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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가파른 길일 때면, 바쁜 걸음이 아닐 때 내가 끌어다 드릴 때가 있다. 집에 있는 신문이나 책도 묶어 가져다 실어 드릴 때가 있다.
그러나 마침내 나도 그 일에 직접 뛰어들고 말았다. 시간이 모자라 매일은 하지 못하지만 이따금 고물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물상에 가서 리어카를 빌려다가 재활용품을 수거하여 고물상에다 파는 일이다.
운동도 되니 하루 밥벌이 할 겸 그 일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케 해준 사람이 우리 마을의 한 노숙자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가 공원이나 무덤에서 자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공원에 앉아 있는 나에게 쩍쩍 갈라진 천도복숭아를 먹으라고 권하며 말을 건 일이 있다. 자기는 공장을 운영하다가 망했는데, 아내는 떠났고 오토바이 사고로 몸도 제정상이 아니라서 고물장수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가져다 팔았다. 1kg에 200원씩 한다. 다 입을 만한 옷인데, 두 보따리쯤 싸가지고 내려가 무게를 달아보면 20kg쯤 된다. 그만한 양으로 밥 한 끼 값 겨우 버는 셈이다.
그러다 현대사를 다룬 역사소설 자료로 모아둔 신문이며 잡지, 그리고 세계명작 같은 책들을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꼭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서관 신세를 질 생각이다). 책은 배다리 헌책방집에 가져다 팔면 좋겠는데, 그곳 헌책방도 잘 되지 않아 몇 집 남지 않은 상태고, 택시비만 7000원 이상 나오는 그 멀리까지 가져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세계명작도 마찬가지, 영락없는 신문지 값 신세다.
잠자리도 없을 만큼 20평형 집 안에 종이로 만든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아예 리어카가 필요했다. 60~70kg쯤 되는 리어카 무게까지 포함하여 한 번에 200~250kg쯤 되는 것을 어깨 힘과 배 힘으로 당기면서 밀고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간다. 비쩍 마른 사람이 너무도 잘 밀고 끌며 다니니까 마을 아주머니들이 놀라워한다. 자기 보게 책 좀 달라는 아주머니들한텐 더러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예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폐품 수집을 해다 파는 고물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분식점에 들어가 밥 한 끼 사먹을 때면 그 맛이 왜 그리 좋던지.
소설가가 할 일이 없어서 그 일을 하느냐고 궁금해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글 써서 버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 데다 글쓰기가 책상머리에만 앉으면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배가 고프다 보니 집중력에 실패할 때가 많다.
수돗물만 열심히 먹어대지만 그게 무슨 영양가가 있는가. 이따금 힘있는 정치가들이 단식투쟁하는 걸 보면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굶주리는 사람들 약올리는 것 같아서 싫다.
사실 그 고물 장사라는 게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리어카 키의 두 배는 올라가도록 가득 실어와야 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일을 함께 하면 좋겠는데, 글 쓸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거리가 마땅치 않다.
출판사 경기가 요즘처럼 형편없던 시절이 아닐 때는 1쇄 찍을 만큼 선인세를 계약금으로 받기 때문에 쓰는 동안에도 먹고 살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출판사가 어려우니 완성된 원고를 가져가기 전에는 계약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나는 우리 마을(인천 남동구 구월4동)에서는 되도록 멀리 벗어나서 실어 온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마을에는 고물 장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워낙 많이 사시기 때문이다. 작은 리어카로 여러 차례 열심히 끌고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며, 한 할아버지는 이틀쯤 주워 모아서 큰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 마을에선 절대로 박스나 빈캔을 주워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불편하신 몸인데도 그토록 부지런히 일만 하시며 사시는 그분들의 몫을, 새파랗게 젊은 내가 어찌 '감히' 챙겨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만수동이나 관교동 먹자골목까지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닌다. 더 멀리 갈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시내버스 서른 정류장 거리는 돌아다니지 않나 싶다. 새벽 세 시가 넘기 시작하면 수거할 박스나 캔, 양철통이 많이 나온다. 재활용품과 버리는 쓰레기는 먹자골목 상인들이 잘 분리해 놓기 때문에 가져가기도 쉽다. 길거리에다 누가 깡통 하나 버려 놓았어도 주워서 실어 간다. 그거 모아서 고물상에다 파는 재미, 이것도 사람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