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 6시는 독일에서 중요한 사회현안과 관련된 시위가 열리는 상징적인 시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1989년 가을, 구동독의 개혁을 요구하는 평화시위가 동독의 라이프찌히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6시에 열렸고, 작년 초 이라크전 반대시위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독일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이런 '전통'을 갖고 있는 월요시위가 지난 8월 초부터 독일 곳곳에서 다시 열리고 있다. 2005년 1월부터 시행되는 연방정부의 새로운 노동시장 정책(하츠 IV)에 대한 반대시위가 독일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8월 시작 이후 8월 말에 10만여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하던 시위열기가 9월이 되면서 다소 주춤한 상황을 보이고 있지만 구동독지역에서는 오히려 시위 참가자가 계속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지의 반응
| | | 하츠 IV 란? | | | | 변화된 사회 환경에서 국가의 사회 복지 기능을 축소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의 거시정책 아젠다 2010에서 경제 노동분야의 개혁정책을 총칭하는 것. 노동시장 정책 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인 패터 하츠(Peter Hartz, 독일자동차회사 폭스바겐 그룹 인력관리 총책임자)의 이름을 따 하츠 IV 정책이라고 불린다.
실업자 보호 정책과 그와 관련된 사회부조 기능을 통합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는 하츠IV 는 독일 건국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사회보장 기능을 축소하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의 체제는 실업자에 대해 최장 32개월간 1차 실업수당(Arbeitslosengeld)을 지급하고, 이후 사회보장 체제(Sozialhilfen)에서 편입하는 체제를 이루고 있는데 바뀌는 제도에서는 1차 실업수당이 최장 1년(55세 이상의 경우 최장 18개월)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후에는 노동능력이 있는 실업자, 장기 실업자는 개혁과 함께 새로 신설된 2차 실업수당(Arbeitslosengeld II) 혜택을 받게 되는데, 자신의 이전 수입에 따라 액수가 결정되는 기존의 1차 실업수당과 2차 실업수당은 고정된 액수를 지급한다.
이에 따라 이 제도가 완전히 정착되는 2006년부터 서독의 경우는 345 유로, 동독의 경우 331 유로(주택 수당은 제외)를 지급받게 되는데 총 430여만명이 이 규정에 해당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체제와 달리 새로운 체제에서는 실업자의 배우자가 직업을 갖고 있을 경우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되는데 이로 인해 50만명이 실업수당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실업자에 대한 혜택은 축소된 반면 내수진작을 위해 연봉 6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낮춤으로 장기실업자, 저소득층 사이에서 이에 대한 강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 강구섭 | | | | |
독일의 각계각층은 지난 4월, 정부의 사회보장 축소를 골자로 한 개혁정책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에 이어 계속되고 있는 이번 시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잔뜩 긴장된 시각으로 주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계에서는 8월 이후 시작된 시위가 9월에 있었던 4개 주의 지방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 시위에 따른 득실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 골몰하기도 했다. 결과는 이미 알려진대로 극우정당의 2개 주에서의 주의회 진출과 집권당인 사민당과 야당인 기민당의 지지율 하(폭)락으로 요약된다.
현지의 주요언론들은 시위열기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구서독지역과 달리 구동독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상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는 등 구동독지역에서의 사태의 추이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부의 개혁정책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구서독 지역과 달리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동독지역에서 뚜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주로 구동독의 역사적 연원, 독일통일 이후의 과정 등의 맥락에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구 동독지역에서 시위참가자가 더 많은 이유
시위가 구 동독지역에서 더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개혁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장기실업자의 비율이 구동독 지역에서 훨씬 높다는 것이 1차적 이유로 제시되기도 한다. 현재 구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평균 19%를 상회하는 등 지역에 따라 구서독지역의 두 배 이상의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잔재로 인해 국가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국가에 의존하는 의식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시에 민주주의를 풍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구동독 지역에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개혁정책으로 인한 피해 우려를 더 심각하게 인식하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서독보다 동독에서 시위가 실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정서가 강하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기도 하는데 이러한 분석은 80년대 이후 서독에서 있었던 반전, 반핵 시위가 실제적인 열매를 산출하는데 실패한 반면, 89년 평화시위가 평화적 독일통일을 이끌어 내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통일 이후 동독인 사이에 누적되었던 불만과 갈등이 이번 시위의 본질적 배경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통일 이후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서독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정서적 패배감에 경제적인 측면까지 가세, 지금까지 누적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개인의 경제적(물질적) 상황은 전체적으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동, 서독의 격차, 임금 격차,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경제의 재건, 이와 맞물린 높은 실업률과 서독으로 인구이탈 등이 시위의 근본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는 새로운 노동시장 정책이 동독지역에 특히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나타났고, 다른 한편으로 극우정당 지지라는 극단적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현상을 접하며 독일사회에서는 구동독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체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것이라는 견해가 점차 지지를 얻고 있다.
하츠IV에 대한 평가
연이은 지방선거에서의 패배와 계속되는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 집권 사민-녹색 연립정부는 개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기존의 정책을 고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새로운 노동시장 정책이 당장 가시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실업자의 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2004년 현재 실업자의 수는 430만명 수준인데 이는 비정규직, 공공근로 등에 해당하는 인원을 제외한 숫자다).
무엇보다 연방정부는 국민에게 왜 개혁이 필요한 것인가를 알리는 일을 소홀히 해 개혁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개혁의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연방정부에서는 현재 20% 가량의 국민이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60% 가량의 국민이 개혁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독일 각계의 반응 또한 대체로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월요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집권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노조연합 또한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문제는 개혁과 함께 동반되는 고통을 얼마나 공평하게 분담하는가'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올해로 15년째를 맞이하는 독일통일의 날(10. 3) 직전 토요일(10. 2) 베를린에서는 독일 전역에서 집결한 200여개의 단체, 7만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만5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하츠IV 반대 시위가 열렸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시위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사라지면서 시위 참가자가 점점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몇몇 참가단체가 행사 참여 중단을 선언하는 등 월요시위는 점차 힘을 잃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무관심, 비협조, 행정적인 미숙 등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새로운 정책에 따른 전환작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실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를 경험했던 구동독인들은 통일과 함께 수년 내 번영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결국 지켜지지 않은)을 한껏 부풀려 놓았던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체제에 대해 극도로 불신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