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앞둔 24일 낮 12시, 심상정 의원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최근 홍세화 기획위원이 "후원회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수락하자 심 의원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심 의원이 "무리한 요청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당성도 확실하고 모든 사람에게 어깨를 내어주시는 홍 선생님을 후원회장으로 모시게 됐다"며 말을 꺼내자 홍 위원은 "능력이 안 되서 그렇지 시간이 되는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보였다.
또한 심 의원은 "가장 원칙적으로 후원회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며 "후원하는 사람들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정책후원'도 받았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홍 위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라고 답했고, 심 의원은 "(후원회원들도) 다 아시는 분들일텐데, 가끔씩 오셔서 격려해달라"고 말했다.
"공부 늘었지만 소신 부족한 17대 국회"
그러나 이날 만남에서 후원회에 대한 전략회의는 길지 않았고, 정작 주된 화제로 떠오른 것은 심상정 의원의 '국회의원 체험기'였다.
심 의원은 "국회에 와서보니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일의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며 "노조할 때는 처음부터 (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소화하고 기획부터 개입했는데, 여기는 대부분 모르면서 아는 척 할 게 많아 처음에는 심리적응이 안 됐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공부하기 어려운 분야로 '금융'을 꼽으며 "내가 주식을 사봤냐, 적금을 들어봤냐"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심 의원이 다른 당 의원에게 "재경위도 하고 운영위도 하느라 힘들어 죽겠다"고 하니까 그 의원이 정색을 하면서 "다 모르고 하는 거고, 그냥 훌륭한 보좌관들을 믿고 (의견을) 발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심상정 의원은 "그래도 17대는 많이 달라졌다, 의원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고 평가했다. 옆에 있던 보좌관이 "국회 정책전문위원이나 입법조사관들이 달라졌다는데, 그래도 민주노동당이 제일 열심히 한다더라"고 말을 거들었다.
심 의원에 따르면, 어떤 한나라당 의원은 "의원들이 어디 움직이면 다 돈인데 17대 국회에서 돈을 쓸 수가 없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석했다고 한다. 홍세화 위원은 "잘 된 일이다, 그런데 공부하면 (보수정당 의원들이) 바뀌냐"고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 의원은 17대 국회에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심 의원은 "초선 의원들도 소신이 많더니 자꾸 상황논리만 남는다"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특소세 인하 문제를 예로 들며 "(국회에서) 경제 토론하고 나면 공허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폐지 품목인) PDP TV는 대중화가 안 됐다"고 주장하면 다른 당 의원들이 "결국 삼성과 소니의 싸움인데, (삼성을) 밀어줘야 하지 않겠냐"고 '로비의 속사정'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노동당도 번번이 다른 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지층을 생각할 때 안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가면 안내 좀..." "지역구에서 출마하셔야"
사실 심상정 의원과 홍세화 기획위원은 서로 오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홍 위원은 프랑스에서 고국의 노동운동 소식을 접하며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심 의원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으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던 두 사람은 지난해 <한겨레> '마주보기'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 만났다. 당시 인터뷰의 주제는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였고, 당시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이었던 심 의원은 홍 위원을 만나자마자 "왜 이런 주제의 인터뷰에 나를 불렀냐"고 물었다.
홍 위원은 이에 "난 79년에 프랑스에 갔는데, 심 처장이 내가 잃어버린 20년의 공백을 가장 잘 꿰뚫고 있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 의원도 자신이 현장에 뛰어들었던 80년대 이전의 노동운동사를 홍 위원을 통해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서로가 '공백을 메꾸어주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서로 다른 시대에 한국의 진보운동을 끌어간 두 사람이지만 사회를 보는 눈은 같았다. 심 의원은 "당시 인터뷰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너무 비슷한 나머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홍 위원이 질문에서 다 해버렸다"는 설명이다.
이날 심상정 의원과 홍세화 기획위원은 즉석에서 '프랑스 여행'을 논의하기도 했다. 심 의원이 농반 진반으로 "프랑스 가면 안내해달라"고 말을 건넨 것이다.
홍 위원은 "그 쪽에선 (운전면허로) 9인승까지 운전할 수 있는데, 나중에 세상이 좀 나아지면 고생하시는 분들을 모셔서 구경시켜드리고 싶다"고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옆에 있던 보좌관들도 "지금부터 계를 붓자"고 말하며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심상정 의원의 프랑스 여행은 수년 뒤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 위원은 "4년 뒤에 지역구에서 또 출마하고, (국회의원) 계속해야 하지 않겠냐"며 심 의원에게 지속적인 의정활동을 주문했다.
앞으로 '홍세화 후원회장'의 활동은 주로 노조원, 당원 행사 참석이 될 예정이다. 심 의원이 주된 후원회원을 노조원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홍 위원은 "시간이 나는 대로 참석하겠다"며 "미리 알려만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