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물루스 황제는 하루종일 별장에 처박혀서 닭 키우기에만 열중하는 '무능력한' 왕이다. 옛 황제의 이름을 붙인 닭을 보살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과이며, 어느 닭이 알을 가장 잘 낳는지 묻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게르만족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가지고 온 기병대장에게는 막무가내로 쉴 것을 종용하고, 로마의 사상가와 정치가의 흉상들은 헐값에 모조리 팔아버린다. 그는 도무지 '정치'란 걸 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는 멸망했다. 아마 후대의 역사는 로물루스를 멍청하고 게으른 왕으로 (모든 마지막 왕들에게 그러하듯) 짤막하게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로물루스 대제>는 그 한 줄의 기록을 깊이있게 파고든다.
사실 로물루스의 '무위(無爲)'는 로마의 멸망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그는 로마의 멸망이 세계사의 흐름이므로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로물루스의 통찰력은 손뼉을 칠 만큼 날카롭다. 이를테면 "국가가 살인을 일삼기 시작할 때부터 조국"이 되며 "조국은 인간보다 더 쉽게 살인자가 될 수 있다"며 딸에게 조국 때문에 사랑을 버리지 말라고 설득하는 대목, 나라가 망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각료에게 "세상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망하는 것"이라고 퉁을 주는 대목 등이 그러하다.
그는 "진실보다 폭력을, 인도보다는 폭정을 취한 로마가 스스로를 반역한 것"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그의 말처럼 그는 "로마의 반역자가 아니라 심판관"인 셈이다.
로물루스는 결코 멍청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 나라의 필연성에 의문을 가질" 만큼 용감하며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칠만큼 따뜻하다. 한 나라의 멸망을 위해 황제 자리에 오를 정도로 야심이 크며 "다른 국가의 피에 대해 로마를 희생하기로 해놓고 나만 죽지않는 것은 부조리"임을 잊지않는 명민한 사람이다.
이런 그가 로마를 멸망시키지 못했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겠는가?
왕관을 내어주고 쓸쓸히 사라지는 로물루스는 그래서 관객들이 그의 선악을 쉽게 구분짓지 못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그는 성찰해볼 만한, 그리고 한 두어 명쯤은 이 나라에 있어도 좋을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부끄러워하고, 그 대가를 스스로의 희생을 통해 치루려는 양심을 갖춘 정치인은 언제나 드물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무력하게 제거당했거나 요란스레 변절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킨 로물루스가 우리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더라면 남의 피를 제물로 감히 '국익'을 논하며 파병을 결정한 무뢰배 협잡꾼들도, 자신의 멸망을 국가의 멸망으로 오독하는 '원로'들도 그렇게 떳떳할 수는 없었으리라.
<로물루스 대제>가 환기하는 것들은 이런 물음과 고민들이다. 가벼운 듯하면서 무겁고, 무거운 듯하면서 우스운 희비극 <로물르스 대제>는 지나간 역사로 보아 넘기자니 현대 우리 모습과 밀접하게 얽혀있고, 오늘날의 이야기로 읽자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독특한 역사극이다.
로물루스 대제 또한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왕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이런 정치인 혹은 사상가 한 명쯤이 아쉬운(그는 극 중에서 "피로 물들은 로마 왕좌"를 직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독특한 인물이다.
이 규정하기 어려운 연극에서 분명한 것은 딱 두 가지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로물루스 대제라는 인물이 던지는 적지않은 물음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그가 던지는 물음들을 두어번은 곱씹을 수 있을 만큼 상영시간이 꽤 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