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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물이 넘쳐 흐르는 도랑이 심심해 보여 미나리도 심었습니다. 그래도 허전해 보이는 도랑에는 때마침 동네에서 모내기하고 남은 모를 주워다 한줄로 심어 놓았지요.
도랑물은 흘러 가면서 모를 키우고, 버린 모들은 물을 만나 뿌리를 내리니 둘 다 제 노릇을 하게 된 겁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서로 세월 동무 하면 한여름 몰아치는 소낙비도 덜 두려울 겁니다.
게다가 가을에는 곡식을 머금을 것을 생각하니 두둑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댓걸음 길이에 몇 포기 안되는 벼를 심으며 모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는 금방 잊어 버렸습니다.
올 해는 예기치 않던 일들이 줄줄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오던 작업실도 한달에 한번 오기 일쑤였습니다. 자라는 풀들도 올 해는 묵히는 셈치고 내버려 두었더니 당연 풀농사를 한 셈이지요.
추석 다음날, 코스모스와 함께 말라 죽은 잡초들을 베어 뉘어 놓으니, 나몰라라 하고 버려둔 벼들이 드러나며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잡풀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할 줄 알았던 벼들이 싱싱한 푸른빛 늘씬한 잎맵씨로 황금이삭을 매달고 있는게 아닙니까!
손길 눈길 제대로 주지 않았거늘 저홀로 건강하게 자란 벼들의 모습에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잡풀들을 뒤늦게 베어 내고 햇살을 쪼여 주면서 미안한 마음도 덜고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바람의 덕도 크지요, 살랑살랑 부는 바람으로 잡풀들이 흔들려 햇살이 드문드문 비쳤을 테고, 구름과 비의 덕으로 샘물은 마르지 않고 흘렀을 테고, 새벽 이슬과 벌레들도 희생을 무릅쓰고 이삭들을 지켰을 테니까요.
뿌리를 감싸준 흙과 보이지 않은 미생물들도 한 몫을 거들었겠지요.
이렇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제 몫을 하는 자연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설 차례상에는 몇 그릇이나 될까마는 이 벼들로 밥을 지어 고마운 뜻을 되새길까 합니다.
자연의 생명력에 새삼 놀랍고 베품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를 해치지 않으려면 스스로 겸손하고 욕심을 줄여야 할 듯 싶습니다. 없고 모자란 듯하여도 두루 풍요로운 가을이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