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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독립을 위해 고민하는 한 인간의 심리를 내밀하게 그려낸 <연애얘기아님>은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초연인 만큼 연출자와 배우 모두 설렘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관객들을 만났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많았을 첫 번째 공연을 마친 지난 22일 <연애얘기아님>의 작가 겸 연출자 최진아씨와 주인공 선희 역의 백지원씨를 만났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떠올린 선희와 연기자가 상상한 선희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 오른 선희는 작가에게도, 연기자에게도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실재할 수 있는 곳이 또한 무대가 아닌가 한다.

- 초연을 마친 소감은?
백지원(이하 백): "예상치 않은 부분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커서 재밌었다."
최진아(이하 최): "관객들이 간간이 웃어서 좋았다. 나는 어떤 형태든 관객이 웃는 것이 제일 좋다. 작품을 쓸 때는 관객들의 반응을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직접 보니 조금은 안심도 되더라."

<연애얘기아님>은 왜 연애 얘기가 아닌가

▲ <연애얘기아님>의 연출자 최진아씨
ⓒ 젠더 크리에이티브
- 제목이 독특한데 어떤 의미가 있나?
백: "<연애얘기아님>은 연애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선희는 연애를 하면서 위로를 받지만 침식되어 가는 자아를 인식한 다음에는 혼란을 느끼며 그 관계를 떼어내고자 한다.

엄밀히 말하면 사랑을 거부하면서 홀로 서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힘으로 그 사랑을 밟고 성장하는 것이다. 단순히 연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통해 얻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그려내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 이야기면서 연애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최: "진한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선희의 감성과 갈등이다. 그래서 연애 얘기가 아니다."

- 최진아씨의 경우 작품도 쓰고 연출도 맡았는데 어떻게 이 작품을 시작하고 또 진행하게 되었나?
최: "쓰기 시작한 것은 5월부터이고 8월부터 본격적으로 팀을 짜고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인물 분석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서 초고보다는 훨씬 나은 작품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칭찬을 받는다면 그건 우리 팀원들의 힘이다.

보통 주인공은 매력적이다. 신념이 강하거나 외모가 아름답다거나…. 그런데 그렇게 드러나지 않고 묻혀 지내는 사람들도 엄청난 자아 에너지를 내면에 간직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또한 사람들은 여자는 사랑만 충족되면 다 되는 것으로 쉽게 오해한다. 물론 사랑은 달콤하다. 그러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많다. 자아나 존재 같은 것. 고독 속에서 만나는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했다."

작가 겸 연출가 최진아는 누구?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2002)
·배우에서 조연출, 조연출에서 연출로 변신을 거듭. 변신에 대한 그의 변을 들어보면 "배우는 누가 시켜줘야 한다. 나는 내가 하고싶은 역할에 잘 캐스팅안되더라. 대학로에서 배우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행위다. 그리고 연출은 내 시간을 주도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어떻든 연극에서 가장 멋진 것은 배우다!"
·2인극 페스티벌 <담담담>(2000), <내 마음의 옥탑방>(2000), <매직룸>(2004) 그리고 <연애얘기아님>(2004) 연출의 경력을 소유하고 있음. / 송민성 기자
- 이전에는 연출만 맡다 이번에는 작가와 연출의 역할을 함께 했다. 이 작품을 쓰면서도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최: "책임이 더 커졌다. <연애얘기아님>은 큰 사건이 없고, 선희가 그렇다고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것도 아니다.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다. 관객에게 이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가 가장 어려우면서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선희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니다

- 극중에서 선희는 착하고 따뜻한데다 유능하기까지 한 남자친구를 떠나보낸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 "나라면 그러지 않을텐데(웃음). 내 생각과의 차이가 있다보니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많이 좋아하면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실존을 찾기 위해 헤어지진 않을 것 같다. 헤어짐 이외의 방법을 찾을 거다."

