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그러하건만, 도시 세상 모습은 왜 이리 가을 분위기와 다르게 어수선한지 모르겠다. ‘이쪽이 옳으냐 저쪽이 옳으냐’ 때문에 꽤 시끄럽다. ‘보안법 철폐냐, 무조건 철폐 반대냐, 수정 보완이냐, 대체법안 입법이냐’ 때문에 시끄럽고, '행정수도 이전을 꼭 해야 한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시끄럽다. 요즘엔 과거의 매춘방지법과 처벌 기준이 다른 특이한 성매매 규제법안의 출범 때문에 또 시끄럽다.
이럴 때 잠시라도 마음을 비우거나 정돈하기 위하여 조용한 산사(山寺)에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여행길이 쉽지 않다면, 우선은 집안에서라도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낭송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그러다가 낭송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면, 요즘에 늘어나고 있는 낭송문학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속세에서 지친 삶에 활력을 주는 취미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낭송 실력이 괜찮다면 시낭송 대회에 참여해 보는 것도 보람된 일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리 내어 책 읽는 것'의 중요함을 배웠다. 외국어 역시 소리내어 읽기를 병행하면 회화와 독해에 모두 도움이 되듯이 우리말과 글 역시 그러했다. 말솜씨가 늘고 글 솜씨 또한 느는 법이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순서대로 국어책을 소리 내어 읽도록 가르쳤다. 한편, 여고문학제에 가서 잘 읽는 여학생의 시낭송을 들을 때는 얼마나 마음 설레었던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가니 이 낭송은 아주 중요한 문예창작 수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규원 선생님은 시창작 실습 시간에는 급우들 앞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도록 하셨고, 시 특강 시간에는 급우들 앞에서 기성시인들의 좋은 시를 낭송하도록 하셨다. 더불어 낭송을 감상하는 기쁨도 우리는 저절로 배울 수 있었다.
최인훈 선생님과 최창학 선생님은 소설 창작실습 시간에는 소설 낭독을 하게끔 하셨다.
세 분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가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모두가 낭송(낭독) 훈련을 상당히 하고 졸업한 셈이다. 더구나 한 학기에 두세 번 있던 시낭송회는 우리 문예창작과에서는 최고 축제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요즘도 재학생들이 동문들을 초청하여 남산 캠퍼스 대극장에서 시낭송회를 펼치기도 한다.
비교적 마음을 차분하고 단정하게 만드는 계절, 시 한 수 읊고 싶은 이 깊어가는 가을에 마침, <낭송(낭독)문학을 위한 길잡이>가 나왔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출신 소설가이며 경희대 의과대학원 한의학과 출신의 동양의학자이기도 한 저자 이철호씨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낭송문학」이 왜 이 시대에 절실한가'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인 의미의 번영은 이룩했지만, 이와는 반대 현상으로 영혼과 정신적 삶은 갈수록 삭막해지고 황폐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육체와 외형은 살이 찌고 풍성한 것 같지만, 그 내면과 정신은 실로 보잘것없이 빈약하고 속으로 병들어 있는 불균형과 기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의 황폐화와 정신적 빈곤 속에서, 그래도 문학은 종교와 더불어 우리 영혼의 황폐화 현상을 막아 주고 정신적 풍요를 불어넣어 주는 가치 있고 고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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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중에서도 ‘낭송문학’은 단지 문자로만 쓰여 눈으로 읽히는 보통의 문학과는 달리 문자로 쓰인 문학을 다시 입으로 낭송하는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음미하며 감상하고, 깨닫고 되새겨 보는 문학이다. 또 그런 가운데 낭송자와 ‘낭송문학’을 감상하는 청중들, 또는 ‘낭송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동호인들이 한 마음이 되고 서로간의 화합과 기쁨을 얻기도 한다.
저자는 오랜 동안 '낭송문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문인으로서, 더욱이 '한국낭송문학회' 회장으로서 그동안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낭송문학'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 등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 분석을 하였고,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낭송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는 글을 싣고 있고, 또한 보다 효율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낭송 방법 등에 대해 폭넓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총7부로 구성된 차례는 이렇다.
