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0일 언론에 '민주노동당, 행정수도 이전 반대당론 확정'기사가 보도되면서 민주노동당은 홍역(?)을 치렀다. 이어서 11일 '최종 당론이 아니다'는 민주노동당 중앙당의 성명이 있었고 다시 12일 민주노동당 충청권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정권식의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주장했다.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의 반대-찬성-다시 반대라는 태도 변화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대한 충청권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의 의견차가 분명해 지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 충청권 대책위의 주장은 "찬ㆍ반에 대한 아무런 입장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민주노동당 충남지부 안병일 사무처장에 따르면 "10월 11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충남지부 당원 토론회가 있을 예정이며 12일에는 당중앙위원회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정리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대전ㆍ충청본부는 행정수도이전논란에 대해 기획기사 세 편을 내보내 ▲ 반대논리에 대한 대응에 급급하여 내부적 논의 부족 ▲ 보수 언론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왜곡보도에 적절한 대응 필요 ▲ 행정수도 이전엔 찬성하지만 현재의 기대효과로는 부족 ▲ 수도권 시민단체와의 공조 필요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서울시의 관제데모를 비롯한 여러 논란에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대한 대전ㆍ충청지역 시민사회와 해당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취재해 온 기자로서 몇까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 대전ㆍ충청지역의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은 급식조례, 경륜장 반대, 화상경마장 반대, 러브호텔 문제, 이라크 파병 반대에서 시민사회라는 틀 안에서 협력을 계속해 왔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등 시민단체들이 밀집된 서울 및 수도권보다도 시민사회의 역할과 범위확장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지역사회에서 두 세력 간 공조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이었다.
기자는 이 글을 통해 그동안 우리지역의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온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의 행정수도에 대한 공조의 필요와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충청권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공조 가능하다
지난 8월 12일 충청권 대책위 기자회견 이후 지방분권운동 대전본부 김수현 사무국장은 "민주노동당의 대안 없는 반대 입장에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은 "행정수도 이전만이 지방분권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공조의 가능성은 있다. 우선 행정수도 이전을 찬성하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기대 효과만으로는 충분한 지방분권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인구 50만의 분산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 정도 분산으로는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 사무국장은 "지금의 신행정수도 이전이 그에 따른 효과보다는 상징적 의미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고 지방분권운동 충북본부 이두영 국장(현재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국장이 대행 중)은 "우리도 수도권과의 연담화와 수도권 집중 및 난개발을 우려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반대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행정수도 이전 지역 서민들의 생활에 대해 함께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1일 민주노동당 충남지부 임시대의원회의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충청권 대책위 김양호 집행위원장은 "행정수도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인근 지역의 전세 및 임대료가 폭등했다. 지역 서민들은 물가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전 지역 서민생활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공주녹색소비자연대 이윤희 사무처장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나름의 역사ㆍ전통ㆍ문화 등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적 현안문제가 발생될 수 있는 만큼,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양 측 모두 아무런 조사가 없는 듯 하다. 지난 9월 20일 연기군 남면에서 있었던 주민대책 설명회는 주민들의 걱정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연기군 남면의 '행정수도 이전 반대 주민 대책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는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버릴 수 없다.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대책위 임백수 정책위원장 및 주민 다수는 ▲ 소작농에 대한 보상 문제, ▲ 불법 건축물에 대한 보상 등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현실적이고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행정수도 이전은 백지화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많은 주민들이 정부의 대책 없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행정수도이전추진단은 "노력은 하겠지만 한계는 있다"는 설명만 되풀이했다.
충청권 대책위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주민들의 생계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지역 주민들이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내부 토론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2003년 11월 12일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안) 통과를 위한 촉구결의대회는 관제데모 아닙니까?"
서울시의 '관제데모'가 행정수도 이전에 또 다른 논란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관제데모는 문제고 찬성하는 관제데모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2003년 11월 12일 비가 오는 추운 날씨에도 대형버스 수십 대를 타고 천안에 도착한 시민 수천 명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의 국회통과를 촉구하며 아라리오 광장에 모였다.
