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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표지
ⓒ 김서정
추석이면 누구나 가족을 떠올리고 고향을 찾아간다. 아린 기억도 있을 것이고, 즐거운 추억도 있는 고향. 그 고향이 더욱 가슴 저미게 찾아오는 때가 아마 추석이나 설이다.

여느 때 같으면 자신의 일상을 이어나가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지만 나라에서 강제적으로(?) 규정한 휴일이라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가족과 고향을 잃은 사람은 가슴 속에 드는 황망한 바람에 우울해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여전히 가족과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천천히 되돌아볼 것이다. 무엇이 떠오르든지 간에 말이다.

여기 33세의 아비가 12살 유년의 기억을 오롯이 풋풋하게 되살린 책이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제목만 보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여기에는 모든 가족과 시골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이 책을 쓴 함성주씨는 현직 집배원이다. 전남 영광군 홍농우체국이 그의 직장이다. 집배원일도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직업 아닌 직업이 있다. 다름 아닌 갯벌체험, 샛강체험, 숲체험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 바로 생태해설가이다.

저자의 고향은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전남 신안군의 재원도이다. 전남 지도를 펼쳐 놓아야만 점으로 보이는 아주 작은 섬이다. 그가 살던 당시에는 50~60여 가구 있었지만, 현재는 30여 가구 남짓만 남아 있다고 한다.

책은 크게 앞마당, 뒷마당 그리고 중간에 쉬어가는 마당이 있다. 앞마당 '내가 살던 고향이 그립습니다'는 섬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의 부엌 풍경, 겨울을 맞아 문을 다시 바르던 아버지와 가족의 모습, 한 울타리에서 같이 살던 소를 비롯한 가축들, 바닷가로 뒷산으로 뛰어다니며 먹어대던 자연의 먹을거리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인간적인 따듯함이 스며 있어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에 뭔가가 꾹꾹 쌓여가는 것 같다. 아마 고향을 떠나 고향에 대한 아른아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이 책을 읽으면서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랬지.' 그렇다고 지금의 시절이 너무 삭막하다고 탓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는 모습에 충실해야 하니까 말이다.

뒷마당 '지금 내가 사는 새고향입니다'는 현재의 농촌 고향을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한국 농촌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처참하지 않은가. 저자는 옛 고향이 사라졌다고 가슴 아파할 것이 아니라 옛날 모습의 고향을 파괴시키고 있는 도회인들의 얄미울 정도의 상술을 개탄하고 있다.

늘 책은 나오고 독자들은 그것을 읽고 새로운 세상을 볼 것이다. 하지만 잊힌 우리의 고향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린 책을 통해 한번쯤 우리의 짧은 현대사를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미시사가 뜨고 있는 요즘 출판계에서 한 집배원의 고향 이야기는 교육적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딸인 지수를 씻어주다가 문득 자신의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나 하는 그의 글은 뭔가 쿵 하고 가슴에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무뚝뚝한 남편이 닦아줬을 리 없고, 엄한 시어머니에게도 등을 내밀기 어려운’ 그 어머니의 등을 물이 귀한 섬에서 누가 닦아드렸을까. 그래서인지 그는 현재 고향에서 쓸쓸히 살고 계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훌륭한 심부름꾼이자 말벗을 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일상생활의 굴레로 들어가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설이라는 명절은 실감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동안 가족과 고향을 잊어도 좋다는 말인가. 이 책을 통해 늘 우리 곁에 가족과 고향이 있음을 느껴보면 어떨까. 도시가 고향인 독자들은 그 푸른 들녘과 바다의 섬들에 담겨져 있던 과거의 풍경을 가슴에 그려보면 어떨까.

프레스공, 대기업 사원, 영업사원을 하다가 이제 천직으로 여기는 집배원의 가슴 따듯한 글에 그러한 기대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 드렸을까 - 시골집배원의 섬마을 이야기

함성주 지음, 월간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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