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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깻잎 위에 메뚜기 한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깊어진 가을만큼 누런 빛이 제법 감도는 깻잎 위에 앉아 있는 녀석이 참 여유로워 보입니다. 녀석의 주위에는 거미줄도, 갈퀴발 곧추세운 사마귀도, 끈끈한 혓바닥 길게 뻗어 낼름 삼키려는 개구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뚜기 잡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덥썩' 녀석을 잡았습니다. 어릴 때는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 꿰고 다니거나 빈 병을 들고 다니며 잡아 넣었습니다. 그렇게 잡은 메뚜기를 간장 넣고 볶으면 맛있는 찬거리가 되었습니다. 먹다 보면 까칠까칠한 메뚜기 뒷다리가 목에 걸려 캑캑거리기도 했지만 금방 잡아 볶은 메뚜기의 짭쪼름하고 고소한 맛은 정말 일품입니다.

ⓒ 이기원
방심하고 있다 저에게 잡힌 녀석은 도망가려고 버둥댑니다. 두 다리가 잡힌 채로 연신 남은 다리를 휘저어 보지만 소용없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버둥대는 녀석의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녀석의 거동을 한동안 지켜보다 손가락을 풀었습니다. 녀석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풀쩍 뛰어 깨밭으로 사라졌습니다.

ⓒ 이기원
황금 물결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여든여덟 번 허리를 굽혀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벼가 한껏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풍년이라고 해도 봄부터 가을까지 굽히고 또 굽혀 힘든 노동을 마다 않던 농부들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닙니다. 쌀 수입 개방의 파고가 농민들의 지친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기원
논두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잠자리가 손가락에 앉았습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맹랑한 녀석입니다.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종을 다 멸종시켜도 아랑곳하지 않는 게 인간이란 걸 녀석은 알지 못합니다.

잠자리 녀석이 오른손에 앉은 탓에 왼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녀석이 날아갈까 조심하며 찍는 사진이 제대로 일 리 없습니다.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 그럴듯하게 찍힌 게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녀석은 이런 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을 더 앉아 있었습니다.

ⓒ 이기원
가지잎 위에 기름방개(섬서구 메뚜기)가 앉아 있습니다. 작고 뭉툭하게 생긴 녀석은 재주가 없습니다. 메뚜기처럼 빠르게 뛰거나 날지도 못하고 방아개비처럼 날씬한 몸도 아니고 사람 손에 잡혀 방아도 찧을 줄 모릅니다. 느린 몸으로 엉금대며 기는 녀석은 걸음마 배우는 아이에게도 쉽게 잡힙니다.

재주 없고 느리기만한 녀석이지만 사람들은 기름방개를 잡지 않습니다. 메뚜기며 방아개비에 비해 맛이 없는지라 사람들은 녀석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메뚜기 잡으려다 실수로 기름방개가 잡혀도 그냥 놓아주기 일쑤입니다.

높이 뛰거나 날지도 못하는 녀석이라 허공을 가르고 있는 거미줄에 걸릴 일도 없습니다. 그게 바로 녀석이 생존하는 기막힌 재주입니다. 재주도 없고 느리기만 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인간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지요. 어리석은 인간들의 편향된 잣대와 기준만으로 자연의 오묘함을 설명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농촌의 들녘이 정겨운 이유는 다양한 생명체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고 힘은 없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생명체의 숨결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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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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