한 지역 신문은 이날 행사를 아래와 같이 보도하고 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안) 통과를 위한 촉구결의대회가 12일 오후 2시부터 행정수도이전범국민연대 주관으로 고속버스터미널 아라리오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촉구결의대회는 성무용 천안시장을 비롯해 충남도 15개 시ㆍ군 시장과 군수, 지역 국회의원, 관련시민단체회원과 충청권 주민 등 9천여 명이 참석 행정수도이전 이전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윤진수 바르게살기협의회 충남도협의회장의 개회선언, 한창숙 충남도 새마을지회장, 이호일 중부대 총장의 개회인사에 이어 박강수 대전매일 대기자의 기조연설, 충청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결의연설, 결의문 채택 및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이 내용만 보더라도 충분히 관제데모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8월 19일 대전시 서구 오페라웨딩홀에서는 염홍철 대전시장, 심대평 충남도지사, 이원종 충북도지사, 김민남 지방분권국민운동 상임공동의장과 대전ㆍ충청권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동참한 '국가균형 발전을 위한 신행정수도 건설 성공기원 범국민 물결대회'가 열렸다.
충ㆍ남북 도지사와 대전시장은 물론 각 자치단체 지방의원 등 대부분이 참여한 이 행사를 관제라고 표현하기에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국장은 "이원종 충북도지사와 갈등관계에 있는 우리 단체로서도 편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행정수도 이전 반대논리에 대응하기 위한 일회성 행사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는 "반대논리 극복에 급급한 나머지 지자체들과도 서슴없이 동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행사에 동참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우리 지역 시민사회 내부의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너무 '세 보여주기'에 매달리는 것 아닌가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역할을 나누고 공조하여 행정수도 이전 이후를 준비해야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에 따르면 행정수도건설은 2004년 12월까지 예정지역 지정ㆍ공시를 마친 후 2005년 1월~7월까지 보상을 위한 토지 및 건축물에 대한 기본조사, 2007년 하반기부터 공사착수, 2012년부터 행정기관 이전 및 주민입주 등의 일정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일정대로 추진된다면 앞으로 10여년 후부터는 충청권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이며 그에 따른 우리지역 시민단체들의 새로운 역할과 기능이 지금부터라도 준비되어야 한다.
국회가 신행정수도로 이전한다면 그동안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ㆍ감시했던 서울지역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우리 지역으로 이전될 것이며 그에 따른 인적ㆍ물적 토대의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지방분권운동 대전본부 김수현 사무국장은 "서울시에서 관제데모를 하고 한나라당이 반대 당론을 결정하는 등 행정수도에 대한 원칙적 반대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 이후의 준비를 위해 노력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또 "충청권 대책위가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완벽한 대안이 마련된다면 얼마든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대전시지부 민병기 정책국장은 "지방분권운동본부도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정말이냐? 그렇다면 왜 한번도 얘기 하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우선 민주노동당 충청권 대책위에 묻고 싶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당원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토론회가 진정으로 찬성과 반대에 대한 아무런 전제를 하지 않은 토론회인가?
만약 당원들 대부분 반대하는데 충청권 주민들은 찬성이 우세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행정수도 이전이 단지, 당원들만의 의사를 통해 결정할 사안인가?
지난 총선을 계기로 10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원내에 진출했다. 앞으로는 지역에서도 민주노동당 의원이 당선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요구와 아픔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건가?
다음으로 충청권 시민단체들에 묻고 싶다. 과연 시민사회의 충분한 논의, 아니 충청권 시민단체 간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논리의 극복에 급급한 나머지 행정수도 이전 이후를 준비하는 데는 소홀한 것 아닌가?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이전 지역 주민이 겪을 피해에 대해 무관심할 경우, 시민단체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기자는 그동안 우리 지역 사회의 개혁을 위해 공조해 온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민주노동당은 해당 지역 주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위(?)를 구성해서 주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고, 시민단체는 행정수도 이전 이후에 우리지역 시민단체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민주노동당 충청권 대책위와 시민단체들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대화의 장을 마련하길 바란다. 이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지역 당사자 처지에서 진지한 토론이 이뤄지길 바란다.
취재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양 측의 미묘한 오해와 갈등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공조하는 모습을 바라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