 근처를 지나가는데 풍랑이 일어 배가 나아가지 못했다. 이곳이 양산백의 묘소라는 말을 듣고 축영대가 통곡을 하니 무덤이 갈라졌고 축영대가 뛰어들어 함께 묻히게 되었다.

동성애로 알고 은밀한 감정을 숨기다가 서로 이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꽃 피운 남녀의 사랑이, 채 피지도 못한 채 후일을 기약하며 불안하고 안타까운 이별을 하던 곳. 지금 눈 앞의 장교를 바라보며 또 다시 영화 <양축>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시대배경도 청나라로 바뀌고 만송서원도 성희학교로, 축영대가 시집 보내려 했던 마씨가문도 쟁쟁한 세도가로 바뀌긴 했지만 큰 뼈대는 그대로이다.

그러고 보면 축영대는 매우 도전적인 여인임에 틀림없다. 여인을 받아주지 않는 서원의 규정을 피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입학하는 것이나 사랑을 위해 무덤 속으로 뛰어드는 그 열정은 백구렁이 백소정의 맹목적인 사랑만큼이나 극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구렁이와 인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백사전>과는 달리, 신분제도와 가족제도, 남성우월사상과 동성애 등 보다 복잡한 코드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영화 <양축>에서 축영대 역할을 한 배우 양채니는 <청사>의 왕조현과 장만옥의 농염한 여성적인 매력과는 달리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중성적인 매력이 강조되고 있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이중간첩 역할을 한 서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인간을 사랑해서 우여곡절 끝에 인간의 아이를 낳은 백소정, 학문을 배우려고 남장까지 했던 적극적인 여인이지만 끝내 죽은 정인을 따라가겠다며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 끝내 열녀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지 못한 축영대.

이 세 여인의 사랑은 더할 나위없이 진실했지만 유감스럽게 그 사랑은 맹목적이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랑이라서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허무함을 깨닫고 사랑과 더욱 멀어져버린 소청의 선택이 더 바람직했을까?

시간이 좀더 지나 또 다른 사랑이야기가 이곳 서호에서 싹틀지 모르지만 만약 새로운 사랑이야기가 전개된다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보다 평등하고 합리적인 사랑이야기가 꽃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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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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