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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이번 독극물 사건으로 첫 사망자로 기록된 노숙자 전아무개씨가 요구르트를 발견해 마신 벤치.
지난 19일 이번 독극물 사건으로 첫 사망자로 기록된 노숙자 전아무개씨가 요구르트를 발견해 마신 벤치. ⓒ 오마이뉴스 이승욱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다시 시작되는 30일 낮 12시 대구 달성공원(중구 달성동 소재).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이곳은 평소 소일거리를 찾는 노인들 외에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줄을 이으며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발생한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찜찜한 듯 보였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운동삼아 달성공원을 찾는다는 박아무개(72)씨. 박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아무 죄없는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더이상은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으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9일 이후 열흘이 지났지만 경찰 수사는 답보 상태다. '무차별적 테러' 양상을 띄고 있는 요쿠르트 독극물 사건 열흘을 짚어봤다.

[경찰 수사 상황] 지난 19일 전아무개(63)씨의 사망사건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대구 중부경찰서는 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꾸리며 사건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40여명의 형사들을 동원해 사건 현장에서 목격된 용의자들에 대한 탐문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본부는 30일 10만장의 전단지를 제작·배포하고, 범인 검거를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시민들에게는 2000만원의 신고보상금까지 걸어놓고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경찰은 지난 9일 달성공원 내 곰사육장(곰사) 뒷편 토성 위 벤치에 놓여있던 요구르트(65㎖)를 마신 후 식중동을 일으켜 치료를 받았던 김아무개(76)씨가 증언한 인물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당시 김씨는 "50대 남녀가 앉아있다가 떠난 벤치 위에 요구르트 3병이 있어 나눠마셨다"면서 "당시 벤치에 앉아있던 여자가 혼자 나타나 요구르트를 마신 것을 보고 자리를 떴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얼굴이 넓적하고 긴 편이고 키는 160cm 정도의 50대 여성을 찾고 있다. 당시 이 여성은 빨간색 반팔 티셔츠와 검정색 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지난 8월초부터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지점.
대구 달성공원에서 지난 8월초부터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지점. ⓒ 오마이뉴스 이승욱
[현재까지 피해 현황]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 사례는 지난 8월 11일 첫 피해를 포함해 총 7건. 피해자는 모두 1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은 복통이나 구토·설사 증세를 앓다 병원 치료를 받고 완쾌되는 등 큰 피해는 없었지만, 노숙자 전아무개(63)씨는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당시 전씨는 달성공원 내 물개사 뒤 토성 벤치에서 요구르트 3병을 마시고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끝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피해자들이 소량을 마신데 반해 전씨는 다량을 섭취해 사망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달성공원에서 모두 6건이 접수됐지만 대구 두류공원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지난 9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도 최아무개(67·여)씨 등 청소 인부 3명이 요구르트를 마신 뒤 복통을 일으켜 병원에 치료를 받았다.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이후 현재까지는 피해 사례가 추가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경찰 수사로 인해 범인들이 몸을 낮춘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달성공원 뿐만 아니라 두류공원에서도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알려지면서 피해가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도 높다.

[누가·무엇을 위한 행위인가] 경찰은 이번 사건이 공공장소에서 발생했고, 특정인을 겨냥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에 불만을 품은 자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범행에 이용된 요구르트 제품이 특정 회사 제품이 아닌 다수의 업체 제품이 사용된 점에서 제조회사에 대한 불만을 품은 자의 범죄행각으로 보기는 힘들다. 현재까지 관련 업체에 협박성 전화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경찰은 이번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이 지난해초 대구지하철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다수를 겨냥해 벌이는 연쇄 범죄행각으로 보고 있다.

독극물로 사용된 메소밀(Methomyl) 성분은 원예용 살충제로, 주로 진딧물과 담배나방의 방제에 사용하고 치사율도 높은 편이다. 특히 많은 농약 중에서도 희석이 잘되고 무색무취의 메소밀을 이용한 점을 볼 때 범인은 농약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거나 적어도 메소밀을 자주 취급해본 자로 추정되고 있다.

사건이후 공원 곳곳에는 "공원 내 방치음식물을 먹지 맙시다"라는 유인물이 붙었다.
사건이후 공원 곳곳에는 "공원 내 방치음식물을 먹지 맙시다"라는 유인물이 붙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경찰수사 문제 없었나] 요구르트 독극물 사건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경찰의 대응력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단 지난 8월초부터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당시는 피해자들이 단순 식중독 정도로 판단해 사건을 신고하지 않은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9일 달성공원 내 곰사 뒤 벤치에서 70대 할머니들이 집단으로 식중독 증세를 일으켰던 시점에서도 경찰은 적극적인 대응을 보이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주사바늘이 있는 요구르트병을 회수했지만 단순 식중독으로 처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찰과 관계 당국이 적극적인 대응만 했어도 19일 전아무개씨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일 사망사건 후 경찰이 뒤늦게 국과수에 의뢰했지만 1차 간이검사 결과 아무런 독극물도 발견하지 못했다. 2차 정밀 감정이 있은 후인 지난 24일에야 경찰은 잔류 요구르트에서 메소밀 성분을 확인했다. 결국 초동수사가 늦어졌고 피해자들의 증언 외에는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경찰 내외부에서는 또다시 미제사건으로 남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구지역 경찰은 성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에서도 초동수사와 현장 보존 미비 등으로 진상규명을 하지 못한채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긴 오명을 안고 있다.

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수사 내용에 대해선 상세히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탐문 수사외에는 더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경찰의 다른 한 관계자도 "결정적인 단서가 없는 상황인데다 피해자들도 대부분 고령이라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찰로서도 결정적인 제보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또다시 미제사건으로 끝날 우려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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