제1부 새로운 문학장르로 떠오르는 「낭송(낭독)문학」
제2부 훌륭한 「낭송(낭독)문학」을 하기 위한 과정
제3부 두려움을 극복해야 훌륭한 낭송(낭독)을 할 수 있다
제4부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제5부 제스처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청중의 마음을 읽는다
제6부 유능한 낭송자는 청중을 잘 리드한다
제7부 유능한 낭송자는 「자기 연출」에 능하다
제8부 좋은 낭송(낭독)을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도 중요하다
이 가운데 1부에서는 특히, 눌변가도 훌륭한 낭송이나 연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오히려 눌변도 장점이 될 수 있으며, 진실이 담긴 눌변이 거짓된 달변보다 낫다는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나치 독일의 침공 속에 위기상황까지 몰려 있을 때의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달변가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영국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 자신감과 신념을 불어넣어 주는 명연설을 하였던 것일까. 바로 그의 연설 속에 진실이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구나 유능한 세일즈맨 가운데 눌변가가 많은 이유도, 오히려 상대방이 눌변가인 그 세일즈맨이 진실해 보이거나 다가서기 쉬워서 '마음의 문'을 열어놓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어 설명해 놓았다.
또한 시, 수필, 칼럼, 콩트, 소설, 희곡 등 장르에 따라 다르게 읽는 방법도 소개해 놓았다.
3부에서는, 청중 앞에서 두려움을 없애는 법을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우의 경우를 빌려 설명해 놓았다. 그는 너무 소심한 나머지 친구 집을 찾아가서도 곧바로 현관문을 누르지 못하고 20분 이상 머뭇거리며 집 주위를 뱅뱅 돌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벨을 누를 만큼 겁쟁이였는데, 런던 시내 토론회에 열심히 참여하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연습을 거치는 동안 마침내 재기 넘치고 뛰어난 최고 웅변가로 자라났다고 한다.
그 밖에 대자연으로부터 자연의 기(氣)를 받아들이는 법을 동양의학자의 시각으로 설명하였으며, 청중의 시선을 극복하는 법도 아울러 설명해 놓았다.
4부에서는 제목 그대로 낭송을 시작할 때의 중요함을 설명해 놓았다. 밝은 얼굴로, 짧고 간결하게, 조금 큰 목소리로 강하게, 쉬운 말로, 청중의 관심을 끌 만한 화제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저자는 역설(力說)한다.
5부에서는, 유연하고 자연스런 제스처, 상황에 맞는 제스처, 살아 있는 제스처를 강조하며, 여러 가지 제스처의 방법과 기술을 설명해 놓았다.
6부에서는, 청중을 칭찬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분노나 흥분 죽이기, 낭송 때 나쁜 버릇 고치기, 등줄기 곧게 세우고 낭송하기, 유머와 위트를 필요할 때 잘 섞기 등, 청중을 리드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해 놓았다.
7부에서 다룬 내용은 적절한 자기 연출법. 때와 장소에 따라 외모와 옷차림을 달리할 필요가 있으며, ‘낭송문학’은 입으로 하는 연기이므로 '말의 요리사'가 되는 법, 음성표출법의 중요함을 설명해 놓았다. 더불어 배경음악과 사회자의 중요성도 덧붙여 놓았다.
마지막으로 8부에서는 낭송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놓았다. 체질에 따른 일상의 식사법과 더불어 낭송 전에는 공복이나 과식이 금물이며 위장에 부담을 주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 않다고 역설했다. 이를테면 낭송 중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거나 목에서 트림이 나올 정도라면 본인도 무안하고 청중에게 아주 큰 실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공해병을 물리치는 식품 섭취의 중요함, 금연의 필요함,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의 낭송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덧붙여 낭송의 끝맺음 또한 중요하다고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4부에서 함께 다루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낭송(낭독) 문학을 위한 길잡이’를 읽고 나서 깜박 잊은 것이 생각났다. 개천예술제본부와 진주문협이 주최하는, 경남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10월 4일에 열리는 개천예술제 시낭송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신청을 해놓지 못한 것이다. 2005년 개천절을 앞두고서는 망각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