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주택공사가 극심한 경기침체와 입주민들의 반발을 고려, 지난 21일 주공 임대아파트의 임대료와 보증금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이 정책으로 인해 혜택을 받는 가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입주민들로부터 제기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주공은 지난 21일 보도자료에서 경기침체 여파에 따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대주택입주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고 정부의 물가안정 및 저소득층 지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임대료와 보증금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주변 시세대비 90% 이상인 공공임대주택은 임대료를 동결하고, 주변시세대비 80% 이상은 공공임대주택은 지구별 여건에 따라 인상률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국민임대주택의 경우도 전용 15평 미만은 시세대비 70% 이상일 경우, 15평 이상은 시세대비 80% 이상일 경우에만 동결을 하겠다고 했다. 이 방안이 오는 10월부터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되면 27만여 임대주택거주자 중 44% 정도가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주공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임대아파트를 주변시가와 비교하기 위한 주공의 전세가 산정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월세 환산율 12% 적용... 수도권 입주민들 "수혜가구 거의 없다"
당장 입주민들이 동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의 전세가를 산정해 주변시세와 비교를 해야 하는데 주공과 입주민의 산정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환산율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통상 보증금부 임대아파트의 전세가를 산정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산정방정식을 활용한다.
전세금 = [(월 임대료 × 12개월) / 월세환산율] + 보증금.
주공 쪽은 월세환산율을 12%로 적용하고 있는 반면, 입주민들은 국민은행의 근로자·서민전세자금대출 금리인 5.5%를 적용하고 있다. 만약 주공의 방식대로 12%를 적용하게 되면 전세가가 턱없이 낮아져 주변시세대비 80∼90%에 미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임대료 동결 혜택도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2004년 현재 남양주 청학 주공 임대아파트 32평(전용면적 25평)의 보증금은 5292만원에 월임대료는 14만3320원. 이 임대아파트를 주공의 산식에 따라 전세가로 환산하면 6722만원. 현재 유사 평수의 아파트 전세가가 8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이 아파트의 전세가는 주변시세의 84%에 해당돼 동결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입주민들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대출 금리인 5.5% 적용해야
하지만 환산율을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대출 금리인 5.5%를 적용할 경우 전세가는 8412만원이 되면서 시세대비 90%를 초과하게 돼 임대료 동결의 수혜대상이 된다. 일반적인 주택전세자금 대출 금리 8∼9%를 적용하더라도 수혜 가구수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환산율 12% 적용으로 동결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전국에 걸쳐 부지기수라는 것이 입주민들의 주장이다.
주공쪽은 환산율로 12%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 수준이 결코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주공 경기지사의 한 관계자는 "시중과 차이는 있겠지만 월 1% 정도면 그렇게 높지는 않다"며 12% 적용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건설교통부도 환산율 12% 적용 근거에 대해 지난 4월 "전·월세 전환이율은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조사' 중 2004년 2월 월세이율 1.05%를 기초로 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12%는 지나치게 높다"며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동결 혜택을 볼 주민들은 지방의 소수 입주민들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 입주민 연대회의 "수도권 입주민 중 동결혜택받는 곳 한 곳도 없다"
주공임대아파트 수도권 연대회의는 지난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임대료의 보증금 환산이율을 시중금리보다 휠씬 높은 12%로 할 경우 시세에 비해 아주 낮은 가격으로 나타나 현실적인 대비가 전혀 되지 않는다"면서 "공기업이 여론을 호도하고 엄청난 이윤추구에 급급해 임대아파트 서민을 상대로 한 몫 잡자는 심보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연대회의는 "헐값에 토지를 수용해 건설한 임대아파트를 일반분양 한 아파트의 시세와 비교하고, 고이율로 환산해 마치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거주하는 양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연대회의의 한 관계자는 "주공의 이번 조치로 주공 임대아파트 가운데 혜택을 받는 수도권 입주민은 한 곳도 없다"면서 "부동산 가격이 그나마 안정된 지방 임대아파트만 동결 수혜를 받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한 계산법으로 계산한다면 고이율의 임대료를 낼 자가 어디 있겠느냐"며 "차라리 전세로 돌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은행대출이자가 훨씬 싼 데 누가 월세를 주고 살겠느냐"는 주장이었다.
주공 쪽도 수혜를 받는 거주민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주공 경기지사의 한 관계자는 '동결 혜택을 보는 입주민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얼마나 혜택을 볼 지는 아직 미지수"라며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동의했다. 그는 그래도 "1∼2%라도 인하 혜택을 보지 않겠느냐"며 인상률 인하 혜택은 그나마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심상정·조승수 민노당 의원,일 강동석 장관 만나 대책마련 요구
이 관계자는 "주민들이 자꾸 비싸다고만 하는데 주공이 싸다는 것을 설명을 해도 주민들이 의심을 가지고 있어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오히려 입주민들의 태도가 불만이라는 식이었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노동당도 주공의 이러한 산정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IMF를 전후해 2부 이자를 적용하다가 이것보다 낮게 받는다는 명분으로 12%를 주공이 적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금리가 4%대로 떨어져 입주민들이 그때보다 엄청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주공은 조정해 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심상정,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24일 강동석 건교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오는 10월 10일까지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결과가 주목된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주공 임대아파트의 5% 자동인상 약관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입주민들의 임대료 체납율 증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