최: "선희가 좀더 성숙했더라면 헤어짐 이외의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선희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데 그러기에는 아직 덜 자란 것 같다. 그러니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연애얘기아님>은 이별을 권장하는 연극이 아니다(웃음)."

▲ <연애얘기아님>에서 주인공 선희 역을 맡은 배우 백지원씨
ⓒ 젠더 크리에이티브
- 각자 선희를 그리고 표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을 텐데….
백: "순간 순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예를 들어 후배 직원이 야근하는 건너편 건물 사람들을 보면서 "저기도 야근하네" 그런다. 선희는 "야근하면 야근 수당 나오잖아"라고 대꾸하는 대신 "나랑 일하는 게 불편하냐"고 묻는 사람이다. 그만큼 배려와 양보가 몸에 배어있다. 석영에게도 왜 나왔냐고 묻는데 진짜 묻는 거다. 헤어졌는데 이 사람이 정말 왜 나왔을까, 하고."

최: "이 여자의 고통이 이별이라는 직접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을 표현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갈등은 심각하고 어두워도 선희의 삶은 생동감이 넘치길 바랬다. 일상의 생기와 내면의 고통이 대조를 이룰 수 있도록 깊은 고통을 많이 고민하려고 했다."

주인공 백지원은 누구?

․경희대 원예학과 졸업(1996). 원예학과에서 연극인으로? 그는 짤막하게 답한다. 그저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하고싶었노라”고.

․졸업하면서부터 연극을 시작해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97)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2004)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 / 송민성 기자
- 각자가 떠올리고 규정하는 선희 역시 다를 것같다.
백: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타자 혹은 사랑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홀로 서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린 사람이다. 물론 나중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삶으로 전환되는 가능성을 보이곤 있지만."

최: "내가 생각하는 선희는 오히려 자기가 너무 많은 사람이다. 자아에 대한 욕구랄까, 자기 내면에 대한 관심이 깊은 여자다."

"밥값아끼다 팀웍 좋아지는 우스우면서도 슬픈 현실"

- 지원씨도 말했지만 극 결말의 선희는 그 이전의 선희와는 약간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러한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또한 자신들이 바라는 선희의 변화는 어떤 것인가?
백: "후반부의 선희는 배려나 양보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 배려와 양보를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쳐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한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이 자신에게 생채기가 된다면 그건 좋지 않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돌파구 같은 것 아닐까?

나는 선희가 좀더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무조건 상처만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한번은 걸러내어 그 상처를 컨트롤할 수 있는 즐겁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길 기대한다."

최: "이 여자는 자기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을 배려하는 데 급급한 너무도 심약한 사람이다. 극 결말이 보여주듯 자신을 위한 휴식을 하루쯤은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젠더 크리에이티브
- 첫 번째 공연인 만큼 아쉬움도 많겠지만 앞으로 몇 차례 공연이 더 남았다.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싶은가?
백: "장면간의 전환이 미흡했다.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

최: "집중할 것은 더 집중하고, 흘러갈 것은 또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걸 세밀하게 잡아내는 것은 내 몫이지 않은가 한다."

- 페스티벌이 끝난 후 <연애얘기아님>의 공연 계획이 있다면?
최: "아직 없다. 배우들도 겨우 교통비 수준의 돈을 받고 작품에 참여한다. 밥값 아끼려고 밥을 해먹어가면서 하느라 팀웍 하나는 정말 좋아졌다(웃음). 정작 연습시간을 많이 빼앗기기도 하는데 우스우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지원을 받지 않는 한은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는 미정이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 혹은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백: "재밌는 연극의 즐거운 역할을 하고싶다."

최: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주 야한 연극으로. 또 다른 건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치가 들어가거나 눈에 보이는 권력 말고 친밀한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미묘한 권력을 다루어보고 싶다. 살다보면 그런 권력을 순간 순간 느끼는데 그런 느낌들을 재미나게 그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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