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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요즘 거의 매일같이 아이들과 함께 새벽 산책을 나섭니다. 산책은 하루를 사는 힘이 돼주기도 합니다. 뒷산 오솔길을 걷거나 동네 길을 걷습니다. 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장난삼아 아주 단순한 대화를 나눕니다.

"너는 누구냐?"
"나? 송인상?"

"송인상이 뭔디?"
"사람"

"사람은 또 뭐여?"
"에이 몰라, 그럼 아빠는 뭐여?"
"아빠? 아빠는, 아빠는 바람이다."
"그럼 나, 나는 물이다"
"그럼 또 나는 흙이다."

▲ 느릿느릿 걷다가 장남삼아 갑작스럽게 뜀박질을 했더니 인효 인상이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습니다.
ⓒ 송성영

오늘은 산행 대신 진돗개 갑돌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섰습니다. 산책길의 종착점은 장승이 서 있는데까지 입니다. 아이들은 늘 그렇듯이 장승 앞에서 합창으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유?"
"오~오냐!"
"에이 씨, 또 그러네, 아빠가 무슨 장승할아버지여!"

큰 녀석 인효가 장승이 서 있는 길가에 퍼질러앉아 뭔가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뭘 보고 있냐?"
"바퀴벌렌디, 불쌍하다."
"뭐가 불쌍한디?"
"여기 있다간 밟혀 죽을 것 같아서,"
"살아 있는 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기 때문에 다 불쌍한 겨. 아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언젠가는 죽게 되는 겨. 그래서 부처님이 도를 닦으신 거지."

"근디 아빠, 도 닦는 게 뭐여?"
"도? 글쎄?"

▲ 요즘 새벽. 가을 하늘과 구름이 참 맑습니다.
ⓒ 송성영

어쩌다 도 얘기를 꺼낸 것은 나였는데 막상 아이들에게 설명하려니 난감했습니다. 나는 시골에 살면서 매끈하게 수염만 깎고 지내기가 뭐해서 저절로 솟아나는 수염을 내버려두고 삽니다. 그런 덥수룩한 낯짝으로 계룡산 부근에서 산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궁금해서 못살겠다는 투로 묻습니다.

"혹시 도 닦는 분이십니까?"
"도요? 뭔 도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얼렁뚱땅 넘겼는데 아들 녀석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도'를 말해줬습니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아빠가 생각하는 도는 말여 한문으로 길도, 우리 말로 길인데, 길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 그냥 고통스럽게 가는 길이 있고 또 마음 편하게 가는 길도 있거든. 도 닦는다는 것은 마음 편한 쪽으로 가려는 것이기도 하지. 그래서 도는 마음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겨."

"마음의 길?"
"그래 마음의 길, 니가 어떤 마음을 내느냐는 거."
"아휴, 뭐가 그렇게 복잡혀. 그럼 아빠도 도 닦는 사람여? 아빠는 만날 마음이 어쩌구 하잖아."
"아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도를 닦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

나는 모든 사람들이 길을 가듯이 도를 닦고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편한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들 뱃속 편한 길을 가고자 합니다. 나름대로 뱃속 편한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은 제각각이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좀더 빨리 가기 위해 반듯한 도로를 따라 내달리고, 어떤 사람은 또 뱃속 편하게 느릿느릿 해찰을 부리며 산책하듯 오솔길을 걸어갑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오솔길입니다. 그 오솔길은 그냥 아이들과 소풍가는 마음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며 이러 저런 얘기를 나누는 길입니다. 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줘가며 걷는 오솔길로 가고자 합니다. 어쩌다 이웃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눠가며 오솔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숲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은 건강도 챙길 수 있고 뱃속 편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그걸 빤히 알면서도 나는 매일같이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날 너무 늦게 잠을 잤다.' '새벽 공기가 너무 쌀쌀하다.' '길에 풀이 너무 수북하고 이슬이 맺혀 있다.' 별의 별 핑계를 대고 산책을 가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사실 나는 오솔길을 벗어나 자동차가 쌩쌩 내달리는 복잡한 도로에서 헤맬 때도 많습니다. 눈앞이 컴컴한 밤길을 걸으며 별의별 유혹을 다 만나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기도 합니다. 걸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도 소음과 매연을 뿜어대며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자동차 길은 산을 까뭉개 짐승들의 길을 잘라낸 생명을 잃은 길입니다. 자동차 길이 엄청 편안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오솔길보다 편안한 길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길은 실탄이 장전된 총구를 이리저리 휘둘러 대는 사람들 사이로 불안하게 내달리는 길입니다. 자칫하면 오발된 총알 한방에 끝장날 수도 있는 길입니다. 좀더 많이 먹고 많이 갖추고 살기 위해 그 길을 택합니다. 분명 오솔길로 가는 것보다는 빠른 길이지만 또한 엄청나게 살벌한 길이기도 합니다.

▲ 마을 앞 둥구나무 저만치 계룡산에서 아침해가 솟아 오릅니다.
ⓒ 송성영

"아빠, 그럼 나도 편하게 살려면 도 닦아야 겠네."
"아니, 니들은 도 안 닦아도 될겨."
"그럼 아빠는 왜 도를 닦아야 돼?"
"아빠 같은 어른들은 닦아야 할 게 너무나 많거든."

그 날 이후 아이들에게는 산책길 놀이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너는 누구냐?'는 질문과 함께 '너는 어떤 길로 가고 싶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놀이입니다. 그 질문은 바로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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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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